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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한 달 용돈은 10만 원이다. 대학 졸업 후 행정인턴 이전까지, 행정인턴 이후 지금까지 쭉 10만 원으로 살았다. 아르바이트를 하면 더 많은 돈을 벌 수 있었겠지만, 처음에는 무슨 자신감이 있었는지 졸업하고 조금만 있으면 바로 취직이 될 거니까 아르바이트를 굳이 하지 않아도 될 거라 생각했었다. 그리고 부모님께 죄송해서 용돈을 올려달라고 말씀드릴 수 없어 그냥 그렇게 살았다.

물론 10만 원으로 산다는 게 쉬운 건 아니었다. 내 경우, 도서관이나 독서실을 따로 다니지 않고 집에서 공부하면서 밥도 집에서 먹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그런데 어느 날, 어머니께서 지나가는 말로 내게 말씀하셨다. 내가 집에 있으니까 눈치가 많이 보인다고. 그 다음날부터 난 도서관에 다니기 시작했고, 내 자신이 얼마나 '짠순이'가 될 수 있는지를 뼈저리게 느꼈다.

버스 대신 도보, 식당밥 대신 라면과 김밥, 도서관에서의 고군분투기

우리 집 근처에는 도서관이 없다. 가장 가까운 도서관도 버스를 타고 정거장을 10개 정도 지나서 다시 한 10분 정도 걸어가야 한다. 하지만 난 버스를 타지 않고 40분 정도를 걸어서 도서관에 도착했다. 용돈 10만 원에서 3만 원 정도를 교통비로 쓰기엔 너무 아까웠기 때문에. 다행히 집 앞에서부터 도서관 근처까지 산책로가 만들어져 있어 운동한다고 생각하고 라디오를 들으면서 걸어다녔다. 물론 그렇게 걸어서 도서관에 도착하면 거의 녹초가 되었지만, 어쩔 수 없었다.

도서관에 도착해서 책을 조금 보다 보면 어느 새 점심시간이 되었다. 도서관에서 공부하는 사람들은 도시락을 싸 오거나, 근처 식당에서 밥을 먹거나, 도서관 매점에서 컵라면을 사 먹는다. 나 역시 처음 3일 정도는 매점에서 컵라면을 사 먹었다. 어머니께 죄송해서 도시락 이야기는 꺼내지도 않았기에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하나에 천 원하는 컵라면을 먹는데 기분이 정말 묘했다.

그렇게 3일 정도가 지나니 슬슬 라면이 물리기 시작했다. 마침 도서관에서 10분 정도 거리에 있는 김밥집에서 한 줄에 천 원짜리 김밥을 팔았던 게 생각났다. 하지만 김밥 한 줄은 양이 좀 적으니까 밥을 늦게 먹으면 좀 나으리라 생각하고 평소보다 두 시간 정도 늦게 점심을 먹었다. 하지만 다른 사람들은 오므라이스나 국밥 등 조금 비싼 음식을 먹는데 나만 김밥 한 줄 먹는 게 너무 싫어서 한 번 그렇게 먹은 뒤 아예 김밥을 사서 도서관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며칠이 지나서 조금 돈을 더 써도 되겠다는 생각에 난 도서관 근처 슈퍼에서 작은 용기에 담긴 컵라면과 김밥 한 줄을 샀다. 합계 1800원. 이후 근처 편의점에서 샌드위치 두 개를 1700원에 판다는 것과, 근처 빵집에서 1주일 중 이틀은 2000원 정도면 배부르게 먹을 수 있을 정도의 빵을 판다는 걸 알게 된 뒤, 내 점심식탁의 메뉴는 더 다양해졌다. 한 끼 2천원이 무슨 대수냐 싶겠지만, 내게는 만찬이나 다름없었다. 거기에 가끔 남는 돈으로 근처 식당에서 3천 원짜리 카레라이스를 사먹는 날은 세상을 다 가진 듯한 느낌이었다.

하지만 난 내가 도서관에서 이렇게 점심을 먹는다는 걸 부모님께 이야기할 수 없었다. 이걸 아시면 당장 집에 들어오라고 하시거나 용돈을 올려주겠다고 하실 텐데, 그게 너무 죄송했던 것이다. 그래서 항상 점심 때 뭘 먹었냐는 질문에 '순두부', '김치찌개' 등 먹지도 않은 음식의 이름을 매일마다 말씀드렸다.

그렇게 몇 달 동안 살던 어느 겨울날, 심하게 춥지 않으면 버스를 타고 다니지 않던 내가 너무 추워서 버스를 탔던 그 다음날, 난 3주 동안 감기 몸살에 걸려 고생한 뒤 더 이상 도서관에 가지 않았다. 그리고 다행스럽게도(?) 집 근처 주민센터에서 청년인턴으로 일하게 되어 도서관에서의 고군분투기는 끝이 났다.

아끼면서도 포기하지 않았던 것, 기부와 적금

사실 5일씩 4주 동안 도서관에 간다고 했을 때, 10만 원이면 하루에 최대 5천 원짜리 점심을 먹을 수 있다. 하지만 내가 그렇게 아낀 데에는 이유가 있다. 포기할 수 없는 두 가지, 기부와 적금 때문에.

대학 재학 시절 동아리에서 잠깐 같이 활동했던 간사님이 있었는데. 언젠가 그 간사님께서 월 수입의 1/10은 십일조로 내고, 1/20은 동아리 후원을 하고, 1/20은 따로 기부를 하신다고 말씀하시면서 마지막에 이런 도전을 주셨다. 수입의 80%로만 살아가는 것이 쉽지 않아 보이지만, 실제로 해 보면 큰 불편 없이 살 수 있을 거라고. 그 말씀을 듣고 나도 졸업을 하면 얼마를 받든 꼭 저렇게 해보겠다고 다짐했었고, 도서관에서 '고군분투'할 때도 그 다짐을 지켜왔다. 그래서 내가 쓸 수 있는 돈은 10만 원에서 8만 원으로 줄었다.

하지만 이게 전부가 아니었다. 그 당시에 적금통장이 하나 있었는데, 내게 이 통장은 좀 특별했다. 이전에도 적금통장을 만들었지만 만기가 되기 전에 그냥 해약해버려서 용돈을 제대로 모으지 못해서, 이 통장은 월 2만 원씩 넣는 대신에 어떤 일이 있어도 절대 해약하지 않겠다고 다짐했던 것이다. 그래서 매달 적금을 2만 원씩 넣느라 내가 실제로 쓸 수 있는 돈은 8만 원이 아닌, 6만 원이었다.

지금까지도 나는 기부와 적금을 포기하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더 늘었다. 수입의 1/20을 기부하던 것에 조금 더 보태 하루에 백 원씩 모아서 이전에 기부하던 단체 말고 다른 곳에 기부를 시작했고, 2만 원씩 넣는 적금에다 주택청약저축을 합해 월 4만 원을 저축한다. 그리고 매달 남자친구와의 데이트를 위해 남자친구는 4만 원, 나는 2만 원씩 다른 통장에 저축한다. 그러다 보니 내가 실제로 쓸 수 있는 돈은 거의 없지만, 집에서 공부하다 보니 실제로 돈 쓸 일도 없어 부족한 줄 모르고 살고 있다. 또한 아껴쓸 수밖에 없는 생활을 했기 때문에 오히려 어렵게 사는 사람들을 더 생각하게 되고, 그 사람들을 위해 내가 가진 것의 일부를 내놓는 것을 기쁘게 여길 수 있게 되었다.

이제는 말할 수 있다. 여전히 내 용돈은 10만 원이라고. 하지만, 내게 이 돈은 단지 '만 원짜리 지폐 열 장'이 아니라고. 작지만 무언가를 나눌 수 있고, 불필요한 것들을 내 삶에서 서서히 줄여갈 수 있도록 만들어 준, 내 삶의 소중한 재산이라고.

덧붙이는 글 | '내 용돈을 돌려주세요' 응모글입니다.



#용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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