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율 스님 동행 르포 -' 4대강 사업, 낙동강 공사현장을 가다' 1편인 '낙동강, 더 늦기 전에 기록해 둬야겠다'에 이어 2편인 '낙동강 공사현장을 가다'를 올립니다. 둘째날 일정은 새들과 동물의 낙원인 해평습지에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새와 동물들의 낙원, 해평습지
8일 구미보에서부터 구미시 지산동 일대의 낙동강을 둘러본 뒤 스님과 필자는 어제 미처 보고 오지 못한 해평습지 쪽을 둘러보기 위해서 다시 강을 따라 거슬러 올라갔다. 다시 길을 거슬러 올라간다는 것은 그만큼 계획된 일정에 차질을 끼치는 일임에도 불구하고, 스님은 "해평습지의 변한 모습은 꼭 담아두어야 해요"라고 말한다.
"그곳도 엄청 변했을 거라, 그 넓고 좋은 모래밭이 다 사라졌을 거라, 처음 이곳엘 왔을 때 그 모습을 보고 얼마나 감탄을 했었는데…."
이윽고 우리는 그 유명한 해평습지에 도착했다. 그러나 드넓게 펼쳐진 모래사장이 길게 길게 이어져 있는 그곳엔 역시나 굴착기를 비롯한 중장비들이 주인인양 강 한가운데 들어가서 열심히 '삽질'을 하고 있었다. 화가 치밀어 오른다.
우리는 곧 차에서 내려서 이곳 저곳을 둘러봤다. 그래도 주변 농경지들은 아직 건드려지진 않았다. 그러나 곧 사라질 밭들은 자신들의 운명을 알기라도 하는지 서글퍼 보인다. 밭들 저 멀리엔 역시 중장비들이 눈에 들어온다.
갑자기 스님이 외쳤다. "고니에요, 고니. 고니가 왔어요." 스님이 가리킨 곳으로 눈을 돌렸더니, 저 강 한가운데 정말 큰 새가 우아하게 물길을 거슬러 올라오고 있는 광경이 눈에 들어온다. 실물로는 정말 처음 보는 녀석들이다.
"조심해서 움직여요. 저 놈들은 크기가 몇 미터나 되는 녀석들이라서, 놀라서 날아오르면 에너지 소비가 아주 심하다고 해요, 절대 놀라게 해서는 안돼요."
스님 말에 따라 우리는 고니가 눈치 채지 못하게 상체를 바싹 숙인 후에 서서히 강변 쪽으로 다가갔다. 그런데 녀석들은 한두 마리가 아니었다. 뒤를 보니 수십 마리의 고니 무리가 떼를 지어 놀고 있었다.
마치 '백조의 호수'를 연상시키는 모습이었고, 어디에서 백조들의 노래가 흘러나오는 듯도 했다. 아닌 게 아니라, 녀석들은 그 특유의 중저음으로 연신 떠들어대고 있었는데, 정말 노래를 하는지도 몰랐다. 이렇듯 강에는 물고기들만 사는 것이 아니었다. 수많은 새들도 강을 기반으로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다리 위로 올라가봐요. 다리 위에서 보면 한눈에 다 볼 수 있어요. 다리 위에서 위쪽 아래쪽 모습을 다 담아두어야 해요"라고 말하는 스님을 따라 다리에 오르기 위해서 왔던 길을 되돌아 강둑으로 올라갔다. 그런데 어디에서 나타났는지 영감님 한분이 자전거를 옆에 세워두시고 우리쪽을 계속 응시하고 있다.
"이상도 하지, 내가 움직일 때마다 저렇게 마을사람들이 꼭 나타난다니까. 꼭 감시를 당하는 기분이야. 이제 정말 주민들까지 동원하나?"
스님은 혼잣말을 하면서 짐짓 "할아버지, 이곳에 살아요?" 물으니 노인은 "이 아래 땅이 우리 땅이야"라고 동문서답한다. "보상 많이 받았겠네요?"라고 스님이 말 귀가 어두운 노인에게 다시 큰 소리로 물으니 "몰라, 아들 녀석이 다 알아서 하기 때문에 나는 잘 몰라"라고 한다.
노인에게 공손히 인사를 한 후, 우리는 다리 위로 올라가기 위해서 다시 도로로 올라갔다. 그런데 이 도로가 참 위험하다. 갓길이 전혀 없이 만들어진 도로는 연신 차들이 쌩쌩 달리고, 그 좁은 틈으로 겨우 다리 위로 올라선다.
"휴" 하고는 다리 가운데로 옮겨가면서 내려다 본 해평습지는 (강 가운데 이상한 부조화를 이룬 채 열심히 작업 중인 중장비들이 없다면 더욱) 참 장관이었다. 길게 구불구불 이어져 내린 모래사장과 강 가운데의 고니떼들의 유영은 한폭의 그림이었다.
고니들은 마치 우리들에게 '착한' 피사체가 되어 주려는 듯 물길을 거슬러 올라오고 있다. 한 무리는 저 멀리서 날아올라서 멋지게 착취하는 그 우아한 모습을 연출해주기도 한다. 정말 그 큰 새가 날개를 쭉 편 채로 내려오는 모습은 장관이었다. 한동안 넋을 잃고 녀석들을 계속 감상하기에 바쁘다.
그렇게 한참을 고니들에게 넋이 빠져 있는데, "스님, 낙동강엔 우리도 살고 있어요" 하듯이 기러기 무리가 새까맣게 하늘을 뒤덮으면서 우리 머리 위를 '기룩기룩' 하며 날아간다. 그 모습 역시 장관이다. 스님은 "와, 웬일이래 웬일이야" 하면서, 연신 카메라 셔터를 누르고 계신다. 머리 바로 위로 날아가는 기러기들의 군무를 보고는 우리는 다시 길을 재촉했다.
초토화된 해평습지에서 만난 동물들의 발자국
이번에는 해평습지 반대편 강변숲을 담기 위해서 그곳으로 차를 몰아 잠시 내려갔다. 그리고 이내 처참한 파괴의 현장을 만났다. 중장비가 들어가기 위해서, 급하게 길을 내면서 곳곳에 무참한 벌목 흔적이 있었고, 땅엔 중장비의 바퀴자국만이 을씨년스럽게 남아 있다.
마치 평화를 가장한 점령군들의 군홧발을 보는 듯한 모습이었다. 그들은 지금 '행복 4대강 ' 운운하면서 이렇게 무자비하게 진군하고 있는 것이다. 그들이 남겨놓은 '군홧발' 옆으로 무수한 생명들의 발자국이 어지럽게 널려 있다. 마치 점령군들의 총칼에 벌벌 떨면서 바쁜 걸음으로 살 곳을 찾아 이리저리 도망다니는 원주민들을 보는 듯도 하다.
그렇다. 이렇듯 강은 다양한 생명들이 살아 숨 쉬는 공간이었다. '4대강'엔 결코 물고기들만 사는 것이 아니었다. 고니와 기러기를 비롯한 새들과 멧돼지, 고라니, 노루, 삵, 오소리, 너구리 등등의 동물들과 곧 나타날 개구리를 비롯한 양서류들. 그들이 이 낙동강의 주인인 것이었다.
모래사장에 어지럽게 흩어진 그들의 선명한 발자국은 그렇게 외치고 있었던 것이다.
"이곳엔 우리들도 살고 있소, 그러니 제발 우리들을 좀 내버려 두시오, 강변마저 사라지면 도대체 우리는 어디에서 살라는 말이오, 우리도 물은 먹고 살아야 하지 않소?"
마치 "자연이 남아 있는 한, 성장은 계속 된다"고 하는 것처럼, 이제 마지막 남은 자연인, 생명의 젓줄인 강마저 '성장족'들이 건드리고 있는 것이다. 절대로 씨감자는 먹어선 안 된다는 것이 상식일진대 저들은 마지막 씨감자마저 먹어치우려 하고 있는 것이다.
스님과 필자는 해평습지의 슬픈 목소리들을 뒤에 남겨둔 채, 저 아래에 또다른 슬픔과 비극이 서린 현장인 칠곡보를 향해 떨어지지 않은 발걸음을 옮겼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