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학규 전 경기도 지사는 그를 "그냥 공무원이 아닙니다. 세계를 볼 줄 알고 서민과 애환을 함께하는 이 시대의 지도자" 라 평했다. 한명숙 전 국무총리는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하는 정치인 그리고 그 속에서 국민의 행복을 꿈꾸는 행정가"라는 찬사를 보냈다.
그는 스스로를 '대한민국 최고의 공무원'이라 밝힌다. 바로 6.2 지방선거 경기도 지사에 출사표에 던진 김진표 민주당 최고 의원이다. <대한민국 최고의 공무원>은 그가 쓴 자서전 제목이고 한 전 총리 와 손 전 지사는 '추천사'에서 그에게 이 같은 찬사를 보냈다.
2월 22일 오후 4시 여의도 의원회관 311호 실(김진표의원실)에서 김 예비후보를 만났다. 김 의원을 만나기 전 이력을 확인해 봤다.
김 의원은 74년 행정고시를 통해 공무원 생활을 시작, 2001년에 재경부 차관을 지냈고 2003년에 부총리 겸 재경부 장관직을 수행했다. 2004년에 국회에 입성하면서 정치인으로 변신, 2005년에 교육 인적 자원부 장관이 됐다. 2008년에 제 18대 국회의원에 당선됐으며 2008년에 민주당 최고위원이 됐다.
이 정도면 그가 쓴 자서전 제목 <최고의 공무원>이 결코 '허언'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또 정치입성 6년 만에 민주당 최고위원이 됐으니 정치력도 증명됐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이것만 가지고는 안된다. 최고의 공무원, 능력 있는 정치인은 될 수 있지만 그것만 가지고 경기도 지사가 될 수는 없다. 과연 그는 어떤 무기를 가지고 경기도 지사에 도전 했을까? 그게 알고 싶었다.
개성, 파주 연결해서 경제 자유구역 만들어야
경기도는 서울과 인천을 에워싸고 있으면 휴전선을 끼고 있어 남북문제, 통일문제가 중요한 지역이다. 통일 문제에 대해 김 의원은 이런 생각을 가지고 있다.
"현재 우리 정부 통일 문제 대응은 불합리 합니다. 전 세계 모든 나라들이 북한 돕자는데 이견이 없습니다. 오로지 대한민국만 외면하고 있습니다. 더군다나 동족인데. 동족이 굶는데 식량, 의약품 보내는 것은 당연합니다. 보수진영은 북한에 지원만 하자고 하면 덮어놓고 좌파니 빨갱이니 하며 몰아 부칩니다. 보수들 논리는 엎드려 빌 때까지 주지 말자는 겁니다. 그런 식으로 토를 다니까 북한에서도 보내지 말라고 하는 겁니다. 다른 나라 지진나면 몇 억씩 주면서 북한 굶어 죽는데 외면한다는 것은 동족으로서 말이 안됩니다."
재경부 장관 출신답게 남북문제 해법을 '경제 쪽'에서 찾았다.
"북한이 무너져서 얻어지는 통일이 가장 큰 비극입니다. 그렇게 되면 아마 북한 땅이 중국에 편입될 가능성도 있습니다. 그래서 교류 협력을 통해서 우리가 지원해야 합니다. 경기도에서 개성공단 활성화시켜야 합니다. 현재 개성공단은 얼어붙어 있습니다. 통행. 통관. 통신 등 '3통'에 제약이 있어서 물류비용이 많이 들어갑니다. 입점업체들 돈 벌게 해 줘야 합니다. 개성 파주 연결해서 홍콩 싱가폴 같은 경제 자유구역 만들어야 합니다. 그래야 물류 비용 줄어들고 경쟁력 살아납니다. 또 개성은 고려 500년 역사가 깃들어 있는 곳입니다. 우리가 투자해서 개발, 세계적 관광상품 만들어야 합니다. DMZ는 생태자원 활용해서 관광지 만들어야 하고요. 철도 연결해서 평양 거쳐서 유럽까지 진출해야 합니다."
선거는 전쟁이라 불릴 만큼 치열한 경쟁이다. 때문에 자기가 왜 전쟁터에 뛰어 들었는지 스스로 질문하고 답해야 한다. 그 답을 하지 못하면 유권자들에게도 왜 내가 승리해야 하는지, 왜 내가 도지사가 돼야 하는지 답할 수 없다. "김진표가 왜 경기도지사가 되어야 하는지 스스로 질문한 적 있는지?" 란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
"이명박 정부의 2년, 국정실패라고 할 수 있는 많은 잘못 저질렀습니다. 대표적으로 4대강 사업이 있습니다. 오만과 독선에 빠져 국민의 정당한 주장을 외면했습니다. 이것을 막아야 합니다. 표로 심판해야 합니다. 경기도는 경제 분야 일자리, 교육 력 초. 중. 고 최하위입니다. 경제부총리와 교육부 총리를 지냈고 야당 최고 의원을 하고 있는 제가 적임자입니다. 내 고향(수원) 경기도 의 발전을 위해, 그리고 대한민국 발전을 앞당기기 위해 도전할만한 가치가 있고 충분한 자신감도 있습니다."
호화청사 문제는 장기 집권의 폐해
호화 청사 문제는 식울 줄 모르는 경기도 이슈다. 김 의원은 이 문제에 대해 비판적인 시각을 가지고 있었다.
"한마디로 장기집권의 폐해입니다. 해당 시의회가 막았어야 할 일인데 한나라당이 장악을 하고 있으니 막을 수가 없는 겁니다. 용인시청, 성남시청....기네스북에 오르게 생겼습니다. 이렇게 큰 청사는 외국에서 본 적이 없습니다. 난 국회의사당도 크다고 생각합니다. 선진국으로 갈수록 대부분 청사가 조그맣습니다. 건물 값 절약해서 도와 줄 사람을 위해 써야 합니다. 이런 일(호화청사)이 중앙에서 일어나지 않는 것은 그나마 견제가 되기 때문입니다. 이 어려운 시기에 국민이 낸 세금을 쓰는데 우선순위를 정함에 있어 어떻게 건물을 크게 짓는 것이 우선순위일 수 있는지, 그런 점에서 경기도청이 광교신도시로 옮기려고 하는 것에 반대합니다. 광교신도시에 컨벤션, 주거편익시설, 신분당선 연장사업 등을 먼저하고, 경기도청 이전은 이후에 해도 됩니다."
김문수 경기도 지사를 뛰어난 정치인이라고 평했다. 하지만 경기도 지사는 정치력만으로 할 수 있는 자리가 아니라고 말했다. 또 경기도의 비극은 정치인 들이 도지사를 짧게 한 다음 대선병이 걸리기 때문이라 진단했다.
"김 지사는 뛰어난 정치인입니다. 언론에 자주 보도되게 해서 주목을 받고, 인기를 얻는 데는 김 지사가 뛰어납니다. 그런 정치력에서는 제가 부족하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도지사는 정치력만 있어서는 안됩니다. 경기도의 비극은 도지사가 너무 정치적이라는데 있습니다. 짧게 도지사 하고 2-3년이 지나면 대선병이 걸려 어떤 것이 대선에 유리할까 저울 질 하다 보니 경기도정에 일관성이 없습니다.
20년-30년 후에 경기도민이 무엇을 먹고 살아야 하는가, 어떻게 하면 핀란드와 같은 강한 도시가 되는지! 장기적인 안목을 갖고 교육, 인재, 기업육성 등 일련의 비전과 정책을 가지고 꾸준히 추진해야 하는데 그렇지 못했습니다
장기적인 계획을 추진하고 그것을 실천하는 능력은 행정가, 공직자 출신인 제가 앞선다고 생각 합니다. 도지사가 되면 경기도 미래를 책임질 수 있다. 또 저는 6년 만에 최고위원이 된 만큼 정치력도 어느 정도 있다고 생각한다. 갈등을 흡수하는 방법 도 잘 알고요."
노동문제에 대한 김문수 지사 조정 능력에 대해 이해가 가지 않는다고 평했다.
"이해가 되지 않는 부분입니다. 학창 시절부터 노동운동은 한 노동전문가인 김문수 지사가 있는데 어째서 경기도에서 노사 분규가 많이 일어나는지...쌍용자동차가 77일간 파업, 22명 기소... 도지사로서 문제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경제부총리를 하면서 금융조정 과정에서 조흥은행을 매각 한 적이 있습니다. 나흘 동안 협상을 하면서, 하루에 몇 차례 끝장토론을 한 적이 있습니다. 노사정이 자율적 교섭을 해야 불행히 최소화됩니다. 진정성을 가지고 현장에 나가야 합니다. 진정성이 없으니까 조정이 되지 않는 겁니다."
지적인 이미지 와 함께 농사꾼 같은 털털한 이미지가
김 최고의원은 대단한 달변가 였다. 질문 하나하나에 원고도 없이 답변 했지만 막히는 곳이 없었다. 이날 인터뷰에 참가한 기자는 총 5명, 답변이 길어 중간에 말을 끊으려 한 기자도 있었지만 난 손사래를 치며 만류했다. 긴 이야기 였지만 내용 연결이 잘 되고 상당한 전문성을 갖춘 답변이었기 때문이다.
정책을 논할 때는 전문성을 두루 갖춘 공무원 같았고 김문수 현 도지사와 정부를 비판 할 때는 파이팅 넘치는 정치인 같았다.
그의 이력은 성공한 공무원, 성공한 정치가라는 것을 대변해 준다. 서울대 법대를 나왔고 행정고시를 패스, 공무원이 되어 장관직 까지 올라갔다. 또 정치가로 변신해서는 불과 6년 만에 최고의원이 됐다.
분명 이력만 놓고 보면 성공 가도만을 달려온 사람들이 흔히 그렇듯이. 지적이고 날카로운 것이 정상이다. 이상했다. 그런 이미지 속에서 농사꾼 같은 털털한 이미지가 캡쳐 돼 나왔다. 왜 그럴까? 의문이 생겨 그가 쓴 자서전을 열어 봤다.
김진표의 어린 시절은 불우했다. 1.4후퇴 때 아버지 손을 잡고 피난을 내려온 실향민이다. 초등학교 때 닭과 돼지를 키웠고 농사도 지었다. 또 학창시절 대부분을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보냈다.
실패도 있었다. 그는 대학교를 재수해서 들어갔다. 고등학교 때 산과 들로 쏘다니며 통기타와 막걸리를 즐긴 이른바 불량 학생이었다고 고백한다. 대학에 떨어지고 서해바다에 뛰어들 마음 까지 먹었지만 마음을 고쳐먹고 공부해서 이듬해에 대학에 들어간다.
농사꾼 같은 털털한 이미지는 이런 불우했던 어린 시절과 약간은 방항적 이었던 사춘기 시절에서 묻어나온 것이라는 것을 쉽게 짐작 할 수 있었다.
경기도지사에 출마하면서 그가 가지고 나온 무기는 오랜 공직 생활을 통해 익힌 전문성과 정치 경험을 통해 얻은 파이팅, 그리고 농사꾼 같은 털털함 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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