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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4일 오전 봉은사 법왕루 앞, 대형 전시판에 대한불교 조계종 총무원(총무원장 자승)이 봉은사를 특별분담금사찰에서 직영사찰로 전환했다는 내용의 신문 기사 여러 편이 크게 붙어있다.
14일 오전 봉은사 법왕루 앞, 대형 전시판에 대한불교 조계종 총무원(총무원장 자승)이 봉은사를 특별분담금사찰에서 직영사찰로 전환했다는 내용의 신문 기사 여러 편이 크게 붙어있다. ⓒ 최경준

"명진스님이 오셔서 청정 도량을 만들었는데……. 너무 슬퍼서 눈물이 나네요."

14일 오전 9시 50분경, '연지'라는 법명을 쓰는 한 신도는 일요법회가 열릴 예정인 서울 강남구 봉은사 법왕루 앞에서 한참을 서성였다. 그를 비롯해 다른 신도들도 법왕루 입구에 설치된 대형 전시판 앞에서 잠시 발길을 멈췄다가 안타까운 표정을 지으며 법왕루로 올랐다.

전시판에는 지난 11일 대한불교 조계종 총무원(총무원장 자승)이 종단 안팎의 비판론에도 불구하고 봉은사를 특별분담금사찰에서 직영사찰로 전환했다는 내용의 신문 기사 여러 편이 크게 붙어있었다. 신도들은 특히 <강남 봉은사 흔드는 '검은 그림자'>라는 제목의 손석춘 '새로운 사회를 여는 연구원' 원장의 칼럼을 주의 깊게 읽었다.

"우리 서명이라도 해야 되는 거 아니에요?"

신문 기사를 다 읽은 '연지'는 마침 법왕루 앞에 있던 한 스님을 붙들고 따지듯이 물었다.

"우리 어떻게 해야 되는 거예요. 서명이라도 해야 되는 거 아니에요?"

스님은 말없이 고개를 가로저었고, '연지'는 힘없이 돌아서서 계단을 올랐다. 기자가 다가가자, 그는 기다렸다는 듯 가슴 속에 쌓아두었던 말들을 쏟아냈다.

"명진스님이 오셔서 신도들도 많이 늘었다. 임기가 다 안 끝났는데, 지금 와서 저렇게 한다면 너무 슬픈 일이다. 명진스님이 이명박 대통령에 대해 입 바른 소리를 많이 했다. 정치권에서 압력을 넣었을 것이다. 너무 슬퍼서 눈물이 나려고 한다. 대통령이 직접 명령을 내리지 않았더라도, 밑에 충성스런 부하들이 이렇게 한 것 같은데, 부당하다. 봉은사는 아직 안정이 덜 됐다. 더 청량한 도량을 만들기 위해서 명진스님의 힘이 필요하다."

'연지'는 오는 11월까지인 명진스님의 임기를 보장받을 수 없을 것이라는 우려가 컸다. 4년의 주지 임기를 보장하는 특별분담금사찰과 달리 직영사찰은 조계종 총무원장이 당연직 주지를 맡으면서 기존 주지는 '재산관리인'이 된다. 특히 재산관리인의 임면권은 총무원장이 갖는다.

'연지' 뿐이 아니다. 1100여명의 신도들로 가득 메워진 법왕루는 엄숙하면서도 무거운 분위기였다. 명진스님도 법문을 하는 중간 중간 한탄 섞인 한숨을 토했다.

명진스님이 떨리는 목소리로 "또 신도들에게 이런 상처를 남겨줘야 되는가, 또 싸우는 모습을 보여줘야 되는가"라며 "이번 사태를 보면서, 눈물이 난다"고 탄식하자, 법왕루 곳곳에서 훌쩍이는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그러나 명진스님이 "봉은사 신도와 소통되지 않은 결정은 받아들일 수가 없다"고 선언하자, 분위기는 급반전됐다. 기운을 얻는 신도들은 명진스님의 법문 한 마디, 한 마디에 큰 박수를 치며 화답했다. 총무원에서 이번 결정과 관련 납득할 만한 해명을 하지 않을 경우 전국 사찰과 신도들을 대상으로 '봉은사 직영 폐지를 위한 1000만인 불자 서명운동'에 돌입하겠다는 명진스님의 선언에는, 환호성까지 내질렀다.

 대한불교 조계종 총무원(총무원장 자승)이 지난 11일 봉은사(주지스님 명진)를 특별분담금사찰에서 직영사찰로 전환키로 한 가운데, 14일 봉은사 일요법회가 끝난 뒤 한 신도가 눈물을 흘리자, 명진스님이 "울지말라"고 달래고 있다.
대한불교 조계종 총무원(총무원장 자승)이 지난 11일 봉은사(주지스님 명진)를 특별분담금사찰에서 직영사찰로 전환키로 한 가운데, 14일 봉은사 일요법회가 끝난 뒤 한 신도가 눈물을 흘리자, 명진스님이 "울지말라"고 달래고 있다. ⓒ 최경준

"만약 내가 (봉은사를) 나가게 되면, 뼈가 돼서 나간다"

법회가 끝난 뒤, 신도 대표단과 별도 회동을 가진 자리에서 명진스님은 오히려 "저쪽에서 큰 실수를 했다. 잘못 건드렸다"며 결의를 다졌다.

"신도들의 집단행동은 절대 원하지 않는다. 봉은사는 내가 지킨다. 내가 가사를 벗어던지고 개혁에 실패할 경우 절을 떠나겠다는 각오로 임하겠다. 다시는 봉은사 얘기가 총무원이든 어디서든 나오지 못하게 할 것이다. 오히려 좋은 계기가 된 것 같다."

그는 거듭 총무원의 이번 봉은사 직영사찰 전환 결정의 문제점을 지적했다.

"직영은 말 그대로 직접 와서 돈을 가져가겠다는 것이다. 과연 신도들이 가만히 있겠나? 직영하면 당연히, 신도들이 빠져나가고 돈도 안 낸다. 그것을 알면서……. 차라리 분담금을 더 달라고 하지, 그렇지 않고 직영으로 가겠다는 것은 숨겨진 무슨 목적이 담겨있기 때문이다. 자승 스님은 봉은사 대종으로서 총무원장이 됐다. 그런데 제일 처음 큰 업적이라고 하는 일이 봉은사 주지를 내쫓는 작업인가? 인간적으로 도리가 아니고, 상식적으로도 생각할 수 없는 일을 했다."

그러면서 그는 "왜 이렇게 무리를 했을까, 이렇게 무리를 하는 것은 무슨 목적이 있다는 것"이라며 "어떤 사주를 받고, 어떤 세력에 의해서 봉은사 주지를 내쫓는 과정을 밟고 있는지, 심증은 가지만 뭐라고 할 근거가 없다"고 거듭 의혹을 제기했다.

그의 말을 듣고 있던 한 신도가 "4년 만에 한 번씩 무슨 행사처럼 이런 일이 되풀이 되는 것 같다"며 "속상하더라도 힘내시라"고 명진스님을 격려했다. 명진스님은 "나는 속상할 게 없는데, 여러분들을 생각하면 속이 상하다"며 "이제 조금 봉은사가 나아지고 있는데…"라고 안타까움을 감추지 못했다.

"나는 여러분들을 계속 행복하게 할 책임이 있다. 그것을 못 지키면 내가 '지옥 찌꺼기'가 되는 것이다. 그냥 여기서 털고 가면 될 수도 있겠지만……. 내가 조금 손에 뭐 묻히더라도, 여러분들을 지키겠다. 봉은사를 정법 도량으로 지킬 것을 맹세한다. 만약 내가 (봉은사를) 나가게 되면, 뼈가 돼서 나간다. 그런 각오로 이 사태에 임하고 있다. 내 모든 것을 던져 놓고 시작하겠다. 천년 고찰이 이제 좀 맑은 기운이 도는데, 여기 또 다시 구린내 나는, 악취 나는 발자국이 발을 들이는 것은 내 자존심이 허락지 않는다."

신도 대표단과 회동을 마치고 밖으로 나오자, 여전히 신도들이 법왕루 앞에서 명진스님을 기다리고 있었다. 한 신도가 북받치는 서러움을 참지 못하고 눈물을 흘리자, 명진스님은 어깨를 두드리며 "왜 울어? 난 한 발도 안 물러나"라고 말했고, 다른 신도들은 그를 향해 "힘내세요"라고 합창을 했다.

일원동에서 왔다는 한 신도는 "갑갑하다. 전혀 납득할 수 없다"며 "총무원장인 자승 스님이 처음 취임했을 때 '소통을 중시하겠다'고 말했다. 불교계의 수장이 거짓말을 하면 되느냐"고 성토했다.

그는 이어 "소통한다면서 신도들과 소통은커녕 대화도 하지 않았다. 이건 직권남용"이라며 "명진스님이 바른 말을 많이 했는데, 위에 정치하는 분들에게 거슬린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고 안타까워했다.

1984년부터 봉은사에 불공을 드렸다는 한 신도는 "불교를 믿는 불자로서 참으로 부끄러운 일"이라며 "1988년 봉은사에 깡패들이 들어와서 유린했던 일이 자꾸 생각난다"고 몸서리쳤다. 또 다른 신도는 "공론화도 없이 공청회도 없이 갑자기 이런 결정을 내린 것은 불법"이라며 "신도의 의견이 무시됐다"고 분개했다.

 명진스님이 14일 일요법회를 끝낸 뒤, 걱정을 하는 신도들에게 "난 한 발도 물러나지 않을 것"이라며 안심시키고 있다.
명진스님이 14일 일요법회를 끝낸 뒤, 걱정을 하는 신도들에게 "난 한 발도 물러나지 않을 것"이라며 안심시키고 있다. ⓒ 최경준

부인과 함께 법회에 참석한 왕수덕(54.송파구)씨는 "안타깝다. 아직까지 우리에게 봄은 오지 않은 것 같다"고 한탄했다.

"전반적으로 권력의 독재성이 빚어낸 결과다. 우리는 명진스님이 누군지 모른다. 다만 우리 절의 주지스님일 뿐이다. 그 분의 과거 전력에 대해선 모른다. 그러나 명진스님이 오셔서 재정 투명화를 실현했다. 이는 불교계뿐만 아니라 종교계 전체를 봐서도 개벽이다. 그런데 잘 자라는 새싹을 보호하지는 못할망정 돌을 던져서 죽이려고 하나. 대한민국 온 종교계의 슬픔이고, 국민의 슬픔이다."

특히 왕씨는 "조계종 총무원이 봉은사 신자들에 대해 정면도전을 했다"며 "70~80년대 상황이 재현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박재하(61)씨도 "'각목 불교'가 없어지는가 했더니, 그런 망상이 떠오른다"며 "보통 착잡한 게 아니다"고 말문을 열었다.

"신도나 불자들이 사람인 이상, 비합리적인 것까지 용납할 경지는 못 올라간다. 감정을 컨트롤할 수 있는 한계가 있다. 잘 가고 있었는데, 이렇게 발전을 저해하는 결정은, 저 높은 곳에서 어떻게 생각하는지 모르겠지만, 이해할 수 없다.

명진스님도 스님이기 전에 사람이다. 모든 표현은 자유롭게 할 수 있다. 근거 없이 모함하는 것이 아닌 이상 표현의 자유는 누구에게나 다 있다. 내가 법회에서 볼 때 (명진스님이) 어떤 범위를 넘어섰다고 보지 않는다. 적절한 표현을 썼다. 그리고 현실이 그렇지 않은가. 보는 시각에 따라서 정치적이라고 할 수 있겠지만, 내가 볼 때 용납되어지는 범위다. 그것을 문제 삼는다는 것은 부당하다."

'소희'라는 법명을 쓰는 김현경(42)씨는 "종단에서 힘을 남용하는 것 같다"며 "지금도 너무 잘 운영하고 있는데, 잘 돌아가는 사찰을 왜 이렇게 하는지 알 수가 없다"고 말했다. 특히 김씨는 "사실 명진스님을 몰아내기 위해서 이런 일이 생기는 것 아닌가, 정법으로 정도의 길을 가고 계신데, 이런 식으로 하니까, 너무 가슴이 아프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한편 대한불교 조계종 총무원(총무원장 자승)이 지난 11일 서울 강남의 대형사찰인 봉은사를 직영사찰로 전환한 데 대해, 봉은사 주지인 명진 스님은 이날 법회에서 "다음 주까지 (총무원에서) 무리한 결정을 하게 된 이유에 대해 납득할 수 있는 답변이 없을 시에는 전국 사찰과 신도를 대상으로 한 '봉은사 직영 폐지를 위한 1000만인 불자 서명운동'에 돌입하겠다"고 선언했다.


#봉은사#명진스님#직영사찰#조계사 총무원#각목 불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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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너머의 진실을 보겠습니다. <오마이뉴스> 선임기자(지방자치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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