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꼬메오름 초입에서 어김없이 산담을 스치다아무리 머릿속을 비우려 해도 나절로 이런저런 상념에 젖을 때가 있다. 이럴 때면 억지로 비우려 하기보단 차라리 어우러지는 것이 낫다. 특히 제주도에서 '산담'을 스칠 때는 더욱 그렇다.
노꼬메오름 가는 길, 어김없이 산담이 자리를 지키고 있다. 제주도 말로 '산'은 무덤이니 산담은 무덤에 둘러친 담인 셈이다. 산담은 삶과 죽음, 산 자와 죽은 자를 구별하는 일종의 경계다.
하지만 산 자들은 날마다 죽은 자의 거처를 지나고, 말들은 죽은 자의 거처에 핀 풀을 뜯으며 생명을 이어간다. 생사를 구별 짓는 확연한 경계가 삶과 생활의 한 복판에 있다는 것은 역설이다.
그래서 시인 이생진은 <섬 묘지>에서 이렇게 노래했던가.
"살아서 무더웠던 사람/죽어서 시원하라고/ 산꼭대기에 묻었다/살아서 술 좋아하던 사람/죽어서 바다에 취하라고/섬 꼭대기에 묻었다/살아서 가난했던 사람/죽어서 실컷 먹으라고/보리밭에 묻었다/살아서 그리웠던 사람/죽어서 찾아가라고/짚신 두 짝 놔두었다."
거스르는 것 하나 없는 어우러짐이 산담에 뚫린 바람구멍처럼 자연스럽다. 노꼬메오름 가는 길, 산담 안에 누운 무덤 두 봉이 유난히 평온해 보인 까닭도 그 때문일 테다. 무덤을 덮고 있는 눈이 하얀 솜이불처럼 보인 것도 그 때문일 테고.
여리딘 여린 억새 등뼈에 하얗게 핀 상고대제주도엔 368개나 되는 오름이 있다. 그중 노꼬메오름은 해발 833m로 꽤나 높고 덩치 있는 오름에 속한다. 물론 이 해발고도는 큰노꼬메오름의 높이다. 형제봉이랄 수 있는 작은노꼬메오름은 그보다 낮은 높이다.
왜 '노꼬메오름'이라 불렸는지는 여러 가지 설이 있다. '높은 뫼'라는 말에서 기원했다는 설도 있고, 노꼬메오름을 한자로 '녹고악(鹿古岳·鹿高岳)'이라 표기한데서 힌트를 얻어 사슴이 살았기 때문이라고 상상력을 발휘하는 이들도 있다.
백설(白雪)이 잔잔한 해발 833m의 오름 속을 걷는 것은 쉽지 않았다. 바람엔 시린 칼이 들어있었고, 한밤 추위에 단련된 눈길은 엄지발가락에 자꾸 힘이 가게 만들었다.
무엇보다 여린 억새며 나뭇가지엔 상고대가 한창이었다. 억새와 나뭇가지에 악귀처럼 달라붙은 찬 서리들이 다 녹는 날이면 이 섬에도 진짜 봄이 올 것이다. 상고대를 짊어지고 휘청거리는 억새, 그렇게 억새의 등뼈는 하얗게 휘여 봄을 기다리고 있었다. 제 알아서 바뀌는 철인 것 같아도 찬찬히 들여다보면 이렇게 모진 누군가의 고통으로 채워져 있다.
헤아리고 산다는 것이 그래서 힘들다. 스스로 겪어보지 않고선 감내할 수 있는 고통의 한계가 어디까지인지를 잘 모르고 싱거운 이해를 습관처럼 하기 때문이다. 걷는 것이 자동차를 타고 빠르게 질주하는 것보다 숭고한 단 하나의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 피할 수 없는 것들은 피할 수 없기 때문이다. 시린 바람이라든가, 헛디딤을 재촉하는 사나운 길, 여린 억새의 휘어진 등뼈를 정면으로 응시하는 것…. 외면하지 않는 것이야말로 헤아림의 처음임을 노꼬메오름은 다시 가르친다.
저 아래 사람의 마을이 보인다. 내가 떠나온 곳이고 다시 돌아가야 할 곳이다. 다시 돌아가면 나는 등뼈 하얗게 휜 억새처럼 살아갈 수 있으려나. 아무래도 자신이 없다. 다만 비겁하게 외면하지는 않겠다는 작은 약속을 반복하고 만다.
한 무리의 까마귀 떼가 날아올랐다. 마음 다짐 하나 더 늘었다.
'최소한 내 잇속을 좇아 떼 지어 먹잇감을 쫓지는 말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