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월대보름을 맞아 강정마을에 사람들이 모인다는 소식이 들렸다. 며칠 봄비가 내리더니, 마침 대보름날은 아침부터 날씨가 화창하게 맑았다.
마을회관에 들어서니 마을회 주관으로 '경인년 정월대보름 지신밟기' 행사를 알리는 현수막이 걸려있었다. 생활터전 일부를 해군에 빼앗길 위기에 놓여있는 주민들인데, 마을의 '무사안녕'을 향한 염원의 깊이가 다른 여느 마을과 비교할 수 있을까?
강정천 입구에는 해군기지를 착공하기 위해 설치해놓은 공사현장 안내표지와 조감도 등이 새로 들어서 있었다. 해군기지 건설이 금방 현실로 다가 올 수도 있다는 것을 실감할 수 있다.
주민들은 '절대보전지역에 공유수면을 매립하고 그 위에 군사기지를 건설하는 것이 행정 절차를 위배하는 것'이라는 취지로 행정소송을 제기했다. 3, 4월 중 이에 대한 법원의 판결이 나올 것으로 예상되는데, 주민들은 이 소송에서 승소하고 6·2지방선거를 거쳐 소신 있는 지사가 선출될 경우 해군기지 투쟁은 새로운 반전의 기회를 맞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주민들은 해군기지 착공 예정지 앞에 천막을 치고 릴레이로 천막투쟁을 이어가고 있다. 이들은 "싸움은 오래해야 하고, 결국은 질긴 놈이 이기기 때문에, 이 상황을 즐겨야 한다"고 말했다. 오랜 투쟁과정에서 체득한 '투쟁 노하우'라는 생각이 들었다.
필자 말고도 외부에서 마을을 방문한 손님들이 많았다. 민예총 제주지회 회원들이 현기영 작가와 함께 마을을 찾아 주민들을 위로했다. 제주지사 선거에 출마를 선언한 <한겨레신문> 고희범 전 사장도 잠시 중덕 해안을 방문해 이들과 더불어 봄기운 완연한 해안 정취를 만끽했다.
마을 주민들과 군사기지 반대 투쟁을 함께했던 시민단체 활동가들도 마을을 찾았다. 3년 가까운 기간 동안 함께 투쟁해왔던 터라 사실 주민들과 시민단체 활동가들 사이에는 경계는 허물어진 지 오래다. 활동가들도 오랜만에 긴장을 풀고 주민들과 어울려 시간가는 줄을 모르게 막걸리를 마셨다.
강정천 인근 천막에서 방어 한 마리를 잡아 회로 먹고 있다는 반가운 소식이 들렸다. 천막 안팎에 사람들이 모여 있는데, 방어 냄새가 장작불 연기를 타고 마을 전역으로 퍼져나갔다.
해군기지 싸움에는 빠지지 않는 이방근씨가 칼을 들었다. 방어를 먹을 만큼 썰어서 회로 만들자 주민들은 이를 안주삼아 소주를 마시며 이야기꽃을 피웠다. 필자도 주민들 틈에 끼어 회 맛을 보았는데, 쫄깃하고 싱싱한 맛이 혀끝에서 몸 전역으로 삽시간에 퍼져나가는 느낌이었다.
서울에서 방문했다는 여대생들도 천막 안으로 초대되었는데, 얼떨결에 방어회 맛을 보게 된 것을 두고 여간 반가워하지 않는 표정이다. 이들의 해맑은 웃음이 주민들 모두를 기쁘게 했다.
천막 밖 장작불에는 회를 뜨고 남은 방어의 머리, 뼈, 내장 등이 구워지고 있었다. 마치 헤밍웨이의 소설 '노인과 바다'에 나오는 대어처럼 머리와 뼈가 남았는데, 그 머리만 보면 살아있는지 죽었는데 분간하기 어려울 정도로 싱싱했다. 장작불 위에서 익어가는 머릿살에 굵은 소금이 더해지자 그 구수하고 짭조름한 맛에 반해 젓가락을 놓을 수가 없었다. 주민들은 '어두육미'란 말이 그냥 생긴 게 아니라고 했다.
돌아오는 길에 보름달을 구경하려고 하늘을 보니 구름이 끼어 환한 보름달은 볼 수가 없었다. 하지만 이들 가슴 속에 떠오른 희망의 빛은 확인할 수 있어서 반갑기 그지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