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0년) 5월 26일, 광주 시민 3만 명이 도청 앞에 모였어요. 하지만 어두워지면서 다 집으로 돌아갔지. 도청에는 사람이 얼마 남지 않았어요. (5월 27일 새벽에) 20분도 안 걸려 도청이 함락되었을 거예요. 그런데 그때 광주 시민들이 자고 있었을까? 어떻게 잘 수 있겠어요? '도청에 있는 사람들이 어떻게 되었을까?' 하고 밤을 지샜겠지요. 아마도 우리 5000년 역사 중 가장 긴 새벽이었을 거예요."19일 오후 5시, 한홍구 성공회대 교수가 '지금 이 순간의 역사'라는 주제로 새내기 대상 강연을 시작했다. 주말을 앞둔 금요일 늦은 오후였음에도 100여 명이 서울대학교 문화관 중강당을 찾아 한 교수의 강의를 경청했다.
이번 강연은 서울대 앞 책방
'그날이 오면'(대표 김동운, 아래 '그날')과 '그날이 오면 후원회'(회장 장경욱 변호사)가 주최하고, 서울대학교 인문대 학생회와 사회대 학생회가 후원했다.
1988년에 문을 연 인문사회과학 전문서점인 '그날'은 서울대 앞 녹두거리를 지켜온 비판적 지성의 산실이다(
관련 기사 : 인문사회과학, 다시 날아오를 '그날' 꿈꾸다). 과거 대부분의 대학 앞에 하나쯤은 있었던 이런 인문사회과학 서점들이 하나둘씩 사라져갔지만, '그날'은 20년 넘게 꿋꿋이 자리를 지키면서 단순히 책을 판매하는 것을 넘어 사회 진보를 위해 활발한 활동을 펼치고 있다. '그날' 대표 김동운씨는 강연 전 인사하는 자리에서 "'그날'은 한국 사회의 모순들을 성찰하기 위한 창문의 역할을 해 왔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라고 밝혔다.
새내기를 주요 대상으로 한 강연이었지만, 새내기 뿐만 아니라 대학원생이나 백발의 노인도 참석하는 등 다양한 청중이 한 교수의 강의에 집중했다.
"지난 100년 동안 이렇게 많은 일들이 있었나"
연단에 선 한홍구 교수는 '그날'과 강연 제목인 '지금 이 순간의 역사'가 통하지 않느냐며, "'또 다른 그날'을 이야기하겠다"라고 운을 뗐다.
한 교수는 2010년을 "꺾어지는 해"라고 표현하면서 "(지난 100년 동안) 이렇게 많은 일들이 있었나 싶다. 경술국치 100주년, 한국전쟁 60주년, 4.19 50주년, 5.18 30주년 등 생각해봐야 할 일들이 많다"라고 했다.
이어 한 교수는 한국 사회가 현대에 압축적으로 변화한 것은 놀라운 일이라고 했다. 그것은 그 이전에 한국이 속도감 있는 역사를 갖고 있지 않았기 때문이란다. 한 교수에 따르면 왕조가 중국에 비해 오래 지속된 이유를 엘리트의 지속성에서 엿볼 수 있다고 한다. 귀족-호족-신흥사대부로 이어지는 한국의 엘리트들은 급기야 일제 시대에도 살아남았다는 것이다.
"일제시대는 경천동지하게 조선과 다른 시대였어요. 그런데도 엘리트는 그대로 살아남았어요. 그리고 이 엘리트들은 해방 이후에도 고스란히 살아남았어요." 한 교수는 이 이야기를 하며 친일파 청산 문제로 자연스레 강연을 이어갔다.
"친일파 청산 못 한 나라가 전 세계에 둘, 바로 남베트남하고 남한"현대사 전문가로 <대한민국史>, <특강> 등의 책을 펴냈던 한 교수는 최근에 낸 저서 <지금 이 순간의 역사>에서도 자주 언급했던 친일파 청산 문제를 꺼냈다.
"친일파 청산 못 한 나라가 전 세계에 둘이에요. 남베트남하고 남한. 다른 나라들은 다 청산했어요. 그리고 남베트남은 망했지. 그럼 남은 건 우리밖에 없어요. 한국전쟁은 친일파를 반공투사로 거듭나게 했던 결정적인 계기였죠."한 교수는 1948년에 만들어진 제헌헌법이 굉장히 좌파적인 성격을 띄고 있었다고 지적하면서, 이는 당시 친일파와 구분되는 민족주의 우파까지 동의하는 내용이었다는 점을 강조했다. 그런데 '악질적인 반민족행위를 처벌하는 특별법을 제정할 수 있다'고 명시적으로 규정한 제헌헌법 조항이 실현되지 않고 친일파 청산이 실패한 것에 대해 한 교수는 이렇게 말했다.
"나는 1949년에 쿠데타가 있었다고 생각해요. (제헌의회에서 친일파 청산 등을 주장한 국회의원들을 간첩으로 몰았던) '남로당 프락치 사건' 알죠? 친일 경찰이 일으킨 사건이에요. 그리고 국가기구인 반민특위를 경찰이 습격했어요. 그로부터 2주 후 백범(김구)이 암살됐죠. 이 세 사건은 한 사건이에요. 친일파가 민족적 양심을 가진 우파를 처단한 거야.""5000년 역사에서 가장 길었을 그 새벽이 많은 사람의 인생을 바꿨다"친일파 청산의 당위성을 강조한 한 교수는 5.18에 대해서도 많은 시간을 할애해 이야기했다. 그는 희생자 수로 보면 한국전쟁이나 제주 4.3항쟁에 미치지 못하는 이 사건이 왜 그렇게 중요한 사건이 되었는가 하는 화두를 던졌다.
"광주의 희생자는 2000명이라는 이야기도 있지만, 제가 보기에는 좀 과장된 수치 같고 당시 죽었던 사람은 정부 발표와 비슷한 수준인 200명 정도, 이후 후유증으로 사망한 이들까지 합쳐 500명은 넘지 않을 듯 싶어요. 이 정도 수준이면 한국전쟁 사망자에 명함도 못 내밀지. 제주도 4.3사건 때만 해도 3만5000명이 죽었어요. 그럼 광주가 뭣 때문에 그렇게 중요했나? 바로 그 새벽 때문에 많은 사람의 인생이 바뀐 거였어요. 광주는 한 세대를 만들었던 겁니다."한 교수는 5.18의 과정을 훑어보면서 '해방 광주' 시기에 중요한 의미를 부여했다.
"인류 역사에서 보기 어려운 일이었어요. 정말 놀라운 일이지. 무기가 수천 정이 풀렸는데 강도 사건이 하나도 일어나지 않았어요. 물자가 부족했지만 아무도 매점매석한 사람이 없었고. 그게 바로 대동세상이죠. 그때를 생각하면 죽어도 여한이 없다는 사람을 만나 본 적이 있어요." 1980년 5월 26일과 27일 도청에서 있었던 일을 이야기하면서 강연회는 클라이맥스에 다다랐다. 모든 청중이 숨죽이며 한 교수의 말을 경청했다. 몇몇 학생은 눈물을 훔치기도 했다.
"5월 26일에 도청에 남은 이들이 있었어요. 그들 중 일부는 현실적으로 계란으로 바위치기라며 항복하자고 했지. 하지만 남은 사람들은 '그냥' 남았어요. 차마 집에 갈 수 없었던 거죠. 그날(27일) 새벽, 20분도 안 되어 도청이 함락되었어요. 결국 진 거죠. 그런데 그 이후로 우리 역사에 돌연변이들이 나타나기 시작했어요. 별종들이 탄생한 거야. 그때 도청에 있었던 사람들이 총을 내려놨다면 우리 시대의 광주는 없었을 겁니다."이어 한 교수는 서울대 학생들을 응시하며 이야기했다.
"양식 있는 사람들은 현대사 초기에 다 학살당했어요. 그것도 멸균실 수준으로. 이렇게 '청소'가 말끔히 된 사회에서 민주화를 이룩할 수 있었던 이유가 있어요. '한 시대에 가장 똑똑한 이들이 자신을 돌보지 않았던 것'이에요. 그것을 가능하게 했던 게 바로 광주였죠."앞자리에 앉은 한 여학생은 연신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민주화로 누가 제일 좋아졌죠? 재벌 아닌가요?"그러나 한 교수는 5.18로 만들어진 한 세대가 일군 민주화가 불완전하다고 평가했다. 분명히 민주화는 큰 성과이고 지켜야 하는 것이지만 한계가 너무 많다고 보았다.
"민주화되고 나서 누가 제일 좋아졌죠? 재벌 아닌가요? 옛날에는 전두환 한마디에 재벌이 해체됐었죠. 그런데 지금은 재벌이 국가권력을 관리해요. '떡찰' 있잖아요. 이건희만을 위한 특별사면을 하는 나라가 됐죠. 진짜 권력이 뭔지 알아요? 그건 벽에 똥칠할 때까지 꼭 쥐고 있다가 자식한테 물려주는 거예요. 그게 뭐죠? 바로 재벌하고 언론이야. 그들은 적어도 열 배는 강해졌어요."이어 구체적으로 민주화의 한계에 대해 언급했다. 한 교수는 비정규직 문제와 재벌 개혁 실패를 첫손가락에 꼽았다. 그리고 당부로 강연을 마무리했다.
"한국에 새로운 신분제가 생기고 있어요. 요즘 지배층이 하고 있는 것은 거기(상류층)로 들어가는 문을 닫는 일이에요. 불행한 시대에 우리가 이뤄놓은 것, 여러분들이 뺏기지 않도록 노력해야 해요. 그것은 바로 헌법이고, 그걸 지키기 위해 어떻게 싸워왔는지 기억해야 해요. 1980년대에는 대의를 위해 싸웠어요. 지금 여러분은 자신을 지키기 위한 투쟁을 우리 사회의 공공선에 맞게끔 해야 해요."그는 이렇게 2시간에 걸친 강의를 마무리했다. 긴 박수소리가 터져 나왔다.
강연 내내 곳곳에서 눈물... 두 새내기는 강연 후 '펑펑'강연이 끝난 후 한 새내기 대학생에게 소감을 물었다. 광주 출신으로 올해 사범대에 입학했다는 김소영씨는 과거 신라·고려 지배층의 유지와 친일파 청산 문제를 연결해 설명한 대목이 인상적이었고, 5.18 이야기가 가슴에 와닿았다고 덧붙였다. 또한 "최근 고려대학교 학생의 자퇴 대자보를 보며 친구들과 많이 공감했어요. 대학이 어쩌다 이 지경이 되었는지 모르겠네요."라면서 변화의 주체로 서고 싶다는 포부를 밝혔다.
강연회가 끝난 후 한홍구 교수의 저자 사인회가 이어졌다. 한 교수는 학생들이 들고 온 책에 하나하나 사인을 해주면서 오랫동안 대화를 나누는 열정을 보였다. 이 과정에서 올해 대학에 입학한 '10학번' 새내기 두 친구가 5.18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면서 펑펑 울어, 보는 이들의 마음을 울컥하게 했다. '그날이 오면 후원회' 회장인 장경욱 변호사도 "5.18 이야기를 처음 듣는 것도 아닌데 한홍구 교수 강연을 들으며 북받쳤다"라며 "강연 주최 측으로서 눈물 참느라 혼났다"라고 털어놓았다.
이후 녹두거리의 한 호프집에서 한 교수와 강연 참석자 30여 명이 함께한 뒤풀이가 이어졌다. 교복을 입은 고등학생 아들을 데리고 참석한 82학번 선배, 몇 시간 전 '그날' 앞을 지나가다가 강연 포스터를 보고 한걸음에 달려왔다는 고시생, 갓 대학에 들어온 10학번 새내기 등이 자리를 함께하는 대학가에서 보기 드문 자리가 만들어졌다. 한 교수도 밤 11시까지 자리를 지키며 참석자들과 깊이 있는 대화를 나눴다.
덧붙이는 글 | 최기원 기자는 '그날이 오면 후원회' 운영위원입니다. '그날' 소식은 http://www.gnal.co.kr/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