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적 불신 커져
"×××는 자결하라!"
섬뜩한 문구가 쓰인 현수막이 빈번하게 거리에 내걸리고 있다. 안양 7동 덕천마을의 재개발 현장 얘기다.
화목했던 마을이 주민 간 증오와 분쟁으로 흉흉하다. 개발에 따른 이해관계가 가까운 이웃을 원수관계로 바꿔 놓았다.
5동, 9동에서도 마찬가지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지구지정 취소를 요구하는 소송을 제기한 주민들에게 개발을 원하는 주민들의 비난이 빗발치고 있다. 급기야 동네 입구에 현수막을 내걸고 공개적인 비난을 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안양시도 주민 간 다툼을 조장하고 있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안양시는 지난 2월초 5동, 9동 주민들에게 공문과 시장 명의의 '안양 5동?9동 주민여러분께 드리는 글'이란 안내문을 발송했다. 이 안내문을 통해 정비 일부 주민이 구역지정 취소 행정 소송을 제기한 사안을 동민들에게 알렸다.
이에 대해 지역 주민인 이모씨는 "LH 공사가 재정난으로 사업을 진행할 수 없는 실정에서 시가 주민전체를 대상으로 공문을 보내 행정소송을 비난하는 모습을 보인 것은 주민 갈등을 부추기고, 개발 사업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한 시의 책임을 주민들에게 돌리려는 것"이라며 "시의 이런 태도는 다가오는 지방선거를 의식한 정치행위로 비친다"고 비난했다.
갈등은 주민들 간의 대립으로만 끝나지 않는다. 인허가 권한을 가진 안양시에 대한 주민들의 불신도 점차 커지고 있다.
안양시청 재건축 재개발, 뉴타운 사업 부서에는 연일 항의와 민원으로 방문자가 끊이지 않는다. 시청이 개최하는 회의나 공청회에도 반대주민들이나 이해관계를 가진 세력에 의한 방해와 드잡이가 심심치 않게 목격된다.
지난달 11일 호계1동 주민 센터에서 개최된 '안양호계동주공아파트주변구역 주택재건축 정비계획(안)'주민설명회에서도 이 같은 일이 반복됐다. 애초 지구 범위 내에 있었던 일부 주택의 주인들이 강력하게 반발하며 항의하는 과정에서 공무원들과 몸싸움을 벌이는 등 회의가 파행을 겪기도 했다.
잦아지는 법적 다툼
안양시 전역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재개발 재건축 등 도시 재생사업들에 대한 법적 다툼도 잦아지고 있다. 고소고발은 물론 각종 소송이 봇물을 이루고 있다.
안양 7동과 9동, 만안 뉴타운 지구 등 재건축 재개발과 관련한 여러 곳에서 기존 추진위나 조합 및 안양시를 상대로 고소고발이 이어지고 있으며, 가처분 신청이나 지구지정 취소 소송 등도 계속되고 있다.
다른 지역 상황도 크게 다르지 않다. 한두 건씩 소송이나 고소고발이 걸려 있지 않은 지구가 극히 일부에 불과한 실정이다.
2006년 이후 안양시를 대상으로 소송을 제기한 건수만 해도 21건에 달한다. 28개 지역에 이르는 개발지역 내 주민들 간의 법정공방도 적지는 않을 것으로 전문가들은 추정하고 있다. 이에 따른 사회문제도 심각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시민단체의 한 관계자는 "재개발 재건축을 둘러싼 소송은 주민 간의 갈등을 증폭시키고 원활한 사업진행을 방해하는 등 사회적 비용이 만만치 않게 소모되고 있다"며 "도시재생을 위한 개발 사업에 대한 심각한 고민과 세밀한 준비가 아쉽다"고 밝혔다.
주민 불편 가중
지구지정 이후의 주민 불편도 심각하다. 개발이 곧 이루어질 것이라 판단한 주민들은 주택수리를 하고 있지 않고, 임시처방으로 불편을 감수하고 있다.
9동의 경우 지붕이 새거나 벽에 금이 가도 천막조각을 덮는 수준으로 땜질 처방을 하고 있는 주민들이 적잖다. 설상가상으로 LH 공사 사정에 따라 사업자체의 진행조차 불투명해 주민들의 불편은 가중될 전망이다. 증개축이 시급하지만 할 수도 없고, 안 할 수도 없는 주민들의 불만이 높다.
9동 주민인 이모씨(55)는 "집이 훼손돼도 고칠 수도 없고 넓히거나 개량하는 것도 힘들고 불편이 말이 아니다"며 "가만 나눴으면 우리끼리 개발을 하든지 증개축을 하든지 할 텐데, 지구지정이니 뭐니 해서 기대만 높여놓고 진행되는 것도 없이 이웃 간에 싸움만 일어나고 있다"며 불만을 드러냈다.
염모(78) 할머니도 "지붕이 새도 고칠 수가 없다. 아직도 연탄난로를 쓰고 있어 겨울이면 따뜻한 물도 쓰지 못한다"며 "그전에는 조금씩 집수리를 해왔는데 개발한다는 소리를 듣고 수리를 하지 않아 이제는 집수리에 큰돈이 들어 엄두도 못 내고 있다"고 하소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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