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4대강정비사업을 하면서 '입찰안내서'에 반드시 하도록 되어 있는 '수리모형실험'을 하지도 않은 상황에서, 본공사 고시를 내주고 실제 공사를 벌이고 있어 건설산업기본법을 위반했다는 지적이 일고 있다.
현재 정부는 한강·낙동강·금강·영산강에 16개 보를 설치하는 공사를 벌이고 있다. 대부분 가물막이 공사가 마무리 되어 지난 2월초부터 본공사에 들어갔다. 정부는 지난 1월 28~29일 사이 본공사 고시(공고)를 했다.
그런데 정부는 4대강사업을 하기에 앞서 '보'의 안전성 검증을 위해 '수리모형실험'을 실시하기로 했지만, 16개 보 중에 15개 보에 대한 실험결과가 아직도 나오지 않았다. 시범사업으로 추진된 금강 '금남보'만 수리모형실험을 한 상태. 정부는 수리모형실험 결과가 나오지 않았는데 실시설계에 따라 본공사를 강행하고 있다.
댐과 같이 하천에 들어서는 대규모 시설물은 반드시 '수리모형실험'을 해야 한다. 4대강사업과 관련한 수리모형실험은 시공업체가 국내·외 전문기관에 맡긴 것으로 알려졌다. 낙동강 '함안보'와 관련한 수리모형실험은 일본에 맡겼다.
민주당 '4대강사업 저지 특별위원회' 소속 김진애, 이찬열 의원과 조정식 의원실 윤상은 보좌관, 박창근 교수(관동대), 이준경 낙동강네트워크 사무처장, 임희자 마산창원진해환경연합 사무국장 등이 19일 경남 창녕군 길곡면 오호리에 있는 한림수리모형실험연구소(소장 이상화, 동아대 교수)를 찾았다.
한림수리모형실험연구소, 2~3월 사이 5개 보 실험현재 한림수리모형실험연구소는 한강 이포보·여주보·강천보, 낙동강 합천보·낙단보에 대해 실험 중이다. '우선수행 설계홍수량 실험'은 2월 2일~15일, '빈도별 홍수량 보 수위조건에 대한 수리특성실험'은 2월 16일~23일, '보 상류부 퇴적영향 평가를 위한 정성적 실험'은 2월 24일~28일, '국부 세굴실험(이동상)'은 3월 1일~30일에 한다는 계획이다.
수리모형실험은 강과 보를 1/60 크기로 축소해 만들어 놓고, 지하저수조-펌프장-고수조-송수배관-유량계-정수지-상류하천-정류지 등의 과정을 거치며 하게 된다. 수리모형실험은 낙동강 상류는 '홍수 100년 빈도', 하류는 '홍수 200년 빈도'에 맞춰 하게 된다.
수리모형실험에 대해 연구소는 "한강·낙동강에 설치될 보에 대해 수리학적 거동변화와 문제점을 분석해 사업계획과 실시설계에 필요한 기초자료로 제공할 목적"이라고 밝혔다. 연구소는 4개 건물 안에 수리모형실험 시설을 갖춰 놓고 있었다. 이포보와 관련한 실험은 진행 중이고, 낙단보 관련 실험을 위해 준비를 갖춰 놓았으며, 합천보 관련 실험은 아직 들어가지 않았다. 현재 합천보 실험과 관련한 시설 장비들을 마련해 놓은 정도였다.
"30여년간 수리모형실험 없이 공사한 사례는 없어"이날 현장조사에서 김진애 의원을 비롯한 토목·환경 전문가들은 수리모형실험도 하지 않고 어떻게 고시에다 본공사를 할 수 있느냐고 따졌다. 이날 현장 조사에는 국토해양부 4대강사업본부와 한국수자원공사 관계자들도 함께 했다.
박창근 교수는 "정부가 낸 입찰안내서를 보면 수리모형실험을 반드시 해서 실시설계에 반영하도록 되어 있다"면서 "수리모형실험에서 어떤 결과가 나올지 모른다, 그 실험을 다 하고 내주는 게 맞고 그것이 상식"이라고 말했다. 이어 "우리나라에서 지난 30여년간 댐을 건설하면서 수리모형실험을 하지 않고 공사에 들어간 사례는 없다"고 덧붙였다.
그는 "수리모형실험 결과를 실시설계에 반영하지 않고 고시를 한 것은 관련 법 위반이다, 실시설계를 하기 전에 반드시 수리모형실험 보고서가 있어야 한다"면서 "그리고 수리모형실험은 적어도 3~6개월 이상 걸리는데 이번처럼 갑자기 해서는 안된다"고 강조했다.
또 박창근 교수는 "보를 건설해 놓으면 상류에 모래가 쌓일 것인데, 퇴적물을 어떻게 처리할 것인지 모르겠다, 구멍을 뚫을 것인지 다른 배사구를 만들 것인지 의문"이라면서 "그렇게 되면 설계를 다시 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김진애 의원은 "정부는 지난해 12월 29일 실시설계 작업을 끝냈다고 했다, 행정절차가 확실히 끝났기에 허가를 내준 것 아니냐, 그런데 반드시 하게 되어 있는 수리모형실험 결과가 반영되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는 "제대로 하려면 보 위치를 바꿔야 한다고 보는 사람들도 있다, 국민들은 모른다, 국토부 등 정부는 설계변경을 하면 된다고 하는데 자꾸 변경하는 건 불안한 것 아니냐"면서 "수리모형실험도 시간적으로 촉박하고, 자문회의를 했다고 하지만 요식행위다"라고 지적했다.
김 의원은 "세계 모든 재앙이 확인 안된 설계로 생긴 경우가 많다, 4대강사업도 우리나라에서 처음 한다"며 "15개 보 공사를 한꺼번에 하면서, 반드시 해야 하는 수리모형실험도 하지 않고, 제대로 체크하지도 않고 하다보니 국민들은 불안하다"고 덧붙였다.
이찬열 의원은 "수리모형실험을 너무 촉박하게 하는 것 같다, 인력이 다 확보 돼 있는지, 새벽 2~3시까지 실험을 한다고 하는데 제대로 될지 의문"이라면서 "수리모형실험은 모두 하고 난 뒤에 실시설계를 하는 게 원칙이다, 4대강사업은 백년대계라고 하는데 이렇게 해서 되겠느냐"라고 말했다.
정부 측 "실험결과 나오면 실시설계에 반영"국토해양부와 한국수자원공사는 4대강사업 실시설계와 고시는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다. 정남정 한국수자원공사 4대강사업건설처장은 "중간보고서에 따라 적격심사를 거쳐 실시설계를 했고, 실험이 끝나면 앞으로 그 결과를 반영하도록 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실시설계는 건설사와 설계사에서 완료해서 납품을 받은 것이며, 실시설계는 확정된 게 아니고 변경할 수 있다"며 "2월초부터 들어간 본공사는 보 건설과 관련한 부분 공사만 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임경모 국토해양부 사무관은 "자문회의를 여러 차례 거쳤다, 보는 각도에 따라 다를 수 있는데, 별도로 '수치모델'로 검증했다"면서 "수리모형실험 결과가 나오면 실시설계에 반영할 것이고, 건설에서 설계는 바뀔 수 있다"고 말했다.
장은철 한림수리모형실험연구소 박사는 "다른 것에 비하면 급하다, 새벽 2~3시까지 작업하기도 한다, 하지만 여러 경험이 쌓여 있어 인력을 총동원할 경우 평소보다 2~3배 시간을 단축할 수 있다"고 말했다.
한편 임경모 국토해양부 사무관은 낙동강 합천보도 실시설계 변경을 하게 된다고 밝혔다. 합천보는 함안보 상류에 있는데, 함안보는 주변지역 침수 우려로 관리수위를 7.5m에서 5m로 낮추기로 하고 설계 변경 중이다. 한림수리모형실험연구소는 합천보 실시설계 변경으로 수리모형실험을 한 달 가량 연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