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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25일 오전 8시 30분. 간이 천막 아래로 사람들이 하나 둘 모여 들었다. 바로 전날 국토관리청의 '4대강 측량작업 강행'에 반대하다 연행된 뒤 저녁에 불구속 석방된 농민들의 얼굴도 보인다. 이날 팔당지역 유기농 농민들은 측량작업 예정지역 입구를 트랙터로 막고 '문화제'를 열기로 했다. 어제 연행되었다 풀려난 유영훈 '농지보존 친환경농업 사수를 위한 팔당공동대책위(이하 팔당공대위) 회장은 "오늘은 반드시 (측량작업)을 막아야 한다"고 결연하게 말했다.

문화제에 참석한 사람은 농민들만이 아니다. 농민들이 생산한 유기농 농산물의 '소비자'인 생활협동조합 조합원들도 함께 했다. 이들은 서로를 '생산자님', '소비자님'이라고 부른다. 오늘은 집회가 아닌 문화제이니만큼 먹을거리도 준비되었다. 음식을 준비하는 것은 주부가 대부분인 '소비자님'들의 몫. 천막 아래 프로판 가스와 커다란 솥이 눈에 띈다. 이날 문화제에는 60여명이 참석했다. 맞은 편 도로에는 형광연두색 우비를 입은 경찰들이 국토관리청 그리고 남양주시 관계자들과 함께 서 있다. 

 한강 제9공구 '4대강 측량작업' 둘째 날, 팔당지역 유기농 농민들이 측량작업 예정지역 입구를 트랙터로 막고 문화제를 열고 있다.
한강 제9공구 '4대강 측량작업' 둘째 날, 팔당지역 유기농 농민들이 측량작업 예정지역 입구를 트랙터로 막고 문화제를 열고 있다. ⓒ 팔당공대위

 간이천막 아래 농민들이 모여있다.
간이천막 아래 농민들이 모여있다. ⓒ 팔당공대위

4대강 사업자 선정, "전혀 예상치 못했다"

 팔당지역 유기농 농민 임인환씨
팔당지역 유기농 농민 임인환씨 ⓒ 홍현진
'생산자' 임인환씨는 지난 2005년 8월에 귀농했다. 마흔 살이 되던 해였다. 그는 늘 나이가 들면 농사를 짓고 싶다고 생각했다. 이왕 지으려면 유기농이 좋겠다 싶었다. 팔당 지역에 오게 된 것은 대학 친구 최요왕씨의 권유 때문이었다. 최씨는 임씨보다 조금 5개월 정도 먼저 귀농했다.

처음 2년은 상황을 보기 위해 부인과 아이들을 서울에 두고 혼자 내려와 지냈다. 최씨의 집에 얹혀 살면서 농사일을 배웠다. 유기농 농민들이 가입해있는 영농조합에서 배송일도 했다.

유기농을 처음 시작하면서 시행착오도 많았지만 이 지역 토박이인 노태환씨가 많은 도움을 주었다. 이 지역에는 젊은 귀농인들이 많은 편이다. 임씨보다 나이가 많은 귀농인이 3~4명, 나이가 적은 귀농인이 10여명 정도 된다.

공동체의 결속력도 강하다. 유기농은 매일 매일 일을 해야 하다 보니 서로의 손이 필요할 때가 많다. 유기농을 시작한 지 만 6년, 임씨는 지금 두물머리에 있는 논 1000평에는 벼농사를 짓고, 시설 하우스에서는 딸기·방울토마토·양배추·오이 등을 재배하고 있다.    

팔당지역이 4대강 사업자에 선정된 건 지난 6월이었다. 임씨는 "전혀 예상치 못했다"고 회고했다. 4대강 이야기가 나올 때도 '뚝방 정도는 쌓겠구나', '농사를 못 짓게 하지는 않겠지'라고 생각했다. 그도 그럴 것이 팔당지역은 수도권 유기농 생산의 60%를 담당할 정도로 '유기농의 중심지'였기 때문이다.

2011년에는 '세계유기농대회'도 팔당 지역에서 유치된다. 임씨는 2008년 6월 이태리에서 열린 세계유기농대회에도 참석했다. 김문수 지사도 함께였다. 그런데 이곳을 갈아엎고 자전거도로와 공원을 조성한다니, 임씨는 이해할 수 없다.  

"유기농 '소비자'들이 농민들의 가장 큰 지원자"

 농민들이 삼삼오오 모닥불 주위에 모여있다.
농민들이 삼삼오오 모닥불 주위에 모여있다. ⓒ 홍현진

'소비자'들은 농민들의 가장 큰 힘이다. 어제 농민들이 연행돼 경찰서에 갔을 때도 생협 조합원들이 음식을 가지고 방문했다. 매번 시위가 있을 때마다 음식도 만들어주고, 돈도 보내준다. 오늘도 마찬가지다. 두부김치에 라면, 백숙까지 메뉴도 다양하다.

팔당 지역에는 '팔당생명살림연대'라는 이름의 세 개 단체가 있다. 유기농 농산물 생산자로 이루어진 영농조합, 생산자와 소비자 모두 가입할 수 있는 생활협동조합 그리고 이 두 단체를 아우르는 사단법인 팔당생명살림연대가 그것이다. 영농조합에는 90여가구, 생활협동조합 4000여가구가 가입해 있다.

이러한 단체를 통해 생산자 소비자는 활발하게 교류하고 있다. 생산자와 소비자는 서로의 얼굴을 아니까 '임인환씨 딸기 주세요'라는 말이 가능하다. 일손이 부족할 때는 소비자들이 직접 와서 도와줄 때도 있다. 감자 캐는 걸 도와주면 그냥 주기도 한다. 그만큼 생산자와 소비자간의 관계가 친밀하다.

지난해 6월 사업자 선정 이후로 임씨는 예전만큼 농사에 신경을 많이 못 쓰고 있다. 오늘 같은 날도 이렇게 하루 종일 밖에 나와 있다 보면 손이 부족하다. 매일 매일 대책회의가 있다 보니 집 사람 며칠 못 볼 때가 있다.

팔당공대위 대책위원장인 서규섭씨 같은 경우에는 4~5개월째 밭에 못 들어갔다. 그래도 막아보는 데 까지는 막아볼 생각이다. 측량작업과 지질조사가 끝나면 감정평가와 보상작업이 진행될 것이다. 손발이 묶여 쫓겨날 수도 있지만 구속도 각오하고 있다.

"연행된 농민들 만나러 경찰서도 방문"  

'소비자' 미카엘라는 남양주에 온 지 3년이 됐다. 강남에 살던 그녀 역시 시골에서 살고 싶었다. 하지만 아이들 공부 때문에 망설였다. 그러다 10년 전 우연히 이곳에서 2년 동안 살 기회가 있었다. 그때의 기억이 좋아서 두 딸을 시드니로 유학을 보낸 후 남편과 함께 남양주로 왔다.

생협을 알게 된 것은 성당 활동을 통해서였다. 지금은 생협에 있는 재활용매장에서 봉사활동을 하고 있다. 유기농의 좋은 점은 생산자들을 믿고 살 수 있다는 점이다. 조합을 통해서 유기농 농산물을 구입할 때도 있지만 가끔씩은 일을 도와주고 공짜로 음식을 얻기도 한다. 4대강이 들어서 농민 분들이 농사를 짓지 못하게 되면 조합원들은 멀리서 먹거리를 구해야 한다. 공동체도 사라진다. 이는 너무도 슬픈 일이다.

지난해 6월 이곳이 4대강 사업지로 선정된 이후에는 평생 안 가보던 경찰서도 방문해봤다. 시위에 참여하면서 운동권 노래도 많이 듣는다. 미카엘라는 "내가 할 수 있는 건 머리수 채워주는 거 정도"라면서 계속해서 문화제 자리를 지켰다.

 천주교 신부 10여명이 천막 아래에서 미사를 드리고 있다.
천주교 신부 10여명이 천막 아래에서 미사를 드리고 있다. ⓒ 홍현진

오후 3시경 신부 10여명은 천막 아래 파란색 플라스틱 의자에 둘러 앉아 미사를 드리고 <아침이슬>, <바위처럼>과 같은 노래를 불렀다. 서울경기 지역 신부들을 전날 밤 긴급회의를 열어 "농민들이 연행되는 것을 보고 가만있을 수 없다"며 현장으로 나왔다. 천주교는 지난 17일부터 양평 두물머리에서 농성을 시작했다. 기독교 목사들은 팔당 유기농지에서 사순절까지 릴레이 단식농성을 진행하고 있다.

옆에 있는 '생산자'와 '소비자' 그리고 시민단체 회원들도 노래를 따라 불렀다. 비가 와서 그런지 날씨가 쌀쌀하다. 땔감을 가져와 모닥불을 피운다. 그 주위에 삼삼오오 둘러서서 이야기를 나눈다. 비가 와서 땅이 질척거린다. 발이 진흙 속에 쑥쑥 빠진다.

결국 이날 별다른 충돌은 없었다. 하루 종일 지리한 대치만 계속되었다. 국토관리청은 농민들이 막아 놓은 곳을 제외한 지역에서의 측량작업을 대부분 마무리했다. 그러나 이 지역은 측량작업이 필요한 장소 중 하나이기 때문에 또 다른 충돌은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4대강 #4대강 측량#팔당 #유기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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