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마이뉴스>는 창간 10주년기념 특별기획으로 '유러피언 드림, 그 현장을 가다'를 연중 연재한다. 그 첫번째로, 시민기자와 상근기자로 구성된 유러피언 드림 특별취재팀은 '프랑스는 어떻게 저출산 위기를 극복했나'를 현지취재, 약 30회에 걸쳐 연재한다. <편집자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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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여기는 프랑스 파리. 에펠탑이 창문으로 보이는 아다지오 호텔. 불과 3주 전만 해도 나의 현재 모습을 상상할 수조차 없었다.
2월 4일 아침, 일어나서 습관대로 메일을 확인했는데 <오마이뉴스>로부터 한 소식이 와 있었다. 설마? 하지만 그 설마가 진짜였다.
'<유러피언 드림>의 현장을 가다' 그 첫 번째 기획이 프랑스편인데 내가 10만인클럽(오마이뉴스 유료회원) 독자 대표로 참여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내가 너무 욕심내는 거 아냐?
나에게 온 메일은 작년에 진행되었던 노무현 강독회가 인연이 되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서거 전에 읽었던 책 11권을 매주 강독하는 프로그램을 <오마이뉴스>에서 마련해 참여하게 되었는데 제레미 리프킨의 <유러피언 드림>도 있었다. 이 책은 개인의 자유를 중시하고 물질적 부를 성공의 기준으로 삼는 아메리칸 드림의 시대가 가고 공동체 정신과 삶의 질을 중시하는 유러피언드림의 시대가 온다는 내용이었다.
그런데 어느 날 강독회 뒤풀이에서 '유러피언 드림을 유럽에서 확인하다'는 행사를 해보자는 얘기가 <오마이뉴스>와 수강생 사이에서 나왔다. 우리 사회 곳곳에 배어든 아메리칸 드림의 멀지 않은 미래상을 너무도 정확히 예상하며 그 폐해와 한계를 지적하고 유럽의 새로운 연대와 시도에 대해 긍정적인 시선을 보내는 저자에 가슴 절절히 동의한 부분이 많았다. 그 현장을 내 눈으로 보고 확인할 수 있다면 어떻게든 꼭 참여하고 싶다고 그 자리에서 밝혔었다. 꼭 시민기자가 아니어도 독자도 참여할 수 있다니 이보다 더 좋을 수 있겠는가? 그리고 몇 달 후 2월 초에 연락이 온 것이었다.
너무나 가슴에 담아두고 품었던 것이라 꼭 참석하고 싶었지만, 나의 상황은 만만치 않았다. 워킹맘인 나는 2월 중순이나 3월부터 일을 다시 시작해야 할지 모르는 상황이었다(나는 금융계 전산시스템 구축 관련 프리랜서 일을 한다). 또 개인적으로 글쓰기 훈련을 받기 위해 한 단체에서 하는 프로그램에 참여하고 있었는데 앞으로 4주 동안 매주 한 권의 책을 읽고 글을 써야 하는 숙제가 기다리고 있었다. 여기에 이것까지? 이거 가능한 것인가? 내가 너무 욕심내는 거 아닌가?
나는 거기에 남편과 15살, 11살 두 딸이 있는 가정의 주부이기도 했다. 하지만 일은 원래 몰릴 때 몰리는 법, 부딪치다 보면 길이 있겠지 라는 생각으로 일단 "참석합니다"라고 메일을 보내고 스케쥴을 조정했다. 다행히 일과 관련한 회사의 대표는 그런 방면으로 유연하게 사고하는 분이라 가능했다. 취재여행이 끝난 후 3월 둘째 주부터 일을 시작하는 대신 3월 첫째 주 분량을 2월 중에 일주일 출근해서 맞추는 것으로 했다.
그리고 글쓰기 숙제 제출하는 것도 어떻게든 제출해야지라고 마음먹었다. 지금 프랑스에 도착한 상황 기준으로 3주차 분량을 한국에서 출발하는 날 새벽에 송고하고 왔다. 상상이 되시는가? 나, 거의 2주일 동안 제정신이 아니었다. 그래… 뭐든 마음먹기 나름임을 다시 한번 확인했다.
이런 우여곡절 끝에 나는 <오마이뉴스>의 시민기자·상근기자·전문가 등 8명으로 구성된 특별취재팀에 합류했다. 이번 첫 번째 유러피언 드림의 방문지는 저출산을 성공적으로 회복하고 있는 나라, 프랑스다. 나는 두 딸을 키우는 워킹맘으로 이제껏 일해 왔다. 아마 이번 취재여행에 동참할 일반인 독자로 나에게 연락한 것도 그런 상황이 고려되었을 것이다.
한국에서 워킹맘으로 산다는 것
2008년까지 일반 기업체에 근무했고 작년부터 프리랜서로 일하고 있다. 그러다 보니 한국에서 여자가 일하면서 애 키우기가 얼마나 고달픈지는 온 몸으로 체험했다 할 수 있다. 업무상 정시에 퇴근하지 못할 때도 많았고, 한참 프로젝트가 진행 중일 때는 집에 들어가지 못할 때도 있었다. 다행히 두 아이가 아주 어릴 때는 그래도 외박을 할 만큼 바쁜 경우는 드물었지만 늦게까지 근무하는 일은 다반사였다.
양가 어른들이 모두 지방 먼 곳에 있어 감히 아이를 어른들에게 부탁할 생각은 하지도 못했다. 아이를 그 곳에 맡겨두고 일주일이나 이주일에 한 번씩 우리 부부가 왔다 갔다 하는 모습을 상상만 해도 아찔했다. 주말에라도 원기충전을 해야 하는데 그 시간에 먼 길을 다녀오며 파김치가 될 모습을 생각해보라. 그렇게 살다간 어느 순간 사는 게 사는 모습이 아닐 것 같았다.
그래서 내린 대안은 우리 집에 출퇴근하며 아이를 봐 줄 '베이비시터'였다. 남을 어떻게 믿냐 하는 사람도 있었지만, 다행히 남편은 내 결정에 별 이견이 없었다. 달리 어쩔 도리가 없음을 그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다 해도 아이들이 어느 정도 클 때까지 별 탈 없이 성장하고 내가 아직도 일을 할 수 있는 데 가장 큰 조력자는 남편이었음을 부인할 수 없다. 그리고 유난스럽지 않고, 간간이 이런저런 사정으로 바뀌기도 했던 베이비시터 아주머니에게 잘 적응해주었던 우리 두 딸에게도 너무 고맙다. 나는 어쩌면 운이 좋은 워킹맘이었을 것이다. 그 동안 많은 시행착오와 눈물이 있었다 해도.
실제로 내 주변에는 출산과 육아에 대한 여러 압박을 견디지 못하고 직장을 그만두거나 아예 아이를 가지지 않는 사례도 많다. 2009년 기준으로 우리나라의 합계출산율이 1.14라는 사실은 그런 현상의 총합의 결과인 것이다. 그에 더해, 아예 결혼을 미루거나 필요 없다고 생각하는 미혼남녀가 더욱 늘어나고 있는 것 역시 우리 모두 주지하는 사실인 것이다.
그런데 프랑스는 90년대 중반 1.6까지 떨어졌던 출산율이 2009년에는 2.0까지 올랐다고 한다. 유럽권에서는 가장 높은 수치이다. 그 원인은 무엇일까? 일반적인 파리의 시민들이나 육아·복지에 관련된 업무에 종사하는 사람들 생각은 우리와 어떻게 다를까? 일반 기업은 출산과 육아를 어떻게 바라보는지… 그런 것들을 이곳에서 확인하려 한다.
기다려라 프랑스, 내가 간다
오늘은 그 첫날. 우리는 한국시각으로 24일 오후 2시 비행기를 타고 12시간의 비행시간을 거쳐 이곳에 파리시간으로 24일 오후 6시쯤 도착했다. 그리고 지금은 25일 오전 0시 58분 (한국시각으로는 25일 오전 8시 58분)까지 잠 한숨 못 잔채 일정을 논의하고 첫 원고를 쓰느라 감기려는 눈에 성냥개비를 세워야 할 지경이다.
그래도 공항에서 이곳 숙소까지 오는 동안 샹젤리제 거리며 개선문, 에펠탑을 지나쳐 왔다. 샹젤리제 거리에는 18세기식 건물이 그대로 남아 있었고 중심가의 골목골목 역시 마찬가지였다. 우리는 세월이 그냥 가는 걸 두고 보지 못하고 여기저기 깨부수면서 변화의 흔적을 남기려 하는데 그들은 그렇지 않은 것인가.
공항에서의 몇가지 일들도 기억에 남는다. 입국심사장은 EU 시민권 소지자와 그 외의 외국인을 위한 곳이 구별되었는데, EU존은 몇 명 안되는 유럽권 시민이 입국심사를 쌩하니 끝내 텅텅 비었고 외국인존은 줄이 어딘지를 찾지 못할 정도로 바글바글 거리는데도 추가직원은 오지 않았다. 효율과는 거리가 멀어 보였다.
또 입국심사를 마치고 짐을 찾아 공항 바깥으로 빠져나오기 직전, 우리 일행의 길을 카트 운전사가 모는 카트행렬이 막아섰다. 공항이용객들이 지나다니는 폭 5미터도 안 되는 통로를 막은 상태에서 태연히 카트를 멈추고 뭔가 이리저리 조치하더니 좀 있다 카트를 몰고 구석 귀퉁이로 사라졌다.
누군가 얘기했다. 'This is France.' 첫 만남이 예사롭지 않다. 그래, 나쁘게 얘기하면 효율 따위는 생각지 않는 것이고, 좋게 얘기하면 인간적 삶, 관용(톨레랑스)이 온 사방에 가득한 곳 같았다. 그리고 지금 난 이곳 프랑스에 우리와 그들의 차이점, 그리고 그들의 진짜 모습을 속속들이 파헤쳐보고자 왔다.
기다려라 프랑스, 내가 간다.
오마이뉴스 <유러피언 드림: 프랑스편> 특별취재팀: 오연호 대표(단장), 김용익 서울대 의대교수(편집 자문위원), 손병관 남소연 앤드류 그루엔 (이상 상근기자) 전진한 안소민 김영숙 진민정 (이상 시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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