600만 자영업자의 이목이 2월 임시국회에 집중돼 있다. 현재 국회는 2월 임시회를 열어 각 상임위별로 법안심사를 진행하고 있다.
특히 국회 지식경제위원회에는 600만에 달하는 중소상인들의 생존권이 걸린 유통산업발전법 개정안이 계류 중에 있어, 전국 상인들과 시민사회의 이목이 집중돼 있는 상황이다.
지난해 유통 대기업들이 경쟁적으로 진출한 SSM(=기업형 슈퍼마켓)으로 매출감소와 폐업 위기에 몰린 중소상인들은 SSM에 대한 허가제 도입을 애타게 기다리고 있으나 유통산업발전법 개정안은 해를 넘겼음에도 불구 진전을 이루지 못하고 있다.
게다가 최근 중기청과 지식경제부가 사실상 프랜차이즈 SSM에 대해서는 사업조정 신청 대상이 아니라는 유권해석을 내리자 유통재벌들이 사업조정 신청지역으로 묶인 지역에서 프랜차이즈 SSM 개점을 시도하고 있어 중소상인들의 위기감과 절박함은 더욱 커지고 있다.
이에 '중소상인 살리기 전국네트워크'와 '사업조정 신청지역 전국연석회의', '전국유통상인연합회', '전국상인연합회', '한국슈퍼마켓협동조합연합회', '전국소상공인단체연합회' 등 전국의 상인단체와 시민사회단체는 18일 오후 1시 국회 앞 국민은행 마당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유통산업발전법 개정을 강력히 촉구했다.
이들은 "이번 2월 임시국회에서 프랜차이즈(=가맹점) 방식의 변종 SSM을 포함한 모든 SSM에 대해 허가제를 도입해야 한다"며 "그래서 유통산업발전법 개정은 중소상인들의 생존권을 보장하는 최소한의 요구이자 절박한 사안"이라고 강조했다.
중소상인대표단 20여명은 기자회견 직후 같은 장소에서 유통산업발전법 개정을 촉구하는 무기한 단식농성에 돌입했다. 이들은 대형마트와 SSM에 대한 규제와 허가제를 골자로 한 유통산업발전법 개정안이 좌절 될 경우 대정부 투쟁을 전개하기로 했다.
인태연 전국상인연합회 대형마트규제특위 부위원장은 "부산, 창원을 필두로 해서 상인촛불문화제를 18일~20까지 개최할 것"이라며 "그럼에도 불구 또다시 2월 임시국회가 무위로 끝난다면 우리는 3월10일을 전후로 전국상인총궐기대회를 통해 정치투쟁을 전개할 것이며, 오는 6월 지방선거에서 상인들의 정치적인 힘을 총동원하고 모든 시민사회와 연대해 엄중히 심판할 것임을 강력히 경고 한다"고 밝혔다.
정부와 중소상인, 깊고도 머나먼 '간극'
한편 '중소상인 살리기 전국네트워크'와 '전국유통상인연합회' 등 상인단체와 시민사회단체 대표단은 17일 오전 국회 지식경제위원회 위원들, 지식경제부, 외교통상부, 공정거래위원회 등 정부 관계자 등과 함께 유통산업발전법 개정에 대한 간담회를 진행했다.
하지만 간담회는 서로의 그동안 되풀이해온 서로의 입장차이만 확인하는 자리였다. 간담회에 참석한 중소상인 대표단의 면담결과를 종합해 보면 정부와 중소상인 사이에는 깊고도 머나먼 겨울 강이 흐르고 있었다.
이날 중소상인 대표단과 여야 국회의원들은 자영업자들의 경제활동과 경제주체들 간 상생 차원에서 대형마트와 SSM에 대해 규제가 시급하다고 역설했으나, 지식경제부를 비롯한 정부 당국은 여전히 WTO(=세계무역기구) 조항 위배 가능성만을 거론하며 반대 입장을 분명히 했다.
특히 외교통상부는 SSM에 대한 규제가 WTO에 제소될 가능성이 있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중소상인들이 거듭 구체적인 사례를 묻자 "유통업에서 제소당한 사례는 없다, WTO 규정 위반일지는 패널(WTO규정 위반 여부는 WTO각료회의서 판단하는 것이 아니라 위반 여부를 판단하는 패널이 따로 있다)들 말고는 아무도 모른다, 단 가능성이 있다는 이야기다"라고 답해 빈축을 사기도 했다.
신규철 중소상인 살리기 전국네트워크 공동집행위원장은 "외교통상부조차 WTO에 제소될 시 피해는 구체적으로 알 수 없다고 했다"며 "그저 자유무역국가인 대한민국의 손해가 예상 된다는 식의 추상적인 답변만 늘어놨다"고 말했다. 이어 "경제주체들의 상생과 공정한 경쟁을 책임져야 할 공정거래위원회 조차 'SSM 규제가 공급주체들의 경쟁을 제한해 소비자의 피해가 예상 된다'고 해 놀라울 따름"이라고 비판했다.
그는 또 "'SSM 허가제에 대한 국민들의 찬성 여론이 70%가 넘고 SSM의 무분별한 진출로 유통재벌의 독점이 심화돼 결과적으로 국민들의 피해가 발생하고 있으며 대기업과 동네 구멍가게 상인들 간의 경쟁은 본질적으로 불공정한데도 결국 공정위가 이런 측면을 외면하는 것은 매우 부적절하다"고 지적했다.
단식농성에 임하고 있는 중소상인대표단과 시민사회단체는 "정부가 WTO 조항 위배 '가능성'만을 반복할 것이 아니라 헌법과 관련 법률에 명시된 '중소상인 보호와 육성 의무', '중소기업 및 중소상인 상생', '경제민주화'를 제대로 인식하고 그에 따른 정책을 펼쳐가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WTO 위반, 미국은 안 되고 한국은 된다?
17일 정부 당국자와 여야의원, 중소상인대표단 간 간담회의 쟁점은 대형마트와 SSM을 규제하는 것이 WTO 규정 위반사항인지 아닌지에 대한 것이었다.
임채민 지식경제부 차관은 "소상공인들의 아픔과 고통을 같이 하고 있음을 믿어 달라"고 한 뒤, "하지만 정부입장에서는 한쪽의 입장만 대변할 수 없음을 이해해 달라, 정부 내에는 외교통상부, 공정위, 법무부 등 타 부처의 다른 입장도 있다"고 말했다. 이어 "경제장관회의에서도 논의를 하고 있으나 지식경제부의 입장은 지지를 받지 못하고 있어 타 부처를 설득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또 "영국 통상장관과도 대화를 나누었는데, 교역상대국의 논리도 있음을 이해해 달라, 정부도 빠른 시간 내에 법안 마련 필요하고, 크고 작은 분쟁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사실상 정부당국 조차 대형마트와 SSM에 대해 허가제 도입을 골자로 한 이번 유통산업발전법 개정안이 소관 부처인 지식경제부의 몫이 아니라 외교통상부 등 WTO와 관련 된 부서의 일임을 고백한 것이다. SSM규제에서 촉발 된 중소상인들의 쟁점이 WTO 위반 규정 위반 여부로 확대 된 것.
WTO분쟁을 담당하고 있는 안호영 외교통상부 통상교섭조정관은 "우리나라는 수출을 안 하면 살 수 없는 나라다, 따라서 이 문제 역시 국제무역이라는 큰 틀에서 해결할 필요가 있다"며 "WTO 문제만이 아니라 한미FTA 등도 예정돼 있고 이미 체결한 FTA의 경우에도 유통시장 다 개방했다, 우리나라는 유통시장에 경쟁력이 있다고 판단해 개방을 결정했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또 다른 문제를 야기 하면 안 된다고 생각하며 이러한 관점에서 출발해야 한다"고 밝혔다.
그는 또 "전통상업보존구역과 관련해 기점을 어디에 찍어야 할지 의견이 나뉘는데, 이렇듯 불확실한 근거로 입법을 하는 것은 문제"라며 "영국, EC(=유럽경제공동체) 등에서 지금 이에 대한 문제제기를 하고 있는 상황"이라고 덧붙였다.
이와 관련 민주당 소속 정장선 국회 지식경제위원회 위원장은 "영국 상공회의소 측과 만나 이야기를 나누면서 국내 자영업의 특징을 설명했다"며 "한국 자영업의 특징은 50대 이상이 많고, 부채도 안고 있으며, 사회안전망이 열악해 큰 어려움에 처해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외국기업을 차별하려는 게 아니라 국회의원으로서 이들을 외면할 수 없는 것"이라고 말했다.
노영민 민주당 의원은 "우리는 특별법까지 제정해 재래시장을 보호하고 있다, 이는 재래시장이 붕괴됐을 때 발생하는 사회경제적 비용이 현재 생존을 유지하기 위해 투입되는 비용보다 크기 때문"이라며 "따라서 이번 문제는 사회경제복지 차원에서 접근해야 한다, 헌법은 중소상인 보호육성을 정부의 의무로 규정하고 있다, 지경위 전문위원은 지경위안이 WTO규정에 위배되지 않다는 의견"이라고 덧붙였다.
이에 대해 안호영 통상교섭조정관은 "WTO 합치여부 문제는 WTO 분쟁패널만이 판정할 수 있다"며 "다만 WTO 서비스무역협정조항 중 한 조항에라도 위배가 되면 안 되는데 허가제 또는 강화된 등록제는 16조에 규정된 시장접근을 저해한다고 판단될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한나라당 의원조차 의뭉스러운 '외교통상부 입장'
이를 두고 이학재 한나라당 의원은 "WTO 패널만 판단 할 수 있으면 어느 누구도 예단 할 수 없고 단지 우려만 있는 것 아닌가?"라며 "또한 WTO와 상충된다 하더라도 무역만이 국익이 아닌데 통상마찰에 대한 우려로 모든 걸 풀려고 하면 안 된다, 마찰로 인한 분쟁은 시간을 갖고 해결이 가능할 것으로 보이며 이를 고려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배은희 한나라당 의원 또한 "WTO 제소 소지가 있다는 입장과 없다는 입장이 팽팽히 갈려 법안을 심사해야 하는 입장에서 판단이 쉽지 않다, 많은 학자들이 프랑스는 300평방미터도 규제한다고 지적하고 있는데 그럼 우리나라는 왜 못하나?"라고 반문했고 조승수 진보신당 의원은 "보수적인 학자들조차 WTO 위배 소지가 적다는 의견을 내고 있다"며 "외통부만 고집을 부리고 있는 상황으로 보인다"고 비판했다.
안영효 인천전문대 무역학과 교수는 "대형마트와 SSM입점을 등록제에서 허가제로 전환 하는 것은 국내규제에 해당하기 때문에 WTO와 상관없이 가능한 부분"이라며 "아울러 영업시간 규제와 품목제한 등의 조치도 가능하다"고 지적했다.
실제 WTO의 패권 국가인 미국에서도 매장 면적 15%이상을 식품과 비과세 상품 매장으로 사용하는 것을 금하고 있고, 지자체의 도시계획위원회에 의해 이러한 규제를 정하는 데 이해당사자의 참여를 보장하고 있다. 또한 중소기업중앙회는 2008년 발표한 '대형마트 현황과 중소유통 활성화 방안' 보고서를 통해 'WTO 가입국인 영국·프랑스·독일·일본 등도 대형마트 입점제한과 영업시간 규제 등을 실시하고 있다'고 발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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