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비가 내리던 서울의 어느 오후, 같이 MBA를 했던 한 친구의 결혼식에 다른 친구들과 함께 참석하게 되었다. 결혼식이 열린 커다란홀은 어림잡아도 백 명은 넘어 보이는 수의 하객들로 가득 찼다. 그러나 나와 친구들 무리는 다른 작은 방으로 안내를 받아, 천장이 낮고 어둠침침한 그 방에서 TV 화면을 통해 식이 열리는 모습을 지켜보게 되었다.

웨이터들이 "유럽식 정찬"이라며 정체 모를 코스 요리를 서빙하고 있었는데, 비행기에서 나오는 동그랗고 부드러운 스펀지 같은 식감의 빵이 나왔다. 작은 방은 하객들이 떠드는 소리로 가득했고, TV의 스피커는 고장이라도 났는지 등이 굽은 목사가 15분간 나른한 표정으로 읽은 주례사가 하나도 들리지 않았다.

화면을 보고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옆에 앉아 있던 친구는 요란스럽게 포크를 접시에 내던지고 다른 친구에게 "담배 피우러 가자"고 말한 뒤 방을 나가 버렸다. 결혼식이 끝나자마자 식이 열리던 홀의 구석에서 작은 밴드가 조금은 엉성한솜씨로 "Ain't No Mountain High Enough" 비슷한 노래를 연주하기 시작했고, 내가 있던 방의 스피커도 갑자기 살아나 큰 소리로 노래를 들려주었다.

결혼식의 주인공인 내 친구는 아름다운 부인과 함께 식장 맨 앞에 서서 어쩐지 힘없이 손을 흔들며 어색하게 웃고 있었고, 수백 개는 되어 보이는 카메라 플래시가 번쩍이며 두 사람의 모습을 담았다. 그때쯤 되었을 땐 나와 같은 방에 있던 모든 친구들이 자리에서 일어나 나를 부르고 있었다, "어이, 이제 가자고". 그것이 끝이었다. 내 친구의 삶에서 "가장 중요한 날", 다른 이들과 공유할 수 있는 부분이 그렇게 끝난 것이었다.

결혼식 온 지 얼마나 됐다고, "어이, 이제 가자고"?

대학교를 졸업한 뒤로 한국에서 수많은 결혼식에 참석하게 되었는데, 모두 그 친구의 결혼식과 비슷한 점이 많았다. 학위를 받고 얼마 지나지 않아 내 우편함은 친구들이 보낸 청첩장으로 가득 차기 시작했다.

한국의 결혼식에는 본질적으로 두 가지 종류가 있다. 서양식, 좀 더 엄밀히 말하면 미국식과 한국 전통 결혼식이다. 서양식에서는 척 봐도 그다지 개인적인 친분이 없어 보이는 기독교 사제와 하얀드레스를 입은 신부, 미키 마우스를 떠올리게 하는 흰 장갑을 낀 신랑을, 한국식에는 밝은 무지개 색깔 예복과 무릎을 꿇은 신랑이 바닥에 머리가 닿도록 절을 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눈에 보이는 그런 커다란 차이점들을 빼고는 사실 둘이 비슷한 점이 많은데, 결혼할 커플들이 어떤 쪽을 택해야할지 고심하다가 결국 중간에 옷을 갈아입고 계속 진행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공통점이 많은 것도 편리한 점이라 할 수 있겠다.

결혼식은 보통 웨딩홀이라 불리는 곳에서 이루어지며, 이 웨딩홀은 어떨 땐 국제적으로 유명한 체인호텔의 커다란 컨퍼런스 룸이 되기도 하고, 백조의 성이라 불리는 독일 노이슈반슈타인 성과 디즈니 월드의 장난감 성 사이 어딘가쯤을 모방하여 싸구려 인공석 타일로 지은 건물이 되기도 한다.

조금 불쾌한, 현금 주고 받는 한국인의 부조문화

또한 서양식이든 한국식이든 예식은 아주 빠르게 끝난다. 유럽에서는 아침부터 성당에서 전식을 올리고, 점심 식사 후에 하객들과 함께 리셉션을 한 뒤 종종 저녁까지 식이 이어지지만, 한국에서 참석했던 대부분의 결혼식은 이와 다르게 인사, 리셉션, 예식, 식사에서 사진 찍는 것까지 다 하는데 60분이 채 걸리지 않는 경우가 많았다. 그럼에도 많은 손님들은 그 정도도 기다릴 인내심이 없어 급하게 공짜 음식을 먹은 뒤 가버리거나, 혹은 방명록에서명만 하고 가버리기도 한다.

이런 현상은 한국의 결혼식들이 좀 덜 가족 중심이기 때문에 생기는 것으로 보인다. 사실 많은 손님들에게 결혼식은 거의 공적인 의무 정도로 느껴지는 것 같다. 이런 느낌이 더 심하게 드는 이유는 웨딩홀에 들어가는 것이 마치 인기 좋은 나이트클럽에 들어가기 위해 줄을 서는 것과 비슷한 느낌이기 때문이다.

결혼식에 도착하면 친구들과 양가 가족이 반갑게 맞아주는 대신에, 회계원 역할을 하고 있는 사람 앞에 먼저 줄을 서야 한다. 차례가 돌아오면, 방명록에 기입할 수 있도록 이름을 불러주고 현금이 든 봉투를 전하게 된다. 여기서 돈을 아끼는 것은 좋은 생각이 아닌데, 경비원, 혹은 정식 명칭이 뭐든지 이 회계 역할을 맡고 있는 사람이 봉투에 이름을 적기 때문이다.

더 심한 경우에는 다른 손님들이 기다리는 앞에서 바로 봉투를 열어 직접 돈을 세어 방명록에 액수를 적는 일도 있다. 이 장부는 나중에 신혼부부에게 전달되어 누가 누가 결혼식에 참석했는지, 어떤 사람이 그들 부부에게 더 정성을 쏟았는지 등을 알려주는 편리한 지침서가 된다. 많은 한국인들이 관습적으로 자신의 결혼식에 참석했던 사람이 나중에 결혼하면 예전에 받았던 것과 동일한 금액을 돌려주기 때문이다.

물론 유럽에서도 결혼식에 선물을 가지고 가는 것이 관례이지만 현금을 적절한 선물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며, 한국 결혼식에서 돈이 오고가는 과정 역시 아직도 나에겐 조금 불쾌한 느낌을 준다. 특히 너무 바쁘거나 참석하기 싫은 사람들을 위해 돈만 부칠 수 있도록 하단에 은행 계좌번호가 적힌 청첩장을 받는 것도 참 기분 나쁜 일이다.

그러나 이런 경우를 싫어하는 것은 나뿐만이 아니라, 많은 한국 친구들 역시 오랫동안 소원했던 지인들이 아마도 돈 봉투의 수를 최대한으로 늘려보려는 심산에서 갑자기 결혼식에 초대하는 게 너무 싫다고 말한다. 한국의 현직 대통령인 이명박이나 UN의 총장인 반기문 등 몇몇 주요 인사들도 최근 이런 관례를 사치스럽다고 비판했었다. 사실 박정희 전대통령이 결혼식에 현금을 선물하는 것을 금지시키려 하는 등 이전에도 회의적인 시선은 존재해 왔다.

여기서 계속 비판된 문제점은 현금을 선물하는 관습이 시민들에게경제적인 부담이 될 수 있다는 점뿐만 아니라, 또한 잘못하면 뇌물로 변질되기 쉽다는 점이었다. 금전적 선물을 주는 것이 정상으로 치부되는 문화를 키우다 보면 직접적으로든 간접적으로든 그런 일이 생기게 된다. 그러나 박 전 대통령의 시도는 결국 실패로 돌아갔고, 현 정권이 이를 성공시킬 만큼 노력을 기울일지에 대해서도 그다지 확신이 서지 않는다.

왜냐하면 한국 사회에서 서로비교하는 것은 빼놓을 수 없을 만큼 중요한 부분으로, 한국인들이 사회적 위치, 신분 등을 나타낼 수 있는 상징을 좋아하기 때문이다. 도로마다 속도 감시 카메라가 달린 나라, 항상 차로 붐비는 서울 같은 도시에서 이렇게 많은 빠른 독일 자동차가 보이는 이유가 결국 무엇이겠는가?

부모 동의없는 결혼 망설이는 젊은 남녀들

같은 맥락에서, 사실 한국의 결혼식은 사랑에 빠진 두 젊은이가 삶에서 가장 중요하고 소중한 시간을 맞는 것이라기보다, 그들의 가족이 사회에서 자신들의 위치를 확인하고 자랑하기 위한 자리라는 느낌을 더 자주 받곤 한다. 이런 사회적 위치는 하객의 수와 예식 장소 그리고 연회의 화려함 등으로 확인할 수 있다.

그래서 보통 부모들은 직접 초대할 지인들을 정해 청첩장을 돌리고,그 수는 결혼하는 커플을 위해 참석하는 하객 수를 넘을 때가 많은 것이다. 부모들이 축의금을 거둬가는 경우도 많다. 그러나 부모의 개입은 거기서 멈추지 않는다. 종종 자식의 결혼식에서 식의 형태와 장소를 정하는 것도 모자라, 결혼할 사람을 정하는 데까지도 관여를 하는 것이다.

부모가 사업 파트너나 지인들 중에 골라서 자식에게 선을 보도록 하는가 하면, 전문적으로 중매를 하는 에이전트를 고용하기도 하는데, 보통 발이 넓어 후보자를 많이 아는 중년의 여성들이 그런 역할을 하게 된다. 그런 방법으로 고른 후보자들은 보통 교육 수준, 가족 배경 등, 성격이나 사람 됨됨이 보다는 조건을 기본으로 하여 평가된다.

또한 인터넷의 출현으로 부모들에게 새로운 방법이 생겼으니, 교육 정도, 가족 배경과 경제 수준 등의 조건을 나열하여 검색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결혼전문 웹사이트들이 생긴 것이다. 그런 구식 중매에 별 관심이 없는 부모들도 있지만, 그렇더라도 결혼까지 진행되는 과정에서 여러모로 관여를 하기 마련인데, 많은 젊은이들이 부모의 동의 없이는 결혼할 수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또한, 혼전 동거 역시 사회적인 인식이 좋지 않아 보통 생각할 수 없는 일이다. 그런 이유로 많은 커플들은 결혼 전까지 서로에 대해 아주 잘 알고 있지 못한 경우가 많고, 좀 더 같이 시간을 보내기 위해 경솔하지만 빠른 방법으로 결혼을 택해 버리기도 한다. 소수의 경제력 있고 재치 있는 커플들은, 주변 사람들의 좋지 않은 시선을 피하기 위해 혼인신고를 하지 않고 일단 제대로 된 결혼식을 다 치르기도 한다.

그러면 같이 살다가 얼마간의 평가기간 후에 혼인 신고를 할 것인지 아니면 번거로운 여러 가지 과정들 없이 "이혼"할 것인지를 결정할 수 있게 된다. 그러나 보통제 3자인 뚜쟁이들이 관여된 경우 사랑 없이 결혼하는 경우도 많고, 서로 사랑했더라도 너무 성급하게 결정한 결혼은 오래 지속되지않는 경우가 많다. 한국의 높은 성매매 보급률(그리고 여기서 드러나는 높은 외도 비율)과 점점 치솟아 가는 이혼율의 이유를 여기서 찾을 수 있을 것이다.

결혼은 가족의 결합인데, 남편 가족에 넘겨지는 여성들

그리고 보통 유럽의 부모들과는 달리, 한국에서는 자식이 사귀고 있는 사람을 미래의 사위나 며느리라고 정식으로 소개 받기 전까지 별로 알아갈 기회가 없는 경우가 많다. 사귄 지 몇 년이 지나서야 부모에게 연인을 소개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결혼 후 부모와 며느리, 사위 간의 관계가 차갑고 소원하게 남는 데는 이런 이유가 크게 작용하고 있다.

결혼 후에도 부모는 계속 커다란 영향력을 행사하는데, 특히 시어머니들은 며느리가 자식을 낳아키우기에 자격이 없다거나, 자격이 없지는 않더라도 본인보다는 모자란다는 생각을 하는 것 같다. 결혼한 여성들은 자식을 기르고 교육시키는 데 대해 시어머니의 조언을 계속 들어야 할 뿐 아니라, 또한 전통적으로 시댁의 집안일들에 모두 참여하도록 되어있다.

여기엔 특히 큰 명절들을 위한 음식 준비에서 집 청소, 그 외에도 언제든 시댁에서 부를 경우 달려가 돕는 것 등이 포함되어 있다. 이 모든 것은 시어머니의 엄격한 감독 하에 시행되는데, 한국에서 시어머니란 젊은 며느리를 질투하는 못된 사람으로 묘사되는 경우가 많다. 젊은 여자들이 아직도 애정 없고 잔인한 시어머니가 있는 곳으로 시집을 가서, 아들이 사랑하는 여자라기 보단 가정부 정도의 취급을 받는 것을 상상하며 몸서리를 치는 것도 놀랄 일은 아니다.

오래된 편견 같지만 이는 아직도 현대의 수많은 드라마에서 인기높은 주제이기도 하다. 개인적으로는 드라마를 애청하는 주 연령층인 40~50대 여성들이 TV의 캐릭터는 동정을 하면서 현실에서 며느리를 대하는 자신들의 행동에 모순된 점을 느끼지 못하는 것이 놀랍게 다가온다.

또한, 한국 여성들이 결혼한 뒤 그런 심각한 불평등에 직면하게 되는 이유 중 하나는, 유럽에서와 달리 한국에서는 결혼이 두 가족을 정말로 연결시켜주지 않기 때문이라고 생각된다. 두 가족이 결합하는 대신 젊은 여성들이 남편과 남편의 가족의 손에 "넘겨지게" 되는 느낌이랄까.

참고로 부모들은 결혼한 딸을 부를 때 "출가외인"이라는 단어를 썼는데, 그런 심리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하겠다. 실제 양가 가족은 결혼식이 끝나고 나면 서로 만나거나 더 친해지기 위한 노력을 하는 경우가 별로 없다. 젊은 두 사람이 결혼을 통해 하나가 됨에 따라,그들의 두 가족 역시 더 자주 만나고, 식사를 하며 시간을 보내고, 크리스마스나 부활절 같은 명절들을 함께 보내며 그 결혼으로 인해 커다란 한 가족이 되는 유럽과는 경우가 조금 다르다.

덧붙이는 글 | 마티아스 슈페히트 기자는 독일에서 태어나 10여 년 전 첫 방한한 후 거의 매년 한국을 방문하다 2006년 서울로 이주했다. 독일 유러피안 비즈니스 스쿨에서 경영학 학위를 2008년엔 연세대에서 MBA를 취득했다. 그 후 서울에서 '스텔렌스 인터내셔널(www.stelence.co.kr)'을 설립하여 수출입 사업에 종사중이다. 최근 한국에서의 경험을 쓰기 시작한 개인 블로그는 http://underneaththewater.tistory.com/이다.



#결혼#전통#서양#유럽#며느리
댓글
이 기사의 좋은기사 원고료 5,000
응원글보기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