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판은 법관의 양심에 따라 이루어져야 하지만 다른 법관들이 납득할 수 없는 유별난 법관 개인의 독단을 양심이라고 할 수 없고, 상식에 비춰 받아들일 수 없는 기준을 법관의 양심이라고 포장하는 것은 독단적 소신을 미화하는 것이다."
이용훈 대법원장은 22일 신임법관 89명에 대한 임명식 자리에서 "법관의 양심은 법관이 속한 사회로부터 동떨어진 것이 되어서는 곤란하다"며 이 같이 강조했다.
이 대법원장의 이런 발언은 최근 국민의 주목을 받던 사건에 대한 잇단 무죄 판결과 법관의 막말파문 등으로 사법부가 보수진영으로부터 집중포화를 맞으며 사법개혁의 도마 위에 오른 상황에서 판사들에게 진중한 자세를 당부하기 위한 것으로 해석된다.
그는 먼저 "사소해 보이는 사건에 대한 판단조차도 어느 것 하나 가벼운 것이 없고, 법관의 판단이 엄청난 사회적 파장을 불러오는 경우가 드물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을 것"이라며 "법관이 내리는 판단의 무거움은 시대가 흘러도 변하지 않는 것"이라고 말문을 열었다.
이어 "법률의 의미를 해석하는 작업은 법관의 핵심적인 임무의 하나로, 모든 법관에게 치밀하고 정확한 법리를 탐구하고 익혀서 구체적 재판에 올바르게 적용할 것이 요구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라며 "법리에 충실하지 못한 판결은 당사자에게 불편을 초래함은 물론, 커다란 사회적 논란까지도 초래할 수 있음을 잘 알아야 한다"고 끊임없는 실력 배양을 주문했다.
이 대법원장은 그러면서 "재판은 법관의 양심에 따라 이루어져야 하지만 그 양심은 보편타당한 것이어야지 독단적인 것이 되어서는 안 된다"며 "법관에게 판단의 기준을 제공하는 양심은 다른 법관과 공유할 수 있는 공정성과 합리성이 담보되는 것이어야지, 다른 법관들이 납득할 수 없는 유별난 법관 개인의 독단을 양심이라고 할 수 없다"고 힘주어 말했다.
또 "법관의 양심은 그 법관이 속한 사회로부터 동떨어진 것이 되어서는 곤란하다"며 "국민이 뿌리박고 생활하는 우리 사회의 일반적인 상식에 비추어 받아들일 수 없는 기준을 법관의 양심이라고 포장해서도 안 되는 것이며, 그것은 개인의 독단적 소신을 미화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고 법관의 양심과 독단적 소신을 잘 구분할 것을 주문했다.
그는 "그런 폐단을 피하기 위해서 법관은 언제나 법학 이외의 학문 분야의 소양을 키워나감은 물론, 사회현상에도 깊은 관심을 가져야 한다"며 "자신이 잘 모르는 분야에 관해서는 전문가의 도움을 받아가면서 보편타당성을 얻기 위하여 끊임없이 노력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재판과 관련된 부당한 것이면 어떠한 영향도 단호히 배제해야"
이 대법원장은 또 "헌법이 헌법과 법률에 의한 심판, 양심에 따른 심판을 강조한 것은 사법권 독립의 핵심적 내용인 법관의 독립을 보장하기 위한 것이나, 사법권의 독립은 법관 자신을 위한 것이 아니라, 공정한 재판을 통해 국민의 자유와 권리를 완전하게 보장하기 위한 헌법의 원리"라고 말했다.
이어 "법관의 재판상 독립은 헌법이 법관 한 명 한 명에게 부여하고 있는 절대 절명의 의무"라며 "이러한 법관의 재판상 독립을 이루어내겠다는 사명감이 없이는 법관의 길에 들어서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법관은 어떠한 정치권력이나 세력 혹은 압력으로부터도 자유로워야 하며, 일시적으로 분출되는 뜨거운 여론에 휩쓸려서도 안 된다"며 "때로는 합리성을 잃은 지나친 비판도 있을 수 있고, 견디기 어렵거나 마음을 약하게 만드는 사정들이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때도 있으나, 법관이 재판상 독립을 지켜나가기 위해 재판과 관련해 부당한 것이라면 그 어떠한 영향도 단호하게 배제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우리는 지난 사법부의 역사에서 그리고 최근의 상황에서 법관의 완전한 재판상 독립을 지켜내기가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를 직접 경험한 바 있다"며 "아무리 어렵더라도 우리는 그것을 지켜내야지 절대로 포기할 수 없다"며 절대 외풍에 흔들림 없이 재판에 임해줄 것을 강조했다.
"법정서 과도한 언행으로 재판주재자로서의 위엄 잃어선 안 돼"
이와 함께 이 대법원장은 최근 30대 판사가 69세 민사재판 당사자에게 막말을 한 것이 뒤늦게 밝혀져 비난을 받을 것을 염두에 둔 듯 재판 당사자들을 대하는 판사의 자세도 지적했다.
그는 "모든 국가기관의 권한이 그러하듯이, 우리가 행사하는 재판권도 국민으로부터 나온 것이지, 본래부터 법관이라는 집단이 재판권을 가지도록 된 것이 아니다"며 "법률적 소양을 갖춘 법관들에게 재판권을 위임한 것에 지나지 않기 때문에 국민이 우리를 신뢰하지 않는다면 사법부가 존립할 수도, 존립할 이유도 없다"고 말했다.
이어 "법정에 나와 있는 당사자는 여러분에게 재판받는 사람이기 이전에 법관들에게 재판권을 위임한 주권자인 국민의 한 사람임을 기억해야 한다"며 "여러분 앞에 서 있는 당사자가 법관에게 재판권을 위임한 주인임을 인식한다면 법정을 운용하는 법관의 자세가 어떠해야 하는 것인지 더 말할 필요가 없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그러면서 "법관은 재판을 주재하는 자이기 이전에 하나의 인간으로서 겸손할 줄 알아야 하고, 법정에서 불필요하거나 과도한 언행을 하여 재판주재자로서의 위엄을 잃어서는 안 된다"며 "이러한 법관의 덕목은 판사의 경륜이 쌓이면서 완성되는 것이지만, 초임판사 때부터 힘써 갈고 닦지 않으면 안 된다는 사실을 잘 알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아울러 "법관의 몸가짐은 법정 안에서만이 아니라 법정 밖에서도 많은 사람의 눈길을 받고 있다는 점을 마음 깊이 새겨야 한다"며 "항상 삼가고 혼자 있을 때조차도 도리에 어긋남이 없어야 국민이 신뢰하는 재판을 할 수 있다는 사실을 명심하길 바란다"고 당부했다.
신임법관 '우먼파워'…작년에 이어 올해도 70% 넘어
한편 이날 신임법관 임명에서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역시 '우먼파워'. 이번에 임명된 신임 여성법관은 63명으로 전체 70.7%를 차지해 사법부의 '우먼파워'를 과시했다.
이는 작년에 여성법관 비율 역대 최대치인 71.7%를 기록한데 이어 올해도 70% 이상을 차지한 것으로 대단한 수치다. 작년에는 신임 법관 92명 중 여성이 66명에 달했었다.
이 외에도 특이경력자가 다수 포함돼 눈길을 끌었다. 우선 경찰대 행정학과를 졸업하고 지방경찰청에서 근무한 경험이 있는 신임 법관이 3명으로 박규도·정교형 서울중앙지법 판사와 이종민 창원지법 판사가 있다.
회계법인에서 근무한 경험이 있는 공인회계사 출신은 4명으로 권수아 청주지법 판사, 김동관 인천지법 판사, 이선호 부산지법 판사, 조연수 서울중앙지법 판사가 있다.
이 밖에 국립세무대학을 졸업하고 국세청에서 7급 공무원으로 13년여 근무했던 세무공무원 출신 김태희 수원지법 성남지원 판사도 있다.
아울러 이번에 정왕현 고양지원 판사와 최지경 인천지법 판사가 나란히 부부 법관으로 탄생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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