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도는 관광지다. 공항에 도착하자마자, 혹은 게스트 하우스에 들어가거나 여기저기에 흩어져 있는 종합관광센터에만 들어가도 각종 팸플릿들이 '여기도 와보세요'하고 관광객을 유혹하고 있다. 다양한 정보 속에서 가장 나의 눈에 띄는 것이 있었으니 바로 '제주 러브 랜드'였다.
이미 KBS '스펀지'에서 "제주도에는 미성년자 관람불가 공원도 있다"로 소개된 이후 유명세를 타기 시작해 여기저기 기사로 뜨기도 했던 바로 그 곳이다. 이런 곳을 내가 빼먹을 순 없지라는 생각에 비가 주룩주룩 내리는 날(6일), 혼자서라도 제주 러브 랜드에 가기로 결심했다.
허나 제주도는 차가 없는 여행자에게는 불편한 곳이다. 내가 있던 신제주에서 러브 랜드까지 운행하는 1100번 버스 배차 간격은 무려 '90분'. 잘못 걸렸다가는 한 시간 이상 비오는 제주도를 방황하기 딱 좋았다. 그래서 평소 잘 타지 않는 택시를 타기로 결심했다. 왠지 비오는 날, 그것도 여자 혼자서, 택시까지 타고 러브 랜드에 간다는 게 조금 '뻘쭘하게' 느껴졌다.
하지만 순발력 하나는 괜찮은 나! 택시에 올라타는 순간 번뜩이는 아이디어 하나가 생각났다. '러브 랜드 바로 옆에 제주도립미술관이 있었지. 혼자 러브 랜드 가는 여자보단, 혼자 미술관 가는 여자가 더 낫겠지?' 하며 혼자 기특해 하고 있었다.
러브랜드 가기 전 '미술관' 들러주는 센스
"제주도립미술관으로 가주세요.""음... 아가씨 그거 러브 랜드 바로 옆에 있는 미술관 맞죠?"헉! 이 아저씨 독심술이라도 배웠나? '너 지금 혼자 러브 랜드 가면서 뻘쭘하니까 괜히 미술관에 간다고 이야기 하는 거지'하는 뉘앙스가 '팍팍' 풍기는 아저씨의 물음에 괜히 마음이 뜨끔했다. '아저씨 저 혼자 러브 랜드 가려는 건 맞지만 진짜로 미술관도 갈 거란 말이에요!'
미술관은 제주시내에서 택시로 4000원 정도 되는 가까운 거리에 있다. 택시에 내려서 자못 도도하게 미술관 쪽으로 발길을 재촉했다. 비가 부슬부슬 내리는 미술관 초입은 아름다웠다. 물이 자작하게 흐르는 작은 연못에 작은 조형물들이 배치된 공간은 비가 오니까 더 아름답게 느껴졌다.
게다가 5월 30까지 진행되는 전시 '이코노텍스트 : 미술과 언어 사이'는 내 마음에 쏙 드는 전시였다. 미술과 언어, 이미지와 텍스트의 상호관련성을 표현한 작품을 모아놓았는데 현대 미술의 한 면을 볼 수 있는 좋은 전시였다.
특히 냉동장치 파이프를 이용한 조각 <THIS IS HOT>과 'Joo roo roo rook'이라는 글자를 무수하게 반복하면서 그려낸 '산수풍경', 코카콜라 상표로 만든 '문자도' 같은 작품은 너무 마음에 들었다. 디자이너 이상봉의 서체를 이용한 옷 또한 실제로 본 것은 처음이었는데 아름다웠다.
난생 처음 보는 '성인용품', 차마 만지진 못하고...
한 시간 가량 미술관 관람을 마치고, 바로 옆에 있는 러브 랜드로 걸어갔다. 조용했던 미술관과는 사뭇 다른 느낌이었다. 주차장부터 북적이고 있었다. 특히 관광 버스로 단체 여행을 온 아줌마, 아저씨들로 매표소부터 시끌시끌 했다. 제주도에 와서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한꺼번에 모여 있는 것을 보는 것도 처음. 주위를 둘러보니 혼자 관람하는 관람객은 보이지 않고, 커플 몇 명이나 친구들끼리 온 무리 몇 명이 '젊은축'에 속했다.
그러나 내가 누구던가! 고기 그을음이 가득한 한우 고깃집에서 혼자 육회 비빔밥을 먹는 여자 아닌가. 당당하게 출입구를 들어서는데, '에구머니나' 생각보다 강도 높은 조각품들에 혼자 화들짝 놀랐다. 하지만 5분만 지나니 그런 상황들이 자연스러워지면서 재미나게 구경할 수 있었다. 거기에 아줌마들의 조금은 '깨방정'스러운 웃음소리에, 아저씨들의 '재미난 설명'들을 엿듣는 재미도 쏠쏠했다.
특히 러브 랜드의 하이라이트(?) 성인들을 위한 장난감 전시는 한 마디로 말하면 '성인용품점'이라고 할까? 사실 나도 한 번은 그런 공간에 가고 싶었는데 늘 보면 '뒷문도 있습니다'라고 적힌 음지의 공간에 선뜻 구경 가기는 어려운 일이었다. 그러나 이렇게 개방된 곳에서 합법적(?)으로 구경할 수 있는 사실이 신기하게 느껴졌다.
게다가 거기 전시된 물건들을 바로 구매할 수도 있었다. 그런 기구(?)들을 직접 작동해 볼 수도 있었지만, 그것까지 해보기엔 용기가 부족했다. 혼자 구경 다니는 내가 신기했던지 이것저것 설명해주시는 점원들 덕에 재미난 경험이었다. 이것저것 둘러보다가 기념으로 '외설적인 신음소리'가 흘러나오는 병따개를 구입했다. 친구들끼리 술 한잔할 때 분위기 내는 데는 그만인 장난감이다.
다른 전시실에서는 허윤규의 남근 목각전이 진행되고 있었다. 나무로 만든 남근 모양들이 전시되어 있어서 눈길을 끌었다. 조각들도 재미있었지만, 그 조각에 붙어 있는 기발한 이름들이 더 눈길을 끌었다(수위가 높아서 차마 그 이름들은 기사에 공개할 수 없다). 구경하는 내내 주위에서 '꺌꺌' 거리는 소리가 흘러나왔다.
나 혼자 '러브랜드' 다녀온 여자야!
거기 오신 분들은 대부분 40~50대의 아주머니·아저씨들이었다. 그들은 부부임에도 전시물들이 익숙하지 않은지 민망해 하곤 했다. 그런 것들을 서로 솔직하게 이야기 하기에는 아직 어려운 부분이 많다는 생각을 했다.
아무튼 나에게는 재미난 경험이었다. 뭔가 상상만 했던 기구의 실물(?)을 보는 신기함도 있었고, 주위 사람들의 반응도 재미있었다. 우리나라에 이런 공원이 있다는 사실도 조금 놀라웠다.
부끄러워 마시고 제주에 오면 이 '19금 공원'에 한번쯤 들러보는 것도 좋은 경험일 듯싶다. 난 혼자도 다녀왔으니까. 으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