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도는 3월 들어 날마다 눈이 왔다고 하던데 온 나라가 눈 세상입니다. 올 겨울 그렇게도 춥더니 겨울이 마지막 시샘을 하고 있습니다. 겨울 동안 거의 눈 구경 한 번 하지 못하는 부산도 대설주의보가 내렸습니다. 내가 사는 동네인 진주에도 눈이 왔습니다. 지난 밤 조금씩 내리기 시작하더니 10일 아침 8시 현재 3.2cm가 내렸습니다.
지난 6일부터 10일 오전 6시까지 100.4cm가 내린 대관령에 비하면 '3.2cm'는 눈이라고 할 수 없지만 올 겨울 들어 눈 다운 눈을 처음 만난 진주 사람에게는 엄청나게 내린 것입니다. 집 옆에 작은 공원이 있습니다. 눈이 많이 왔다는 말을 듣고 부랴부랴 나갔습니다. 정말 온 세상이 하얀누리였습니다. 전라도 같은 곳에 여행가서 눈 구경은 많이 했지만 우리 동네에서 이렇게 많은 눈 구경을 한 적은 약 10년 만입니다.
올해 정말 눈 많이 왔습니다. 하지만 진주는 오지 않았습니다. 진주기상대가 밝힌 '신적설' 자료를 보면 1월 4일 0.0cm, 2월 18일 0.0cm, 3월 9일 3.0cm입니다. 다른 날은 아무 숫자도 없습니다. 0.0cm가 무슨 뜻인지 모르겠지만 눈이 날렸다는 의미가 아닐까요. 이러니 3.2cm 눈에도 감탄이 저절로 나올 수밖에 없습니다.
눈 내린 길을 걷다가 노란꽃 위에 핀 눈얼음꽃을 보았습니다. 꽃이름을 워낙 모르는 사람이라 꽃이름이 무엇인지 모르겠지만 노란색과 투명한 눈얼음이 함께 동무가 된 것이 정말 아름다웠습니다. 겨울이 봄을 시샘하는 것 같지만 한 편으로는 동무가 되었습니다. 또 다른 이름모를 나무 가지에도 눈얼음이 아름답게 피었습니다.
만물이 긴 겨울을 이겨내지만 그 중에도 동백은 긴 겨울도 푸르름을 잃지 않고 도도한 자태를 뽐냅니다. 동백꽃이 작은 꽃망울을 터뜨리려다가 밤새 내린 눈이 얼어 그만 '잠깐 멈춤'입니다. 겨울은 이겨낸 동백꽃망울이 눈얼음을 이겨낼 수 있을지 궁금합니다. 그런데 옆에 있는 동백꽃은 벌써 붉은 꽃망울을 터뜨려 눈얼음과 동무가 되었습니다. 빨간 동백꽃과 투명한 눈얼음이 함께 동무가 되니 겨울과 봄도 동무가 되었습니다.
동백꽃과 눈얼음을 뒤로하고 발걸음을 내딛는데 아파트 담장에 아직 꽃망울도 나오지 않는 장미에 눈얼음이 핀 장미를 보았습니다. 꽃이 피지 못하니 눈얼음이라도 피어 사람들을 즐겁게해주고 있습니다. 5~6월이면 칙칙한 아파트 담장을 빨간 장미꽃으로 만들어 우리 동네 명물입니다. 두 달 후면 빨간 장미꽃은 눈얼음을 밀어내고 아름다운 자태를 뽐낼 것입니다. 오늘 만큼은 장미와 눈얼음이 동무가 되었습니다.
겨울이 봄을 시샘하는 잎샘 추위가 눈을 데리고 왔지만 오히려 눈은 동백꽃과 동무가 되었습니다. 결국 겨울과 봄도 하나가 되었습니다. 자연은 이처럼 시샘하는 것 같지만 하나입니다. 밀어내고, 쫓겨나는 것이 아니라 잠깐 자리를 비켜주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다음에 다시 만나야 하기 때문입니다.
사람들도 꽃과 눈얼음이 동무가 되듯이 다투고 싸우지 말고 동무가 되어 함께 더불어 사는 세상을 만들어가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