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에서 맞는 나흘째 아침. 이틀 내내 손이 얼 듯한 찬바람에 비까지 내려 숙소에서 소일하던 차에 이날 만큼은 3월의 봄날 답게 하늘이 활짝 갰다. 이제 주변지리도 제법 익혔겠다, 사흘이나 건너 뛴 달리기를 하기에 제격인 날씨다.
세수도 않고 트레이닝복에 패딩점퍼를 걸치고 전날 갔던 동물원이 있는 방향으로 향한다.
숙소에서 나와 온몸으로 흡수하는 아침 햇살. 자전거를 타고 오는 아저씨 왼쪽으로 먹자골목(정식명칭 : 쟌쟌요코쵸 골목길), 신세카이 시장, 동물원으로 연결되는 굴다리가 있다.
잠시 후면 사람들로 북적거릴 먹자골목도 아침엔 화장기 없는 미인의 얼굴처럼 정갈하고 수줍다.
전날 들른 텐노지 동물원. 북극곰과 사자, 오랑우탄과 물개들도 또다시 전쟁 같은 하루를 치르기 위해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을까.
동물원 입구에서 왼쪽 오르막길로 빠지면 오사카시립미술관을 지나 시계탑이 있는 텐노지역 광장으로 이어진다.
정말 달릴 맛 나는 길이다.
아침의 숲길은 심신을 정화해준다. 이런 길 위를 이러한 시간에 달리고 있으니 마치 내 집이 지척인 듯 안도감이 생긴다.
여기가 바로 텐노지역 광장. 아직 출근족도 오지 않은 이른 시각, 비둘기들의 식사가 한창이다. 여기까지 오는 데 30분쯤 걸린 듯싶다.
광장에서 내려와 다시 오사카시립미술관 앞. 한 노숙자 주변으로 길고양이 서너 마리가 모여 있다. 함께 사는 고양이들 생각에 쓰다듬어 보려 하자 카악질을 한다. 키워본 사람은 알겠지만 이 녀석들 제법 의리가 있는데다, 사람의 마음을 헤아리는 천부적인 재능을 갖고 있다.
사람 많기로 유명한 쟌쟌요코쵸 거리 한가운데 자리잡은 극장. 일본의 '대담함'에 관해선 익히 들어왔지만 시간과 장소를 가리지 않고, 육체의 부위 또한 가리지 않는 이색적인 나신(裸身)은 도대체 어떤 식으로 적응을 해야 하는 건지. 머리 벗겨진 한 중년이 참으로 오래도록 포스터 속 여인을 바라보고 있었다.
장사 준비가 한창인 가게 안 요리사들. 아침을 여는 사람들의 분주한 모습은 언제 봐도 신선하다.
한 가게 앞에 붙은 재미있는 사진. 밥 샙이 정말로 다녀갔는지 기념으로 찍은 듯한 사진을 크게 출력해 붙여두었다. 밥 샙은 저날, 무슨 메뉴를 몇 인분이나 먹고 갔을까.
어딜 가나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연인들을 위한, 연인들에 의한 공간! '나오는 건 한숨 뿐이로세.'
한 시간에 걸친 운동을 마치고 아침거리를 사러 길 건너 신카이수지 시장으로 가는 길, 전날 저녁까지도 없었던 새로운 조형물이 오가는 이들의 시선을 붙잡고 있다. 전화기, 기타, 테니스채, 피아노 등 각종 낡고 부서진 장난감으로 탄생시킨 멋진 '홍룡'이다. 대체 누구의 작품일까? 이럴 때가 현지말을 못해서 가장 아쉬울 때다.
아침식사를 위해 식빵에 넣어먹을 햄과 과일주스를 샀다. 이렇게 단촐하면서도 좋아하는 것만으로 이뤄진 식단이 무척 마음에 든다. 날씨가 반짝반짝 빛나니 오늘이야말로 '본격 관광을 시작해볼까'
덧붙이는 글 | '덴푸라'는 다양한 해산물과 채소 등을 달걀과 밀가루를 섞어 만든 튀김옷을 무쳐 튀겨낸 일본 음식을 뜻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