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텅빈 놀이터  지역 주민들은 김씨네 집을 '위험 지역'으로 간주해 김씨 집 앞 놀이터엔 아이들의 그림자를 찾을 수 없다.
텅빈 놀이터 지역 주민들은 김씨네 집을 '위험 지역'으로 간주해 김씨 집 앞 놀이터엔 아이들의 그림자를 찾을 수 없다. ⓒ 이주연
"내 동생은 예비 살인마가 되었다."

정신질환 장애인 동생을 둔 김서영(가명, 경기도 H시)씨의 절규다. 김서영씨는 장애인 동생 김성수(가명)씨가 이웃 주민들에 의해 부당하게 '위험인물'로 낙인찍히고 있다고 말한다.

사건은 사소한 시비에서 시작됐다. 지난해 5월, 아파트 단지 앞 놀이터에 있던 김성수씨가 발 앞에 굴러온 공을 세게 찼는데, 아파트 담을 넘긴 것. 공은 한 아이의 것이었다. 이를 본 아이의 엄마는 김성수씨에게 입에 담지 못할 욕을 수차례 했다고 한다. 이에 화가 난 김씨가 아이의 엄마를 때렸고, 아이 엄마는 눈 아래가 찢어지는 부상을 입었다.

하지만 이 사건은 김성수씨의 가족이 아이 엄마에게 보상금 300만원을 지급하면서 합의됐다. 사건은 그렇게 끝나는 듯 보였다.

"내 동생은 장애인이라는 이유로 예비 살인마가 되었다"

문제는 그 후에 발생했다. 김서영씨는 "사고 소식을 접한 부녀회와 입주자대표회 측에서 우리 가족을 몰아세우며 이사 갈 것을 강요했다"고 말했다. 폭력 행위를 할 가능성이 있는 정신장애인과 함께 살 수 없다는 것이 이유였다고.

김서영씨는 "동생이 발병한 지 10년이 지났지만 폭력사건이 발생한 건 처음"이라며 "누구라도 그렇게 욕을 해대면 화가 날 수밖에 없을 일이었을 뿐, 동생이 평소에는 폭력적이지 않다"고 말했다.

김서영씨에 따르면, 김성수씨는 정신질환 발병 이후 10여 년 동안 입퇴원을 반복하며 약물치료를 받아왔다. 김씨는 폭력사건 이후에도 용인정신병원에서 치료를 받았는데, 병원 측은 소견서를 통해 "입원 후 관찰시 폭력 징후는 없었다"고 밝혔다.

그러나 주민들의 반응은 격해져갔다. 2008년 김씨가 나체로 집밖에 나간 일이 있었는데, 이를 알고 있던 일부 주민들이 폭행사건을 계기로 더 크게 문제제기를 했다. 김서영씨에 따르면, 사고 발생 보름 후인 6월에는 아파트 주민 100여 명이 집 앞으로 몰려와 1층인 김씨네 집 베란다 모기장을 뜯고 확성기를 들이밀며 "동네를 떠나라"라고 요구하기도 했다.

김서영씨는 "'정신질환자가 부녀자를 폭행하는 사건이 있었으니 주민회의를 해야 겠다'는 방송도 3~4차례 나왔고, 6월에는 우리 가족을 노인정으로 불러내 가두다시피 하며 '주민들의 편의를 위해 김성수씨를 아파트에 들이지 않을 것이며, 김씨가 병원에서 돌아올 경우 이사간다'는 각서를 쓰도록 강요했다"고 주장했다.

 지역 주민들이 찢어 놓은 방충망
지역 주민들이 찢어 놓은 방충망 ⓒ 이주연

'공공의 이익' 우선이냐, '생존권' 우선이냐

2009년 10월, 김씨 가족들은 결국 명예훼손과 다중위력 행사에 의한 협박으로 부녀회장 등 일부 주민들을 고소했다. 그러나 수사를 맡은 경찰은 2월 초, 증거불충분과 '공공의 이익'을 이유로 이 사건을 불기소(혐의 없음)로 검찰에 송치했다.

사건을 담당한 해당 경찰서 관계자는 22일 기자와의 전화통화에서 "부녀회와 입주자대표회 측에서도 각서를 쓰게 하고 행패를 부린 것은 인정하고 있다"며 "다만, 행패부린 것은 불특정 다수가 벌인 일이라 김씨 측도 정확히 가해자를 지목하고 있지는 않은 상황"이라고 말했다. 그는 "김씨 측은 주민들이 각서를 쓰라고 '강요'했다고 하지만, 주민들은 그런 적이 없다고 말하고 있다"라며 "김씨 측의 말을 증명할 명확한 증거가 없다"고 덧붙였다.

경찰서 관계자는 이어 "정신질환자가 있다고 방송했다는 부분도 명예훼손으로 보기는 어려운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개인이 입은 피해냐, 공공의 이익이냐의 판단에서 공공의 이익에 손을 들어준 것이다.

조은영 장애인차별금지추진연대 활동가는 "공공의 이익을 이야기하는 것은 '정신장애가 있으면 공격성이 높아 폭력범죄를 저지른다'는 논리를 주민, 경찰, 검찰이 모두 갖고 있음을 뜻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정신장애인을 당연한 듯 범죄가능자로 몰고 있다는 말이다. 조 활동가는 또한 "이 문제는 이익이 아닌 생존권의 이름으로 이야기해야 될 사안"이라고 덧붙였다. 김씨 가족에게는 집이 더 이상 쉴 공간이 되지 못할 뿐 아니라 가족들 모두가 깊은 상처를 받고 살아갈 힘을 잃었다는 점에서 '생존'과 관련된 문제라는 것이다.

현재 진행 중인 소송에 대해 부녀회장은 "우린 잘못이 없다, 법이 해결해 줄 것"이라며 "고소가 들어와 경찰서에 가서 다 진술했다"고 말하고 있다.

이사를 종용했다는 김씨 측의 주장에 대해서는 "우리에게 (김씨네를) 내보낼 권리가 있는 건 아니지 않느냐"며 "다만, 우리 모두가 안전할 수 있게 김씨가 병원에 있길 바라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각서에 대해서는 "대답하지 않겠다"며 말을 끊었다. 해당 각서는 현재 검찰에 증거물로 제출되어 있는 상태이다.

부녀회장은 "정상적인 사람들도 사람을 죽이는데 정신장애를 가진 사람은 사람을 죽일 확률이 조금 더 있을 수 있지 않냐"며 "장애인이 보호받아야 하는 건 맞지만 나머지 주민 1600명의 인권도 보호받아야 한다"고 말했다.

 김씨네 가족을 가두다시피 하며 '이사 갈 것'이라는 각서를 쓰게 한 일이 발생한 경로당
김씨네 가족을 가두다시피 하며 '이사 갈 것'이라는 각서를 쓰게 한 일이 발생한 경로당 ⓒ 이주연

"정신질환, 누구에게나 있을 수 있는 일...이러지 마세요"

범죄를 저지를 '가능성'이 있다는 이유로 갖은 수모를 겪고 있다면서도 김씨네가 이사를 가지 않은 채 소송을 한 이유는 뭘까. 김서영씨는 "주변에 소문이 다 나서 집을 보러 오는 사람이 없다"며 "주민들은 훨씬 더 싸게 집을 내놓으라고 요구 하는데 그건 재산권 침해다"라고 말했다. 큰 손해를 감수하고 집을 팔더라도 그 돈으로는 마땅히 이사 갈 곳이 없는 것도 문제다.

김서영씨는 또 "이렇게 피해 입은 장애인 가족이 소송을 건 전례가 없다더라"라며 "모두들 참고만 사는데 이 일을 계기로 다시는 다른 이들이 우리 가족과 같은 일을 겪지 않길 바란다"고 말했다. "우리가 바라는 것은 그 분들이 자신이 한 일에 대해 잘못을 인정하고 책임을 지는 것일 뿐,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누구에게나 있을 수 있는 일이다." 김서영씨는 몇 차례나 이 말을 강조했다. 정신질환을 앓게 되는 것은 누구도 원치 않는 일이지만 누구든 당할 수 있다는 말이다. 김성수씨의 정신질환도 그렇게 시작됐다.

김성수씨가 처음 정신질환 증세를 보인 것은 10년 전이다. 그는 연예인을 꿈꾸며 예고진학을 준비하던 꿈 많은 소년이었다. TV에도 간간이 출연하며 소중히 키워 나가던 그의 꿈은 갑자기 집안 가세가 기울면서 좌절됐다. 그를 지원해줄 여력이 없었던 것이다. 예고에도 진학하지 못했다.

그때부터 김씨가 변하기 시작했다. 짝꿍이 책상 금을 넘었다며 연필로 손등을 찍어도 다투지 않고 집에 왔던 순한 아이는 한없이 예민해졌다. 처음엔 사춘기이겠거니 했지만 상황은 더욱 안 좋아졌다. 자신의 얼굴에 대한 집착이 심해지고, 부모님의 카드를 들고 나가 오토바이를 사는 등 예상치 못한 행동들이 이어졌다.

주변의 권유로 김씨는 정신과를 찾아갔다. 지능도 감소하고 사회성도 떨어지기 시작했다. 결국 정신분열증으로 정신장애 판정을 받았다. 재능 넘치고 꿈 많더 아이가 정신장애인이 된 것은 한 순간이었다.

정신장애인들이 지역사회에서 어울려 살 수 있는 방법은?

마음을 닫아버린 김성수씨와는 소통이 원활하지 않았다. 잘 모르는 사람이 다가서면 말을 잘 하지 못할 정도로 낯을 가리는 30살의 김성수씨. 가족과는 의사소통이 충분히 이뤄지지만, 이번 사건 이후 타인에 대한 경계심이 더 심해져 김씨와 오래 이야기하는 것은 불가능해 보였다.

김씨는 지난 18일, 용인정신병원에서 석달간의 입원을 마치고 퇴원했다. 그곳에서 쓰던 약물이 몸에 맞지 않아 타병원으로 옮기기 위해 수순을 밟고 있는데, 우선은 옮긴 병원에서 처방해준 약을 복용하며 부작용이 없는지 확인중이다. 김씨는 집에만 있을 경우 또 다른 위협이나 갈등이 있을지 몰라 출가한 누나 집을 오가며 생활하고 있다.

배기영 정신과 전문의는 "정신질환자가 가족이나 가까운 사람에게 폭력성을 띨 수는 있어도 이웃사람에게 더 폭력적이거나 하지 않다"며 "정신 장애인에 대한 부정적인 편견으로 정신과 환자는 폭력적일 것이라 보는 데, 일반적으로 그렇지 않다"고 말했다.

조은영 장애인차별금지추진연대 활동가는 "지역사회에서 자꾸 정신장애인들을 밀어내, 감정조절이 중요한 사람들에게 격한 감정을 갖게끔 사회가 부추긴다"며 "정신장애인들도 지역사회에서 어울려 살 수 있도록 포용해야 한다"고 말했다.

한편, 장애인차별금지추진연대와 사건 변호를 맡은 공익변호사그룹 공감 측은 검찰에서 최종적으로 불기소 결정을 내리기 전에 탄원서를 모아 제출하려고 준비 중이다. 23일 현재 65장의 탄원서가 모아졌다.

김서영씨는 "불기소로 소송이 끝나면 괴롭힘은 더 심해질 것인데 어떻게 해야 할지 막막하다"라며 "탄원서가 법적 효력은 없지만 많은 사람들이 지켜보고 있다는 것을 알리고 싶었다, 아무도 보지 않는 것과는 다르지 않겠느냐"라고 호소하고 있다.


#정신장애인#차별#소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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