싱싱한 생선과 어패류가 아쉽다보니 문득, 부산자갈치시장이 생각났다. 그러고 보니 자갈치시장에 가 본 지도 꽤 오래된 것 같다. 그동안 어떻게 변했는지, 또 그 싱싱하고 비릿한 등 푸른 활기는 여전한지 궁금했다. 자갈치시장이 안겨주는 펄떡이는 활기를 사러 가볼까. 이제 막 바다에서 건져 올린 물고기의 퍼덕임 같은 활력을 느껴보려면 여기서 그나마 가까운 부산 자갈치시장보다 더 좋은 건 없지.
그래서 나선 길이었다. 며칠 전이었다. 대부분 부산 나들이는 양산지하철역에 우리 차를 주차해놓고 지하철을 많이 이용하지만 가끔은 자가용을 타고 가기도 한다. 날씨도 춥고 또 시장을 보고하자면 손에 든 것도 많을 것 같아 번거로워서 우리 차로 가는 것이 좋을 것 같았다.
양산에서 국도나 고속도로를 타고 가다 부산으로 진입하고 도시고속도로를 타고 가면 오래 걸리지 않아서 시내로 접어들 수 있다. 이 길로 해서 보수동 헌책방골목도 가고 서면도 가기도 한다. 가끔 부산에 나들이할 일이란 것이 우리에겐 일반서점, 기독교서점 등 서점나들이나 헌혈하러 가끔 가는 것이 전부인데 해물탕 재료를 사러 가긴 처음이다.
해물탕 재료란 자고로 싱싱해야 하고 그것이 맛의 기본을 결정하는 것이므로 자갈치시장을 가 본 지도 꽤 오래되었고 모처럼 자갈치 시장의 활기도 몸소 느껴볼 겸 재료도 살 겸 겸사겸사해서 원정 나선 길이다. 이미 저녁이 된 남포동 일대는 교통이 혼잡하고 사람들로 붐볐다. 혼잡한 도로에서 자갈치시장 쪽으로 차를 돌리기가 쉽지 않았다.
겨우 자갈치 시장 쪽으로 진입했다. 자갈치 시장 입구엔 아치형 간판 위에 '오이소! 보이소! 사이소!'라고 새겨져 있었다. 겨울로 다시 접어든 것처럼 며칠 내내 쌀쌀하고 흐리고 추운 날이 이어지고 있었고 이 저녁도 마찬가지였다. 거리 옆 자갈치 시장 입간판 옆에는 '문우당' 서점이 있어 눈에 들어왔다. 시장 보고 오는 길에 들려봐야겠다고 생각했다.
시장에는 오고가는 사람들을 부르며 사가라고 손짓하기도 했다. 꽤 오래됐을 법한 낡은 상점들과 싱싱한 어패류를 파는 가게들이 넓은 골목에 길게 도열해 있었다. 차를 어디다 주차할까 찾다가 자갈치 시장 안쪽 아치형 대형상가 건물이 보였다. 전에 없던 현대식 새 건물이었다. 바닷가에 면해 있는 높은 건물 간판에는 '자갈치 시장'이라고 돋을새김이 되어 있었다.
자갈치 시장에 와 본 것이 언제였더라?! 가장 최근의 일이 2005년도였던 것 같다. 안이 들여다보이도록 유리로 된 이 건물은 2006년도에 완공된 것이라 한다. 6.25이후 자갈치 아지매들을 중심으로 자리를 굳힌 부산자갈치시장은 부산 중구 남포동과 서구 충무동에 있는 수산물시장이며 부산의 대표적인 재래시장으로, 당시에는 남포동시장이라고 불렸다고 한다.
자갈치 시장 이름의 유래는 '한국 전쟁 이후 자갈밭에 있었던 시장이기에 자갈밭과 곳, 장소를 나타내는 처(處)가 경상도 사투리로 발음하게 되어 '치'가 되어 '자갈치'가 되었다고 한다. 지금의 자갈치시장 건물은 옛 건물이 시간이 지나면서 노후화되고 대형화재까지 겪어 재개발이 불가피해졌고 지금의 새로운 모습으로 서게 된 것이란다.
자갈치시장 현대식 건물은 하늘을 나는 갈매기 모습을 형상화하여 만든 듯, 멀리서 보면 갈매기가 날개를 퍼득이며 날아오르고 있는 것 같다. 높은 하늘위로 갈매기가 날아오르는 것 같은 지붕 모양과 투명유리로 되어 있는 이 건물은 지하 2층 지상 7층으로 된 건물로 1층 수산물시장을 비롯해 2층엔 횟집 등 식당들로 되어 있고 그 위로는 판매시설, 노래방, 한식당, 비치골프클럽 등이 한 건물 안에 모여 있단다.
이곳 자갈치 시장에는 매일 3백여 종이 넘는 어류가 새벽 어스름을 타고 공판장에 도착한다. 매일 싱싱하고 다양한 어패류와 상인들의 활기찬 모습들을 볼 수 있어 비릿한 삶의 활기가 펄떡인다. 부산을 찾는 관광객들이 어김없이 찾는 필수적인 관광코스이기도 한 한국 최대의 어패류 전문시장인 이곳은 부산의 가가호호마다, 식당마다 찬거리로 올라오는 해산물이라면 의례히 자갈치시장에서 온 것이라 여길 만큼 부산의 맛 공급의 근원지이다.
그동안 많은 변화들이 있었던 것 같았다. 새롭게 단장한 자갈치 시장 건물 안에서 시장사람들은 줄지어 잘 진열된 가게에서 장사를 하고 있었다. 안으로 들어서자마자 확 안겨드는 해감내와 팔딱거리는 등 푸른 생기는 참으로 오랜 만에 만나보는 원시적인 것이었다. 전등 갓 아래 노란 전구가 환하게 밝힌 각종 생선과 어패류들이 다닥다닥 붙어있는 가게들 앞에 양쪽으로 길게 도열해 있었다.
멍게, 해삼, 고동, 소라, 따개비, 개불, 광어, 도다리, 돔, 전복, 문어, 낙지, 개불...없는 것 빼고 다 있었다. 잘 진열된 소쿠리나 다라, 수족관에 물이 연신 철철 흐르고 물 속에는 살아있는 생선들이 퍼덕거리고 있었다. 전등 불빛에 반사되어 물빛은 금빛으로 일렁거렸다. 상인들은 발목 끝까지 덮는 비닐 앞치마를 두르고 도마 위에서 익숙한 손놀림으로 생선을 손질하거나 손님과 흥정을 하고 있었다.
건물 바닥은 물에 젖은 데다 밝은 불빛에 번들거렸다. 처음엔 어디서 무엇을 사야할지 몰라 헤매다시피 끝까지 쭉 돌아보았다. 예서제서 '사이소! 보이소!'해사서 걸어 다니며 해산물가게들을 쳐다보기가 민망할 정도였다. 수산물시장은 꽤나 길었다. 비슷비슷한 종류를 다 팔고 있어 어느 가게를 들어가 사야 할지 망설여질 지경이었다. 양산 재래시장과는 또 다른 활기가 거기 있었다.
적당한 가게에서 해물탕 재료를 2만원어치 샀다. 그런데 눈을 씻고 봐도 꽃게는 보이지 않았다. 해물탕에 꽃게가 빠지면 뭔가 허전하고 맛이 반감된다. 와글와글 싱싱하게 살아있는 꽃게들이 많을 것으로 기대하고 왔건만 꽃게는 단 한 마리도 보이지 않았다. 알고 보니 서해안에서 나는 꽃게를 제일로 친다는데 조업을 못하고 있어 꽃게는 보기 더 드물고, 여수 등 연안의 꽃게 같은 것은 4월이 되어야 나온다고 했다.
할 수 없었다. 시장 안을 쭉 돌다보니 입구에서부터 이쪽 끝까지 와 있었다. 안쪽 끝에서 열려진 문으로 보이는 바다, 그 바다위에 날개 짓하며 모여든 갈매기 떼가 보였다. 우린 걸음을 옮겨 바깥으로 나갔다. 바닥 가운데는 나무마루를 깔아놓은 제법 넓은광장이었다. 사람들은 바닷가 끝에 서서 갈매기들을 보고 있었다. 갈매기들을 향해 새우깡을 던지는 사람들과 구경하는 사람들, 먹이를 향해 돌진하는 갈매기들이 볼만했다.
수많은 갈매기들이 날개 짓하며 위로 치솟았다가 먹이 감을 따라 바다에 내리꽂히듯 수직으로 하강하다가 다시 날개를 퍼덕거리며 날아오르기를 반복하고 있었다. 갈매기가 머리 위에서 퍼덕일 때면 이제 막 바다수면에 닿았다 올라온 갈매기에 묻은 바닷물이 머리 위로 떨어지는 것 같았다. 바다가 하얗다 할 정도로 많은 갈매기였다.
갈매기들이 바다에서 나는 먹이를 따라 모여들고 이곳에서 멀어질 수 없듯이 바닷가 수산물시장 사람들은 또 그들의 생업을 따라 바다에 면한 시장을 떠날 수 없을 것이었다. 갈매기들도 그것들의 먹이, 목숨을 이을 먹이가 있는 바닷가에 기대고 살 듯 이곳 사람들도 바다에 기대어 살아가고 있는 것이리라. 시장의 활기는 삶의 원초적인 활기요 생존의 활기였다.
갈매기들의 힘찬 날갯짓은 그것들의 생존이 걸린 날갯짓이었다. 자갈치시장 안에서 해물탕 재료를 사고 나와 바로 맞은편에 횟집들과 곰장어구이 식당들이 즐비한 곳으로 가서 한 식당으로 들어갔다. 곰장어를 좋아하는 남편이지만 내가 먹질 못해 그동안 못 와봤다. 나는 번데기 모양 때문에 구수한 냄새에도 불구하고 먹지 못하는 것처럼, 곰장어는 적나라한 살빛과 핏빛 생김새 때문에 한 번도 먹어본 적이 없었다.
모처럼 자갈치시장에 나온 김에 남편은 곰장어가 먹고 싶다고 했고 나도 용기를 내서 가 보기로 한 것이다. 다행히 살아 꿈틀대는 곰장어를 미리 연탄불에 구워서 주어서 거리낌이 덜했고 처음으로 곰장어구이를 먹어보았다. 이게 뭐가 맛있다는 것일까. 아직까지 곰장어가 맛있는 줄 모르는 나는, 곰장어 뒤에 나오는 볶음밥이 더 맛있었다.
저녁을 먹고 밖으로 나와서 어둑신한 한쪽 귀퉁이 난전에서 아주머니가 냉동꽃게를 팔고 있어서 몇 개 샀다. 어둠이 내린 이곳 자갈치시장에는 산 곰장어구이 집과 횟집마다 환하게 불을 밝혀 거리가 환했고 항구를 둘러싼 도시의 건물마다 불이 환했다. 저 멀리 시장에서 올려다 보이는 산동네에도 별이 쏟아져 내려앉은 듯 불빛이 환했다.
어둠 속에 밝혀진 불빛으로 가난하고 누추한 삶을 덮어주고 있는 듯 했다. 밤이 되면서 바람은 더 차가웠다. 우리는 자갈치시장이 안겨주는 펄떡이는 생기를 안고, 처음 먹어보는 곰장어구이도 먹고, 문이당 서점에 잠시 들러 책을 사고 저녁 늦게야 집으로 돌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