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 100년 기업이 없는 까닭?2009년 1월 미국 경제전문지 <포브스>에서 '100년 이상 살아남을 기업'을 선정해 공개한 적이 있다. 여기에 코카콜라, 유니레버, 골드먼삭스, 토요타, 자라 등이 이름을 올렸다. 하지만 한국 기업은 단 1곳도 이름이 올라와 있지 않았다. 글로벌한 기업이 하나도 없다는 뜻이다.
<삼성을 생각한다>(사회평론 펴냄)의 저자 김용철 변호사는 삼성 본사의 해외 이전과 관련된 대중의 우려를 기우라고 단정한 뒤 그 이유를 이렇게 설명한다.
"삼성은 본사를 해외로 옮길 수 없다. 철저히 내수 위주인 금융 및 소비재 사업, 중소기업에 비용 떠넘기는 거래 관행, 정부의 다양한 지원 등 국내에서 누리는 이점이 워낙 크기 때문이다." (<삼성을 생각한다>, 436쪽)애플 앱스토어는 콘텐츠 사업자와의 계약에서 25% 가량만 취하고 나머지 수익을 모두 '을'에게 넘겨주며, 구글은 더 나아가 가입비만 받고 모든 수익을 '을'에게 준다. 이것은 창의적이고 특이한 계약방식이 아니다. 지극히 상식적인 계약이다. 우리 기업들은 관행이라는 이름으로 비상식적인 계약방식을 일상적으로 적용한다. 100년을 지탱하는 힘이 상식에 있다고 한다면, 우리 기업들이 100년을 넘기지 못하는 이유는 자명하다.
1938년 삼성상회에서 시작해서 현재까지 73세가 된 기업 삼성이 100년 기업이 될 수 있을까? 100년이 되어도 건재하다면 그것은 우리나라가 그때까지 비리와 비자금에서 자유롭지 못하다는 말 아닐까?
'삼성을'이 아니라 '생각한다'에 방점을 찍고 읽자삼성 X파일, 대선자금, 떡값, 불법승계 등 삼성이 저질러 놓은 언론보도를 읽으며 우리들은 삼성을 비판하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삼성에 대한 공포심과 환상을 키워가고 있었다.
<삼성을 생각한다>의 가장 큰 덕목은 대한민국을 좌지우지하는 거대자본으로서가 아니라, 분식회계가 아니고서는 단 하루도 살 수 없는 삼성의 취약한 구조를 온전하게 드러낸다는 데 있다. 이것은 우리나라 대기업 대부분의 사정이기도 하다.
"비밀스런 업무를 담당했던 자들은 능력이 없어도 계속 중용됐다. 잘못을 저질러도 어지간해서는 잘리지 않았다. 비리 공범을 함부로 자를 수는 없는 노릇이니까. 2009년 1월 발표된 삼성 고위직 인사에서도 확인된 사실이다." (위 같은 책 175쪽)삼성의 실권자 이학수 전 삼성그룹 부회장이 김용철 변호사의 집까지 찾아가고 문자메시지를 수차례나 보낸 까닭은 김 변호사가 비자금을 다루는 재무팀에서 일했기 때문이다(법무팀이 아니다. 따라서 김변호사의 정확한 임무는 재무팀 비자금 담당이거나 재무팀 로비스트다). 김 변호사는 자신이 재무팀 중에서도 '관재팀'에서 일했다면 삼성 수뇌부는 더욱 사색이 되었을 것이라고 했다.
이쯤 되면 <삼성을 생각한다>가 삼성에 대한 고발글이 아니라 '성찰글'이라는 사실을 쉽게 알 수 있다. 철학자 스피노자는 에티카에서 두려움과 공포를 이기는 법에 대해서 간명하게 정리했다.
"우리는 감정에 예속돼 있기 때문에 분노나 의심 등의 감정 때문에 사람을 죽일 수도 있고 내가 죽을 수도 있다. 하지만 막상 그 감정을 이해하거나 이해하려는 시도를 하는 것만으로도 그것은 더 이상 나를 괴롭힐 수 없다." - <에티카> 일부우리가 언론을 통해서 확대재생산된 삼성 공포증을 이해하려고 노력한다면 삼성은 더 이상 공포의 존재가 아니다. 오히려 삼성에 덧씌워진 부당한 환상까지도 사라지게 만들 수 있다.
김상봉 교수의 삼성불매 제안에 절반만 동의하는 까닭김용철 변호사가 틈날 때마다 하는 말은 "한줌도 안 되는 자들이 대한민국 대표기업 삼성을 망친다"였다. 뿐만 아니라 이건희는 한줌도 안 되는 지분(0.3%)으로 삼성 그룹을 장악했다. 이 장면에서 우리는 이건희가 대단한 수완의 소유자가 아니라 무척 취약한 권력구조를 가지고 있다고 보아야 한다. 그리고 글로벌 자본주의에서는 이러한 관행이 용납될 수 없다.
이 취약성을 채워주는 것은 역설적이게도 대중의 공포 재확산 시도다. 삼성의 기업구조를 정상화 시키려는 시도가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왠지 삼성을 건드리면 큰일이라도 날 것 같은 두려움이 삼성을 키우고 또 키웠다. 삼성의 지배구조에 대해서 법학교수들이 소송을 제기하고, 노회찬 진보신당 대표가 X파일을 고발하고, 김용철 변호사가 내부고발을 하며 삼성에 대한 공론화를 시도했지만 그때마다 삼성은 법망을 빠져나갔고 '무적 삼성'이라는 이미지만 더욱 커졌다.
김용철 변호사가 책에서 이야기했듯이 아예 재판부에서 '배당'을 통해서 삼성에 우호적인 판사를 배치하기도 하고, '사회적 지위' '경제에 미치는 효과' 따위 이유를 들어 무리한 집행유예 선고를 내렸다. 상식적으로 납득할 수 없는 결과이지만, 결과적으로 삼성 견제 세력이 헛물만 킨 꼴이 됐다. 성공전략과 치밀한 방법론에 대한 고민 없이 사회적 여론만에 의지해서 '선불'을 놓은 결과다.
이는 '안티 조중동 운동'에서도 드러난다. '조중동'이라는 명사 앞에 '안티'를 붙였지만, 결과적으로 조중동은 이 운동을 통해 득을 봤다. 이것이 '대상화'의 무서움이다. 이와 비슷하게 삼성을 대상화 시키면 삼성에게 불멸의 지위를 주는 효과를 낳게 될까 두렵다.
진알시 회원, '삼성 불매운동'에 할 말 있다
하지만 '불매'라는 소비자적 관점은 흔쾌히 동의할 수 있다. 철저히 자본주의의 관점에서 말하면 삼성은 판매자이며, 우리들은 소비자다. 삼성이 소비자에게 손을 벌릴 수밖에 없는 구조다. 다르게 표현해 삼성과 소비자 중에서 누가 더 오래 살 것인가? 삼성은 소비자에게 적응해야 한다. 하지만 우리 사회는 오히려 소비자가 삼성에 적응하는 듯한 인상마저 주고 있다. 쉽지는 않겠지만 삼성을 1:1로 맞짱 뜰 상대로 치켜세우지 말자. 시장에서 고르는 많은 상품 중 눈에 띄는 상품 정도로만 정리하자.
진알시(진실을 알리는 시민,
http://jinalsi.net/)는 트위터(@jinalsi)를 통해서 <삼성을 생각한다> 구매 캠페인을 벌인 바 있다. 이유는 두 가지다. <삼성을 생각한다> 책 자체가 가지고 있는 힘을 생각했으며, 이런 정도의 책에도 벌벌 떠는 언론사 광고국이 어이 없어서다. 철저히 자본주의적 관점이다.
<삼성>에 대한 비판서가 많이 출판됐지만 삼성 안의 사정을 이렇게 광범위하고도 구조적으로 드러내 보여준 책은 없었다. 한마디로 진알시가 투자할 만한 가치가 있었다. 신문광고만 안 나갔지 인터넷 서점 예스24, 알라딘의 메인에 배너가 실릴 정도로 책은 절찬리에 판매되고 있다. 알라딘과 예스24가 정의감에 넘쳐서 메인배너를 올린 게 아니다. 신문광고를 거부한 신문사도, 메인에 배너를 실은 인터넷 서점도 장삿속이다. 이것이 바로 '시장이 삼성을 받아들이는 방법'이다. 여기에 정의감이나 의무 같은 덕목을 붙이기 시작하면 답이 안 나온다.
진알시는 리트윗 캠페인뿐만 아니라 2월 26일~3월 1일(4일간) MBC 앞에서 <삼성을 생각한다> 구매 캠페인도 벌였다. 현장에서 직접 사서 선물도 주자는 취지였다. 판매 수익금은 라면 후원금으로 기부했다. 여기서 끝나는 게 아니라 출판사와 연계해서 '공동구매'도 추진 중이다. 그리고 <삼성을 생각한다> 전면광고도 기획 중이다. 어느 지면에 실릴지는 알아봐야겠지만 가장 파급력 있고 실질적인 효과가 있는 곳에 집행하고 시민의 참여를 유도할 계획이다. 그리고 전면광고가 나간 지면을 전국 90개 배포팀에서 배포한다. 오프라인에서 순식간에 <삼성을 생각한다>를 퍼뜨릴 계획이다. 아직 오프라인 독자들에게 <삼성을 생각한다>가 알려지지 않은 상황이기 때문이다.
최근 김상봉 교수는
<프레시안> 기고를 통해서 "지금 당장" 삼성에 대한 불매를 할 것을 제안했다. 하지만 정작 방법에 대한 문제는 적고, 삼성을 해묵은 비위 사실과 모순에 관한 철학자로서의 성찰이 대부분을 차지한다. '당장'이라는 말이 제목에 붙어 있는 게 멋쩍은 느낌이 들 정도다.
당장 불매운동을 전개하려면 글을 읽는 사람이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 제안할 필요가 있다. 예컨대 트위터에서는 삼성불매운동이나 삼성에 관해 성찰하자는 취지의 글에는 "#think3s"라는 해시태그를 붙여달고 있다. 글을 쓸 때 이름 옆에 삼성불매운동을 표시하는 상징을 다는 등의 구체적인 방법이 아쉽다. 그리고 삼성이라는 거대한 대상을 상대하려면 기존에 삼성불매를 해오던 시민단체나 네티즌 그룹과의 연대 논의의 장을 열 필요가 있다.
이런 구체적인 방법이나 로드맵에 대한 논의가 부족한 상황에서 내놓은 '삼성 불매 운동'은 설익었다는 느낌이 강하다. 물론 김상봉 교수의 삼성 불매 운동 제안이 사회적으로 건강한 환기가 이루어지기를 필자는 바란다.
덧붙이는 글 | 프레시안에 독자투고로 올린 글을 다듬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