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 26일, 이 날은 올림픽 피겨스케이팅(여자 싱글)에 출전한 김연아의 메달색이 결정되는 역사적인 날입니다. 올림픽을 위해 12년을 갈고 닦은 김연아의 오랜 기다림이 실현되는 날이자, 온 국민의 금빛 환호를 예약한 날이기도 하지요. 그런데 바로 그날, MBC 신임사장이 결정된다는 걸 아십니까?
엄기영 사장을 '쫓아낸' MBC 방문진이 24일 사장 후보로 3명을 낙점했습니다. 친MB 인사에 한나라당 혹은 보수우익단체와 연관된 친여 보수인사들로 말이죠. 이들 가운데 한 명이 최종 면접을 거쳐 26일 MBC 차기 사장으로 결정됩니다. 이들의 면면을 간략하게 둘러 보자면,
먼저, 구영회 MBC미술센터 사장은 이명박 대통령 모교인 고려대 출신입니다. 친한나라당 성향으로, 2008년 2월 엄 사장 선임 당시 한나라당에서 강력히 지지했던 인물 가운데 한 명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김재철 청주MBC 사장도 한나라당과의 친밀도 면에서 전혀 뒤지지 않는 인물입니다. 이 대통령과 오랜 인연을 맺은 덕에 친분 또한 남다르다고 하더군요. 대선후보였던 이 대통령이 2007년 9월 바쁜 일정을 쪼개 모친상에 조문갔을 정도.
마지막으로, 박명규 전 MBC아카데미 사장은 50여개 우파단체가 결성한 'MBC 정상화추진 국민운동연합'이 강력하게 미는 후보입니다. "표현의 자유보다 나라 망치는 MBC개혁(?)이 더 시급하다"고 주장하는 사람이지요.
이들 가운데 누가 되든 결과는 같을 겁니다. 'MBC 장악=친MB 언론 완성'이라는 밑그림대로 움직이는 판인데 달라질 게 무에 있겠습니까.
문제는 온 국민의 시선이 올림픽에 집중되는 틈을 타서 은밀하게 진행하려는 이명박 정부의 꼼수 탓에 이런 일이 전면에 부각되지 않고 소리 소문 없이 묻힐 가능성이 크다는 겁니다. 생각해 보세요. 김연아 이야기로 모든 언론이 도배될 것이 뻔한 26일, MBC 사장 선임 건에 관심을 가질 사람들이 얼마나 되겠습니까. 기껏 몇몇 사람들만의 문제제기로 끝나고 말테지요.
기억하실지 모르겠지만, 정연주 KBS 사장을 불법 해임하고 그 대타로 이병순 사장을 내세울 때도 과정이 이와 흡사했습니다. 다른 점이 있다면, 그때는 베이징 올림픽을 이용했고, 이번에는 밴쿠버 올림픽을 이용하려 한다는 것 뿐. 하계올림픽 때 KBS가 정리되고, 동계올림픽에 맞춰 MBC 사장이 바뀌는 이 기막힌 일치가 그저 우연한 일이겠습니까.
김연아의 금메달을 생각하면 26일이 한없이 기다려지고 가슴 설레지만, 그 뒷그늘에서 조용히 스러져갈 언론자유를 생각하면 그 날은 슬픔과 통곡의 날일 수밖에 없습니다. 아아. 정치 걱정 없이 올림픽을 순수하게 즐길 수 있는 소박한 기쁨을 언제쯤에나 맛볼 수 있을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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