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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30년이 넘은, 재래시장에 위치한 2층짜리 건물에 살다보면 불편하고 황당한 일들을 많이 겪습니다. 벽이 외벽이라 난방이 잘 되지 않아 난방비는 많이 들어가는데도 방바닥에 온기가 없습니다. 여름엔 한증막입니다. 특히 2층인 우리집은 창문도 잘 열지 못합니다. 이유는 1층이 대부분 식당이기 때문에 냄새가 많이 올라오기 때문입니다. 그래도 아내는 여름에는 타박을 하지 않는데 겨울에는 보일러 마음껏 돌리는 집에 살고 싶다는 말을 합니다.

추위와 더위는 속된 말로 몸으로 때우면 됩니다. 하지만 비가 올 때 물이라도 새면 보통 문제가 아닙니다. 여름철에 비가 많이 오면 물이 조금씩 새기는 했지만 다행히 별 문제는 없었습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달랐습니다. 물이 줄줄 흘러내리고, 급기야 시뻘건 녹물까지 집안으로 들어왔습니다. 우리 동네는 3월 들어 오늘(14일)까지 8일이나 비가 왔습니다. 이틀에 한 번씩 비가 온 것입니다. 결국 끊임없이 내리는 비를 감당하지 못했는지 창틀 사이로 물이 샌 것입니다.

 창틈으로 흘러내린 녹물
 창틈으로 흘러내린 녹물
ⓒ 김동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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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녹물까지 샌다. 이런 집에서 어떻게 살아요"
"……"
"어떻게 해보세요."
"실리콘으로 창틀을 메우면 임시방편은 될 거예요."
"실리콘으로 새는 물을 막을 수 있어요?"
"지금으로서 그것밖에 방법이 없잖아요."
"주인집에 전화해서 고쳐 달라고 하는 것 아니에요."
"우리 집은 창문이 많아 돈이 많이 들 것인데."
"아니 이런 것쯤은 고쳐달라고 해야 되잖아요. 하기사 고치면 무엇해요. 창틀 손대면 다른 곳까지 고쳐야 하니까. 아마 고치는 돈보다 이런 집 한 채 사는 것이 더 적게 들 수 있을 거예요."

실리콘으로 창틀을 메우기로 했습니다. 젖은 벽지를 걷어내니 녹물이 줄줄 흘러내립니다. 실리콘을 3개를 사와 창틀 전체를 메웠는데 과연 얼마나 견딜지 모르겠습니다. 싱크대가 막혀 '뚫어 펑'을 한 달에 몇 번씩 붓다가 지난해 봄 형님과 동생이 싱크대를 옮겨 문제를 해결했는데 이제 앞으로는 실리콘을 이용한 창틀 메우기로 시간을 보내야 할 것 같습니다.

 실리콘으로 창틀을 메우고 있다.
 실리콘으로 창틀을 메우고 있다.
ⓒ 김동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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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둥이는 아빠가 무슨 일을 하면 항상 옆에 있습니다. 창틀에 실리콘 메우는 일에도 간섭입니다. 실리콘을 메우기 위해 창문을 막았던 나무판자를 떼어 내는데 뒷짐을 지고 옆에 섰습니다.

"아빠, 뭐하세요?"
"시뻘건 녹물 보이지. 녹물이 새지 않도록 실리콘으로 창틀을 메우려고."

"그런데 나무판자는 왜 떼내는 거예요?"
"나무판자를 떼내야. 창틀을 메우지."
"아빠 녹물이 왜 집안으로 들어오는 거예요?"
"우리집은 오래 되어서 창문과 벽 사이에 틈이 생겼어. 틈 사이로 물이 들어는 거야."
"그럼 틈을 메우면 물이 새지 않아요."

"그래야 할 것인데. 비가 다시 와봐야 할 수 있다."

 창틀을 메우기 위해 막았던 나무 판자를 떼어 내는데 막둥이가 뒷짐을 지고 있습니다.
 창틀을 메우기 위해 막았던 나무 판자를 떼어 내는데 막둥이가 뒷짐을 지고 있습니다.
ⓒ 김동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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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창틀 메우는 모습을 보고 있는 막둥이
 창틀 메우는 모습을 보고 있는 막둥이
ⓒ 김동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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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안으로 녹물이 스며드는 모습을 보면서, 정말 계속 이런 집에 살아야 하는지 답답했습니다. 그런데 더 황당한 일이 벌어졌습니다. 방금까지 창틀에 실리콘을 메우는 모습을 신기한듯 옆에서 지켜보고 있었던 막둥이가 갑자가 사라졌습니다. 재미가 없어 방안에 들어갔는 줄 알았는데 아니었습니다. 디지털 카메라를 망가뜨린 것입니다.

 막둥이가 망가뜨린 디지털 카메라. 휴대전화로 찍어 글자가 잘 보이지 않지만, '렌즈 에러, 카메라 재시작'가 보인다.
 막둥이가 망가뜨린 디지털 카메라. 휴대전화로 찍어 글자가 잘 보이지 않지만, '렌즈 에러, 카메라 재시작'가 보인다.
ⓒ 김동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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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보 카메라가 고장났어요."
"방금 전에 당신이 찍었잖아요."
"내가 찍을 때는 괜찮았는데."
"그럼 누군데."
"방금 체헌이가 카메라를 만졌는데."
"막둥이가, 김 막둥이 빨리 와."
"왜 부르세요."
"너 카메라 만졌지. 카메라가 고장났다."
"제가 안 그랬어요."
"엄마가 네가 방금 전까지 만졌다고 하던데. 거짓말 하지 말고. 바른 말해. 네가 고장냈지."
"……"
"어떻게 했어. 렌즈를 돌렸지? 지금 '렌즈 에러'라는 글이 보이지. 에러라는 말은 고장 났다는 말이야. 알겠어."
"예 내가 돌렸어요."
"김 막둥 너 앞으로 한 달 동안 컴퓨터와 텔레비전 금지다. 알겠어."
"……"
"왜 대답을 안 해."
"예."

얼마나 화가 나던지. 한 달 동안 컴퓨터와 텔레비전을 금지시켰습니다. 막둥이는 우리집 가전제품 고장내는 데 선수입니다. 엄마가 혼수품으로 가지고 온 텔레비전, 오디오, 냉장고와 아빠가 사 준 지구본 등등. 한 번 손이 스치면 남아나는 가전제품이 없습니다. 얼마나 많은 가전제품을 망가뜨렸는지 지난 2009년 2월 22일 쓴  <"엄마도 유리창문 깼잖아요!">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오늘은 우리집에서 가장 값나가는 디지털 카메라를 망가뜨렸습니다.

"아니 어떻게 렌즈를 돌려버리니. 아빠는 도저히 이해가 안 된다."
"그냥 돌려 봤어요."
"잘 안 돌아가지. 그럼 돌리면 안 되는거야. 막둥아 이제 너도 초등학교 3학년이야. 3학년 쯤 되면 해서는 안 되는 일쯤은 알 수 있잖아. 디지털 카메라 렌즈를 돌리면 안 되는 것쯤은 알 수 있잖아."
"그냥 돌려봤어요."
"그냥 돌려봤다고!"

어이가 없었습니다. 생각 같아서는 머리를 주먹으로 한 대 쥐어박고 싶었지만 차마 그럴 수는 없었습니다. 아내가 혼수품으로 가져왔던 텔레비전을 망가뜨렸을 때는 웃어 넘겼지만 디카는 산 지 얼마 안 됐고, 3학년쯤 되면 이제 생각도 있어야하는데 그렇지 않으니 답답했습니다.

"내 용돈 모아서 디지털 카메라 사 드릴게요."
"네 용돈 모아 카메라 산다고? 엄마가 일주일에 용돈 얼마 주신는데?"
"천원요."
"뭐라고! 천원?"
"너 디지털 카메라가 얼마인줄 알아."
"잘 모르겠어요."

"아마 30만 원은 주어야 할 수 있다. 30만 원이 얼마나 큰돈인지 알아?"
"아니요."
"일주일 용돈 1천원을 1년 모으면 얼마야."
"5만원쯤 돼요."
"그래 형아 말대로 5만원쯤 된다. 그럼 몇 년을 모아야 30만원이 되는지 막둥이 말해봐."
"6년 모아야 30만원이에요."
"그래 6년 모아야 한다. 6년 후면 막둥이 중학교 2학년이다."
"중학교 2학년때까지 한 푼도 쓰지 않고 모을 수 있겠어?"
"……"
"앞으로 카메라 같은 것은 조심해서 만져 알겠어?"
"예. 알았어요."

나는 실리콘으로 창틀 메우고, 막둥이는 디지털 카메라 망가뜨린 하루였습니다. 오래만에 꾸중을 들은 막둥이는 잠깐 동안 울먹였지만 금방 웃으면서 온 집안을 뛰어다닙니다. 막둥이 모습을 지켜 본 아내는 대단한 배짱을 가진 아이라고 웃었습니다. 우리 막둥이 손을 스쳐가도 망가지지 않는 디지털 카메라, 누가 만들 수 없나요. 그리고 오늘과 내일 비가 많이 온다는데 제발 물이 새지 않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오래된 집#막둥이#디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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