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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구는 항구에선 느껴지지 않는 소박한 아름다움이란 무엇인가 알려주는가 하면, 그 앞에 서면 왠지 애잔하고 쓸쓸한 감정을 가져다 주는 곳입니다. 특히 가을이나 겨울속에서 그런 묘한 매력을 지닌 포구가 그리워지곤 합니다. 마음이 외롭고 허허로운 날 찾아가면 자주 보지 않아도 친근한 오래된 친구마냥 어서 오라며 손을 내밀어 주지요. 갈매기들이 특유의 톤으로 끼룩거리고 귀에 즐거운 찰랑이는 파도소리가 있는 포구가 집에서 가까운 사람은 그래서 행복하다 할 수 있겠습니다.

그 이름이 호기심을 불러 일으키게 하는 예단포구는 몇 년 전까지만해도 인천 영종도에서 가장 아름다운 포구로 사진가들 사이에서 잘 알려진 곳이었습니다. 왕에게 예단을 받치던 아름다운 포구는 어떤 곳인지 궁금하여 배도 타고 자전거도 타면서 찾아가 보았습니다.

 수도권 1호선 종점 전철 인천역에 내려 월미도 선착장에서 배를 타고 영종도로 건너간 후, 자전거를 타고 예단포구를 찾아 갔습니다.
수도권 1호선 종점 전철 인천역에 내려 월미도 선착장에서 배를 타고 영종도로 건너간 후, 자전거를 타고 예단포구를 찾아 갔습니다. ⓒ NHN

 예단포가 있다는 영종도에 자전거를 실은 배를 타고 안개를 헤치며 찾아 갑니다.
예단포가 있다는 영종도에 자전거를 실은 배를 타고 안개를 헤치며 찾아 갑니다. ⓒ 김종성

섬과 포구 여행에는 배를 타고 가야 제 맛

예단포구를 찾아가려면 먼저 인천 영종도로 가야 하는데, 편리한 공항철도를 타고 갈까 하다가 포구 여행에 전철보다는 배가 어울리겠다 싶어서 수도권 1호선 전철의 종점인 인천역에 내려서 영종도가는 배를 탈 수 있다는 월미도로 달려 갑니다. 시대에 밀리고 화려하고 거대한 테마공원들에 밀리고 말았지만 월미도는 요즘 다시 시민들의 사랑을 받고 있습니다. 바닷가가 바로 옆에 있어 인천대교와 주변섬을 도는 유람선도 탈 수 있는 데다, 놀이시설도 새롭게 만들어 놓고 선물로 인형을 주는 사격장 같은 추억의 놀이시설들이 아직도 남아있어 젊은이들은 물론 어른들도 많이 놀러 오네요.   

놀러나온 시민들로 왁자지껄한 월미도를 한 바퀴 구경하고, 선착장에서 산 3천원짜리 배표를 손에 꼭 쥐고 작은 대합실에서 남녀노소 사람들을 구경하며 배를 기다립니다. 어떤 선착장에서는 자전거도 따로 배삯을 받는데 여기는 안 받으니 고맙네요. 아기를 업은 가족들에서 다정한 연인들, 먼 곳에서 버스로 관광온 단체 손님들까지 섬에 놀러 가는 사람들은 다양하기도 합니다. 그들에게 공통된 점이 딱 하나 있는데, 바로 손에 새우깡 봉지를 사들고 있다는 것이죠. 배에 타면 자동으로 따라오는 갈매기들에게 주는 모이인데 과자 중독은 사람에게나 날짐승에게나 본능을 바꿀 정도로 지독한 것 같습니다.  

춥디 추웠던 올 겨울도 어쩔수 없는 봄의 기운에 차가운 공기가 밀려나면서 안개가 바다를 자욱하게 감싸 안으니 주위 풍경이 신묘합니다. 과자맛에 들뜬 갈매기들의 신나는 비행에 배에 탄 사람들도 갈매기처럼 끼룩끼룩 웃으며 즐거워 하네요. 역시 전철보다 배를 타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어 저도 실없이 웃어봅니다.  

 영종도 선착장에 내리니 섬은 온통 신도시와 관광지로 공사중 이었습니다.
영종도 선착장에 내리니 섬은 온통 신도시와 관광지로 공사중 이었습니다. ⓒ 김종성

 한때 섬마을에 쌀을 만들어 놓으며 내로라 했을 정미소는 이제 숨은 듯 지내고 있네요.
한때 섬마을에 쌀을 만들어 놓으며 내로라 했을 정미소는 이제 숨은 듯 지내고 있네요. ⓒ 김종성

영종도는 관광지로 변신 중

월미도에서 배를 탄지 십여분 후 영종도 선착장인 구읍뱃터에 닿은 배에서 내리는 순간, 섬의 첫 인상은 속살을 드러낸 벌건 흙으로 파헤쳐지고 있는 공사판이었습니다. 영종 신도시 개발과 함께 대단위 관광지가 생긴다고 하네요. 조용한 농촌마을이자 어촌마을이었던 동네가 옛 것을 버리고 새롭게 변신 중입니다.

배에서 내린 사람들은 을왕리 해변, 용유 해변 등의 관광지로 가고 저만이 홀로 예단포를 향해 섬의 내륙으로 달려 갑니다. 지도에서 보듯 큰 길따라 달리면 되니 길 잃을 염려는 없었으나, 섬도 운명을 같이 하고 있는 예단포를 잊기가 아쉬웠는지 다행히 도로 표지판에 예단포라고 고맙게 방향을 가르켜 주고 있네요.

섬 곳곳에 전쟁 영화에 나와 성벽을 부수는 거대한 무기처럼 생긴 기계들이 서 있고, 펜션과 빌라들이 섬마을을 채우고 있습니다. 한때 섬사람들에게 쌀을 만들어 주며 내로라 했을 정미소는 이제 주객이 바뀌어 어느 동네 속에 숨어 있는 듯 자리하고 있네요. 주말인데도 동네에 사람들이 잘 안 보입니다. 섬이 관광지로 바뀌면서 고향을 떠나간 주민들은 어디에서 살고 있을까. 어느 빈 집 앞에 자전거를 멈추고 서서 잠시 추리해보기도 합니다. 길 위에서 주민인 듯한 사람을 만나면 그냥 반가워 알면서도 괜히 예단포 가는 길을 물어보기도 합니다.

 안개속에서 예단포구앞 예쁜 장금도의 모습과 작은 어선들의 풍경이 운치있네요.
안개속에서 예단포구앞 예쁜 장금도의 모습과 작은 어선들의 풍경이 운치있네요. ⓒ 김종성

 700여년 전, 저 건너편 강화도에서 몽고군에 항전하던 왕을 도왔다는 이곳 예단포에 서니 기분이 묘합니다.
700여년 전, 저 건너편 강화도에서 몽고군에 항전하던 왕을 도왔다는 이곳 예단포에 서니 기분이 묘합니다. ⓒ 김종성

왕을 도와 몽고군에 저항했던 포구

778년전인 1232년 몽고군이 침략하자 고려왕조는 수도를 강화도로 옮겨 항전을 계속 합니다. 천도 이후 강화도가 몽고군에 의해 봉쇄되니 육지로부터 완전히 고립된 고려왕실의 앞날은 위태로웠겠지요. 이때 물 건너 예단포에서 물자와 병력을 공급하고 왕명을 8도에 지령함으로써 몽고 대군을 상대로 무려 40년이나 더 싸울 수 있었다고 합니다. 한마디로 왕을 도와 몽고군에 저항했던 유서깊은 포구였네요.

게다가 예단포는 영종도에서 가장 아름다운 포구로도 사진가들 사이에서 이름 높은 곳이었습니다. 이런 오랜 역사와 아름다움을 지닌 포구와 마을도 시대에 밀려서 관광단지속에 묻히고 있네요. 포클레인과 트럭들이 분주히 오가는 속에서도 포구 앞 예쁜 무인도 장금도와 작은 어선들이 시간이 멈춘 듯 한가로운 포구만의 운치를 잃지 않고 간직하고 있습니다. 

몇 번을 가도 매년 때가 되면 연어가 고향을 찾듯이 찾아가게 되는 섬속 포구 예단포. 제가 사는 서울에서 그리 멀지 않아 더욱 고마운 이곳이 사라지지 않고 잘 남아있어주길 바랍니다.

P.S) 배를 타고 월미도로 돌아와 인천역으로 가는 길에 표지판에도 안 써 있는 잊혀진 포구 북성포구도 한 번 들러 보시기 바랍니다. 어선들이 오고 가지만 잊혀진 것의 애틋함과 주변 공장들과의 이채로운 풍광에 특별한 느낌을 얻게 될 것입니다. 길에서 동네 주민분에게 북성포구를 물어보면 잘 알려 준답니다.  

 이름은 있으나 잊혀진 이름없는 포구가 된 북성포구에서 또다른 포구의 감성과 이채로운 풍광을 느껴 봅니다.
이름은 있으나 잊혀진 이름없는 포구가 된 북성포구에서 또다른 포구의 감성과 이채로운 풍광을 느껴 봅니다. ⓒ 김종성

덧붙이는 글 | 영종도에서 월미도로 돌아오는 마지막 배는 저녁 9시이므로 자전거를 타고 여유있게 영종도를 돌아볼 수 있습니다. 영종도 선착장 앞에 자전거를 빌려주는 가게도 있습니다.



#예단포#영종도#자전거여행#월미도#인천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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