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인철은 자기 잔에 술을 따르며 말했다.
"일단 저는 술을 한 잔 마시겠습니다."
"내가 따를게."
조수경은 술병을 건네받아 김인철의 잔에 따랐다.
"여자가 로맨스보다 좋아하는 게 뭐죠?"
조수경은 지체 없이 대답했다.
"돈."
"내 여자 친구하고 같군요."
김인철은 시무룩한 표정을 지었다.
"됐어. 서울 가면 절교해 버려."
"네."
"여사장에게 미끼를 던지자고."
조수경은 여자에게 투자 제의를 해 보는 게 어떻겠느냐고 했다. 그렇게 되면 여자는 스폰서인 진 회장과 상의하지 않을 수 없을 터였다.
"문제는 진 회장이 여자의 말을 듣고 나오겠느냐는 거지."
"나올 가능성이 많지만 안 나올 수도 있습니다."
"그러니까 정면으로 부딪치자고. 진 회장에게 보내는 투자 제의서를 통장 사본과 함께 서면으로 작성하고 보내는 사람 이름을 B. K.라고 써 버려."
김인철은 두 손의 엄지를 동시에 들어 보이며,
"선배님은 이거,"
그는 손가락을 중지로 바꿔 쳐들며,
"진 회장은 이거!"
라고 재롱을 피웠다.
진 회장과 여사장, 조수경과 김인철의 4인 회동은 불과 사흘 만에 이루어졌다. 조수경은 김인철에게 최고급 요리를 예약하라고 지시했다. 그녀는 아르마니 매장을 찾아 가서 블라우스와 투피스 한 벌을 구입했다.
조수경과 김인철은 재미동포 남매로 행세하기로 했다. 유천일과 안동준은 중국 공안부로부터 저소음 쾌속선을 지원 받았다. 그들은 선착장에서 대기하기로 했다.
진 회장은 중산복 차림으로 나타났다. 그는 카이저수염 속에 의혹과 호기심을 감추고 있었다. 날카로운 그의 눈빛은 조수경을 다소 긴장시켰다. 그는 명함을 두 사람에게 건넸다. 명함에는 '양성반점 회장 진 대(陳坮)'라고 박혀 있었다. 조수경은 북한의 테러리스트 진다이를 떠올렸다. 그는 팔이 길었고 턱이 강해 보였다. 그리고 그의 귀는 마치 주전자 손잡이 같은 모양이었다.
일어나서 진 대를 맞이한 조수경은 샤넬 핸드백에서 새로 만든 명함을 꺼내 진 회장에게 건네며 말했다.
"우리는 이곳에서 광동요리의 진수를 체험했습니다."
명함에는 ''B. K. 회장 조수경이라고만 되어 있었다.
조수경은 원시 때문에 명함을 아래로 내려 멀리 하여 보는 진 대의 눈썹이 미동하는 것을 놓치지 않았다. 그러나 진 대는 이내 평정을 찾은 얼굴로 말했다.
"감사합니다. 미각이 있으신 겁니다."
"마침 제 동생이 이곳에서 친구도 사귀었다고 해서 더 관심을 갖게 되었습니다."
"아, 우리 미령이 말씀이군요. 제 질녀입니다. 이곳 사장 역할을 아주 잘 하고 있습니다."
조수경은 광동요리에 투자를 시작하고 싶다고 말했다.
"서류를 검토해 보겠습니다."
그는 여사장을 돌아보면서,
"우리 진미령 사장하고도 상의해 보아야 합니다."
"답변을 기다리겠습니다."
진 대는 모임이 끝나갈 무렵 못내 궁금했던 것을 물어 왔다.
"B. K.는 무슨 뜻입니까?"
"우리 회사 상호입니다. Bright Know의 약자입니다."
남북합동작전진 대가 진미령의 배웅을 받으며 떠나는 것을 멀리서 지켜본 김인철은 선착장의 유천일에게 연락했다. 그러고는 임대해 놓은 택시를 타고 그를 미행했다. 운전기사로 변장한 조수경이 핸들을 잡고 있었다. 다행히 진 대는 다른 곳으로 새지 않고 바닷가를 향해 가고 있었다. 곧장 본부가 있는 섬으로 가는 모양이었다.
진 대가 선착장에 이르는 것을 확인한 조수경과 김인철은 다시 한 번 유천일에게 연락했다. 바닷길 미행은 얼굴이 알려지지 않은 유천일과 안동준이 맡기로 되어 있었다. 손을 흔들며 바다로 나아가는 유천일과 안동준을 먼발치서 본 조수경은 시내 방향으로 차를 돌렸다.
유천일과 안동준이 호텔로 돌아온 것은 새벽이 다 지나고 날이 밝아올 무렵이었다.
"범인의 본부임이 틀림없습니다."
유천일은 확신에 찬 어조로 말했고 안동준도 머리를 끄덕이며 동의했다. 유천일은 저우산군도의 동쪽 끝에 있는 섬까지 그를 미행했다고 했다. 섬에 가까이 이르러서는 안개가 지독히 심해서 앞을 볼 수 없었다고 했다. 쾌속정에 장착된 열상감지 시스템이 아니었다면 그를 놓칠 뻔했다고 했다.
조수경은 해도를 펼치며 말했다.
"우두외도임이 분명합니다."
이어서 유천일은 놀라운 소식을 전했다. 그들은 용감하게도 진 대가 상륙한 섬을 정찰했을 뿐만 아니라, 지휘부로 보이는 건물 내부를 들여다보았다는 것이었다.
"인공기와 태극기가 나란히 걸려 있었는데, 두 국기 사이에 'BOTH KOREA' 라고 씌어 있었습니다."
네 사람은 아침 식사도 거른 채 대책을 협의했다. 조수경은 서울 경찰청에, 유천일은 평양 인민보안성에 극비로 알리기로 했다. 양쪽에 보낼 극비 전통문의 내용은 동일하게 작성했다.
전통문은 코리아수사대라는 임시 명칭을 썼으며 수사관 네 사람의 성명을 연장자 순으로 명기했다. 전통문에는 조속히 서울과 평양이 합의해 주기를 바란다고 했다. 그리고 최소 소대 규모의 병력이 투입되는 작전을 즉각 개시해야 한다고 했고, 작전 시 섬 주변의 안개에 대한 특단의 대책이 필요하다고 알렸다.
덧붙이는 글 | 이 소설은 3,4회 더 연재된 후 막을 내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