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알려져 있다시피 삼성그룹은 '성과주의'와 '관리', 그에 따른 충분한 보상, 그리고 국․내외 기업들이 가장 본받아야 할 모델의 상징처럼 평가되어 왔다. 즉, 그동안 삼성그룹은 최고의 연봉과 함께 가장 입사하고 싶은 기업으로 인식되고 있으며 최고의 직장으로서 부와 명예를 누리는 것으로 각인되어 왔다. 지금까지 삼성은 고(故) 이병철 삼성그룹 창업주의 유지를 받들어 무노조 원칙과 지나친 효율, 성과주의를 철저히 강조해 왔다. 또한 삼성그룹의 외부조직은 물론, 조직내부에서도 많은 문제점으로 지적되어 왔지만 크게 표면화되지 않았다. 삼성이라는 조직문화의 특성상 성과제일주의의 강조는 현장내외의 직원들로부터 상당한 압박을 받아왔다 것을 다양한 채널들에 의해 속속 드러나고 있다.
최근 김용철 변호사가 출간한<삼성을 생각한다>(2010, 2)는 삼성조직문화의 어두운 속성들을 파헤친 그 단적인 실례이다. 또한 이 책을 진보신문이라 자처하는 경향신문의 칼럼(2월17일자)에 소개하고자 한 전남대 철학과 김상봉 교수 칼럼의 누락은 삼성 공화국의 위상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이다. 마찬가지로 대전MBC에서도 삼성 반도체 백열병과 관련된 시사 보도프로그램을 보도하려고 시도하였지만, 결과적으로는 결방되었다. 대전MBC <시사플러스>의 경우, 2월 12일 방송을 내보낼 예정이던 '삼성반도체 백혈병 집단 발병'과 관련하여 80%의 촬영이 진행된 상황에서 명확한 이유 없이 돌연 취재가 중단되었다. 대전 MBC <시사플러스>는 삼성전자 반도체 공장에서 근무하는 동안에 백혈병과 림프종에 걸려 사망하거나 투병 중인 노동자들의 산업재해 논란과 관련하여 피해자 증언 등 심층 취재를 통해 반도체 사업장의 유해성 여부를 확인하려 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흔히 '청정산업'이라 불리는 삼성반도체의 산업 현장에서 과연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일까? 삼성 반도체 백혈병 논란의 핵심은 이렇다. 지난 1월 11일 삼성전자 반도체 기흥제조공장에서 근무 중 백혈병 진단을 받은 근로자 3명과 백혈병으로 숨진 근로자 3명의 유족은 근로복지공단을 상대로 서울행정법원에 '산재보상 신청 불승인 처분'을 취소해 달라는 소송을 제기한 상태다. 이 분들에 의하면, 반도체 제조 공정에서 벤젠과 전리방사선 등 발암물질들에 노출되어 지난 10년간 근로자 22명이 백혈병 등 조혈계 암에 걸렸고 이 가운데 7명이 숨졌다고 주장한다. 그 외 각종 암과 질병에 걸린 사람들도 더욱 많다고 한다. 이는 그동안 공장에서 제대로 된 보호 장비도 없이 유독한 화학물질과 방사선을 다루어온 결과로 보인다.
백혈병 피해자들의 공통점은 저임금, 열악한 노동조건과 유독성 화학물질을 무방비 상태로 다루고 있다는 점이다. 그간 삼성 측은 백혈병 발병 사례를 축소하고 노동자들의 집단 발병을 아주 우연한 일로 치부해 왔으며, 공공기관인 산업안전보건공단과 근로복지공단 역시 노골적으로 삼성을 편들어 왔다. 지금까지 삼성전자 반도체 근로자들의 백혈병과 업무 연관성을 조사한 결과는 사뭇 엇갈려 왔다. 한 실례로 근로복지공단과 산업안전보건공단은 발암물질인 벤젠에 대한 역학조사에서 "백혈병 발암물질인 벤젠이 검출되지 않았다"며 산재 승인을 거부했다. 하지만 최근에는 국회에서 삼성반도체의 발암물질인 벤젠이 검출됐다는 서울대 산학협력단의 조사결과가 나와 산재인정을 둘러싸고 논란이 거세지고 있다.
지난해 10월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소속 김상희 민주당 의원과 홍희덕 민주노동당 의원은 삼성전자 등 반도체 제조사의 공장 6곳을 대상으로 서울대 산학협력단이 실시한 '산업안전 위험성 평가 조사 결과'를 공개하여 "1급 발암물질인 벤젠이 검출됐다."고 보고 한 바 있다.
이렇듯 삼성은 핵심사업인 반도체 사업에서 백혈병 논란에 휩싸여 있다. 반도체 생산 공장에서 사용하는 화학물질은 백혈병과 암을 일으키는 주범으로 지목받고 있다. 다시 말해 세계에서 가장 위험하고 질병 발병률이 높은 산업이 반도체 산업으로 알려져 있는 것이다.
하지만 대다수의 기업들은 생산 공장에서 사용하는 화학물질의 종류와 사용처를 아직도 제대로 밝히지 않고 있다. 반도체 노동자들은 백혈병 발병 원인이 되고 있는 방사선 발생 장치의 화학물질을 직접 현장에서 다루고 있으며 최단 2∼3년, 최장 10년 이상을 근무하다 비슷한 시기에 질병을 얻고 있다고 한다. 현재 수조원의 이익을 내는 삼성 반도체 및 LCD사업의 신화 뒤에는 수많은 이름 없는 노동자들의 애환과 희생이 숨겨져 있다. 언제나 '또 하나의 가족'을 외치는 삼성, 삼성반도체 공장에서 일하다 각종 질병에 걸린 노동자들은 그 삼성이 버린 '또 하나의 가족'이기에 그들의 고통을 애써 눈감아 버린다면 더 이상 삼성의 신화는 없다.
지난 2007년 3월까지 삼성반도체 기흥공장 노동자였던 고(故) 황유미 씨의 억울한 죽음을 통해 반도체 산업의 위험성이 세상에 알려지게 된 바 있다. 황유미씨의 경우 삼성반도체의 입사는 불행의 시작이었다고 한다. 입사한 지 2년이 채 안돼서 몸에 멍이 자주 들었고, 먹으면 토했다고 한다. 또한 언제나 매우 피로하고 어지러웠다고 전한다. 황씨는 기흥공장에서 낡고 수동라인의 3라인 3베이에서 2인 1조로 짝을 지어 4~5가지 화학물질에 반도체 원판을 담갔다 뺐다하는 일을 반복하는 일을 했다고 한다. 급성골수성 백혈병에 걸려 투병하던 황씨는 입사한 지 4년여 만에 숨졌다. 황씨 유족은 유족보상 및 장의비청구를 했으나 지난해 11월 망인의 업무와 사망원인인 '급성골수성 백혈병의 인과관계를 인정할 만한 객관적인 증거가 미흡하다'는 이유로 공단으로부터 기각결정을 받았다.
이렇게 반도체 분야에서 백혈병으로 죽은 노동자들은 아직까지 산업 재해를 제대로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 이들 노동자들은 삼성반도체 신화의 드러나지 않은 주역들이지만, 병을 얻은 이후에는 당연히 보호받아야할 건강권을 침해당한 채 안타깝게도 이 세상을 하직하거나 질병에 걸린 채 투병생활을 통해 쓸쓸한 나날을 보내고 있다. 지금도 피해 당사자와 유가족은 반도체노동자의 건강과 인권을 지키는 단체인 '반올림'과 함께 산재 인정의 힘겨운 싸움을 계속하고 있다. 유감스럽게도 노동자들의 건강과 안전을 책임져야 할 노동부, 근로복지공단, 한국산업안전보건공단은 노동자들의 입장을 대변하기 보다보다는 삼성의 편이었다.
1972년 바삭(K. Vasak)이라는 프랑스 법학자는 전통적으로 국제적 수준에서 인권을 크게 3개의 범주로 구분한 바 있다. 하나는 제1세대 인권이라 불리는 시민적․정치적 권리(자유)이고 다른 하나는 제2세대의 인권이란 경제적․사회적․문화적 권리(평등)이다. 그리고 또 다른 하나는 제3세대 인권이라 불리는 새로운 연대권(solidarity right)이다. 여기서 연대성은 프랑스 혁명 당시 구호였던 자유, 평등, 형제애 가운데 형제애에 대한 현대적인 표현을 일컫는다. 형제애의 요소, 즉 현대의 의미로는 연대, 협력, 결속이라고 볼 수 있다.
제3세대 인권은 제1,2세대 인권과는 다르게 국가와 개인의 관계 속에서 파생되는 권리가 아니라 연대의 권리라는 점이다. 특히 새로운 인권으로서 제3세대 인권은 건강한 환경권을 요구할 권리, 깨끗한 물을 요구할 권리, 깨끗한 공기를 요구할 및 평화권이 이에 해당한다. 1988〜1989년 UN 제43, 제44차 총회에서는 연대성에 기반을 둔 인권을 의제에 포함시킨바 있다. 평화권, 개인의 발전, 쾌적하고 건강한 환경, 인도적 조력, 그리고 인류공동유산에 대한 이익의 향유는 모든 적절한 수단으로 고려해야 한다는 내용이 포함된 결의안을 제출했다. 또한 최근 국내․외의 많은 법학자들도 제3세대 인권에 대해 건강한 환경을 향유할 권리, 건강하고 조화된 환경에서 살 수 있는 권리를 제시하고 있다. 제3세대 인권이란 모든 것을 개인의 차원의 문제로 접근하는 것이 아니라 그 개인이 속해 살아가고 있는 공동체의 모습, 사회의 건강한 모습, 국가의 건강한 모습, 그리고 환경을 함께 고려하며 자신이 속한 공동체의 의무를 생각하는 인권인 것이다.
언론의 사명은 올바른 공정보도와 보다 낮은 곳에 있는 사람들에게 시선을 돌려 그들의 애환들을 보듬는 것이리라. 지금껏 여러 방송매체 중에 유독 MBC 방송은 이명박 정권아래서 언론의 역할과 사명을 다하고자 힘겨운 싸움을 해 온 것을 잘 안다. 조금만 더 힘과 용기를 내어 대전 MBC의 시사프로그램이 삼성이라는 거대공룡기업의 압력에 굴복당하지 않고 언론의 공정한 보도를 다시 꿋꿋하게 지켜 주기를 바라마지 않는다. 무엇보다 MBC를 비롯한 방송매체들의 현재사명은 지금 백혈병에 걸려 시름하는 노동자들의 건강권이 짓밟히는 현실을 다시 고발하고, 산재 승인을 받기 위한 유족들 및 관계단체들의 험난한 과정들을 상세히 기록하는 것이 아닐까? 지난 대전 MBC 시사프로그램의 결방은 특성상 위험가능성에 대한 데스크의 우려에 대해서는 충분히 공감할 수 있다. 하지만 방영 결과물을 놓고 판단해도 그다지 늦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제작 도중에 취재 중단을 지시한 것은 그다지 납득하기 쉽지 않다. 따라서 대전 MBC는 시사프로그램의 결방의 원인에 대해 보다 합리적 방안을 찾고 국민들의 알 권리를 다시 보듬어 줄 것을 진정 촉구하는 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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