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제6회 퀴어문화축제 무지개 2005' 참가자가 그린 그림. 동성 간의 사랑을 나타내고 있다.
'제6회 퀴어문화축제 무지개 2005' 참가자가 그린 그림. 동성 간의 사랑을 나타내고 있다. ⓒ 최윤석

"여자(남자)친구 없어? 왜 결혼을 안 해?"라는 질문, 게이와 레즈비언에 대한 가벼운 농담들. 어느 직장에서나 있을 법한 상황이지만 성소수자에게는 고통스럽다. 같이 웃어넘기는 동료가 마음 속으로는 상처를 받고 있을지도 모른다.

5일 오후 7시 서울 여성플라자에서 열린 '성소수자와 노동' 토론회에서는 이성애자들이 잘 몰랐던 다양한 직장 내 차별 사례가 논의됐다. 이 자리에서 동성애자인권연대(동인련) 등 성소수자단체들은 지난해 12월 각각 5명의 레즈비언과 게이 직장인을 심층 인터뷰한 결과를 발표했다.

이들은 모두 회사에 성적 지향이 알려지면 고용상 불이익을 당할 것이라는 불안을 겪고 있었다. 30대 초반 레즈비언 L씨는 "협박하거나 회사를 관두라고 할지도 모른다, 커밍아웃한다는 생각은 해본 적 없다"고 말했다. 두 명의 직장동료에게만 커밍아웃한 30대 중반 게이 K씨는 경쟁상황에서는 해코지를 당할 수도 있다는 걱정을 토로했다.

경조사비도, 사내복지도 이성애 가족용

그러나 성정체성을 감추기가 쉽지는 않다. 가장 난감한 상황은 연애와 결혼에 대한 대화. "아직도 결혼하자는 얘기 안 하는 애인과는 헤어져라"라고 훈수를 두거나 "왜 너는 애정 얘기를 한 번도 이야기하지 않냐"고 서운해 하는 동료들 때문에 성소수자들은 스트레스를 받고 있다.

이 때문에 성소수자들은 "나는 독신주의자다", "애인이 있지만 결혼 생각은 없다"고 거짓말을 하고 파트너가 이성인 것처럼 둘러대야 한다. 이 같은 상황에 대해 성소수자들의 인터넷 커뮤니티에는 "내가 외계인 같다", "들킬까봐 두려움에 떠는 모습에 좌절한다"는 글이 종종 올라온다.

비혼은 승진 차별로 이어진다. 회사가 제도적으로 혼인 여부를 진급 조건으로 내걸지는 않지만, 사실상 임원급으로 올라가기는 쉽지 않다. 한 게이는 "그런 부분(승진)은 과감하게 포기하고 정년퇴직 때까지 부장 정도로 만족하려고 한다"고 말했다.

 성소수자 정치인 하비 밀크를 다룬 영화 <밀크>의 한 장면.
성소수자 정치인 하비 밀크를 다룬 영화 <밀크>의 한 장면. ⓒ 마운틴 픽쳐스
사내복지와 상조회 역시 성소수자를 차별하고 있었다.

은행에서 일하는 30대 초반 레즈비언 J씨는 '미혼'이라는 이유로 9000만 원 상당의 전세금융자 혜택을 받지 못한다. 그는 지금 동성파트너와 함께 6000만 원짜리 전셋집에서 산다.

20대 후반 레즈비언 P씨의 경우 매달 급여에서 상조회비 4000원을 내지만, 혜택은 받을 수 없다. 결혼자금, 배우자 병원비, 유족 위로금 등 크고 작은 지원금과 휴가가 모두 '정상가족'용이기 때문이다.

항공사에 다니는 한 게이는 "배우자나 그 부모님까지 항공료 할인이나 무료티켓을 받는다, 나는 정말 평생 같이 살 사람과 사내 혜택을 함께 누리고 싶다"고 말했다.

공무원으로 일하는 30대 초반 레즈비언 S씨는 "맞춤형 복지제도로 30만 원까지 제공받는데, 배우자가 있으면 30만 원을 더 받을 수 있다"고 말했다.

비정규직 내몰리는 트랜스젠더, 빈곤의 악순환

레이가(별칭) 민주노동당 성소수자위원회 활동가는 "그동안 성정체성을 이유로 해고를 당하거나 직장 내에서 아웃팅(성소수자의 성정체성이 자기 의사와 무관하게 다른 사람에 의해 알려지는 것) 위협을 받는 등 다양한 차별 피해가 있었다, 그러나 어떤 법제도도 성소수자를 방어해주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노동조합은 성소수자를 지켜줄 수 있을까. 파업을 하면서 노조 활동을 시작한 게이 K씨는 "노조에서 성소수자 내용이 언급된 적은 전혀 없다, 조합원이라고 해서 순수하지는 않다"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정말 피해가 왔을 때는 노동조합이 방어해주지 않겠냐, 보험으로 생각한다"면서 희망을 보였다.

인터뷰 내용을 발표한 이경 동인련 활동가는 "성소수자 권리를 어떤 방식으로 접근해야 하는지도 논의되지 않고 있다, 노조가 교육과 같은 초보적 노력이라도 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다행히 민주노총도 모범 단체협약안에 성소수자 노동권 조항을 추가하기로 하는 등 긍정적인 자세를 보이고 있다.

한편, 이번 조사에서는 트랜스젠더에 대한 인터뷰가 이뤄지지 않았다. 다만 토론회에 나온 김일란 '성적소수문화환경을 위한 모임' 활동가는 "성전환자의 취업은 채용과정에서 신분증을 요구하지 않고 대면 접촉이 되도록 적은 직장으로 제한된다"고 상황을 전했다.

결국 트랜스젠더는 대부분 비정규직으로 일하면서 저임금을 받게 된다. 당연히 성전환 수술비를 마련하기 어렵고, 수술을 받지 못하니 법적인 성별 변경도 불가능하다. 이 때문에 취업은 더 곤란해지는 빈곤의 악순환이 일어난다. 김일란 활동가는 "이 같은 지속적 좌절과 생활고가 성전환자의 자기소외를 강화시킨다"고 강조했다.

 동성애를 소재로 한 영화 <후회하지 않아>의 한 장면.
동성애를 소재로 한 영화 <후회하지 않아>의 한 장면. ⓒ 청년필름


#성소수자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