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을 자퇴한 김예슬씨의 용기 있는 행위를 지지한다.
현재 한국은 저질 '대졸자 주류 사회'의 모습을 하고 있으며, 그 상태는 매우 심각하다. 대학들은 창조적이고 상상력 있는 교육을 하기는커녕, 중고등학교의 맹목적인 입시교육을 유발하고 공공연히 뒷받침하는 짓을 하고 있다. 심하게 말하면 창조적이지도 않은 비싼 교육의 대가로 졸업장을 파는 사업을 한다고도 할 수 있다.
나 자신이 교수이면서, 그리고 교수를 그만두지도 못하면서, 자발적으로 대학을 자퇴한 학생의 행동을 지지하는 것이 주제넘어 보여, 금방 나서지는 못했다. 그러나 가만히 있는 것도 한심한 모습이기에, 나는 말하고 싶다.
자발적인 대학 자퇴를 지지하며, 우리 스스로 더 나아가야 한다고.
맹목적인 대학 입학과 졸업을 멈춰야 한다
대학의 구차스럽고 뻔뻔스런 모습을 뻔히 보면서 이제까지 아무런 적극적인 행동을 하지 못한 것은 부끄러운 일이었다. 지금 등록금 문제를 포함한 여러 문제들의 뒤에 도사리고 있는 것은 바로 과도하게 대학 졸업을 부추기는 사회이다. 교수임에도 불구하고 아니 거꾸로 말하면 교수이기에 나는 말한다, 이제 맹목적으로 대학에 입학하고 졸업하는 일을 멈춰야 한다고!
한국 사회는 대졸자들이 주류로 군림한 사회이다. 과거에는 그나마 대학을 나오면 괜찮은 일자리를 얻는 게 가능하기에, 이 시스템이 굴러갔다. 그러나 이젠 더 이상 이 시스템은 굴러가지 못한다. 부모 돈으로 대학을 나오고 다시 부모 돈으로 오랫동안 취직 준비까지 해야 하는 사람들이 많은 상황, 이 체제는 지속되기 어렵다. 이 체제는 바뀌어야 한다. 해마다 반복되는 등록금 문제나 졸업 후 등록금 상환 문제도 이 체제의 부산물이다. 심지어 대학을 나온 사람들이 다수 실업 상태에 있기에, 고졸 실업자들의 문제도 간과되는 지경에 이르렀다. 사실은 고졸자들의 실업 문제가 더 심각한데도 말이다.
대졸자들의 문제는 단순히 졸업한 후 일자리가 부족하다는 데에서만 오지 않는다. 이제까지 국가 주도의 근대화를 추진한 보수뿐 아니라 진보들도 대부분 대학에 진학하는 것을 당연하게 여겼다. 그 교육열은 어느 수준까지는 사회에 이롭게 작용했을 것이지만, 어느 순간 그 단계는 지나갔다. 대졸자들은 소비 성향에서도 알게 모르게 높은 수준을 지향하는데, 따지고 보면 그 경향은 한국 사회를 보수적으로 만드는 데 기여했다고 볼 수 있다. 대졸자들은, 머릿속으로는 진보적이고 개혁적인 생각을 가졌더라도 실제 행동은 보수적인 성장을 추구하고 그것에 의존하는 경향이 크다. 그것이 결국 한국 사회의 개혁을 지속하지 못하게 하고 비틀거리게 만든 숨어 있는 요인인 셈이다.
대학 교육이 필요없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다만...
나는 물론 대학 교육이 필요없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그리고 모든 경쟁을 없애야 한다고 생각하지도 않는다. 다만 창조적이지도 않고 상상력도 고갈시키는 비싼 대학교육은 필요없다는 것이다. 시험성적 순으로 학생들을 뽑아서, 그 입시성적의 순위에 기생하며 손쉽게 등록금을 거둬들이는 대학 시스템은 바뀌어야 한다는 것이다. 제대로 경쟁하려면 대학들이, 그리고 교수들이 경쟁해야 한다. 어느 대학이 창조적으로 교육하는지 서로 경쟁해야 한다. 공부를 하고 싶은 사람은 대학에 가야 하겠지만, 공부 말고 다른 것을 하고 싶은 학생들에게 고등학교 수준에서 직업 교육을 하는 방식을 과감하게 도입해야 한다. 그리고 고등학교만 나와도 충분히 생활할 수 있도록, 시간당 최저임금을 높여야 한다. 지식으로 경쟁하는 사람은 대우가 좋은 일자리를 구할 수는 있겠지만, 그런 일자리는 끝없는 능력과 노력을 요구한다. 그것이 모든 이에게 필요한 것도 아니고 또 바람직한 것도 아니다.
대학생의 문제는 다만 대학생의 문제로 끝나지 않는다. 자식들의 학업을 위해 희생하는 부모들의 문제이기도 하다. 결국은 부모 세대도 독립적인 삶을 가지지 못하고, 자식 세대들도 마찬가지로 의존적인 삶을 살게 된다. 우리는, 부모와 자식 모두 서로 의존하며 서로 고통을 준다. 우리 개인들은 좀 더 독립적이고 자발적인 삶을 추구해야 한다. 이것이 중요한 문제다. (지난 2월에 출간된 글 <대졸자 주류 사회, 바꿔야 한다>라는 글에서 나는 이 문제들을 모두 상세히 다뤘다. <황해문화>, 2010 봄호. 아래 첨부 파일 참조.)
김예슬씨가 이른바 일류대를 자퇴했기에, 많은 사람들에게 충격을 주었고 또 많은 사람들의 뜨거운 주목을 받은 건 사실이다. 그것이 일류대 입학한 사람의 멋있는 일회성 자퇴 충격으로 흘러가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는, 다른 대학생들과 고등학생들의 자발적인 참여가 필요하다. 대학에서 열심히 공부할 사람은, 대학에 가자. 등록금도 비싼 만큼 더 열심히 하자. 그러나 열심히 하지 않을 사람이나 열심히 하고 싶지 않은 사람들은, 굳이 대학에 가지 않아도 되는 방향으로 가자.
대학 가지 않아도 차별받지 않는 사회를 위하여
고등학생들도 대학 가는 일 하나를 위해 중고등학교에서 그저 바보처럼 공부하는 일에 저항해야 한다. 많은 학생들이 중고등학교에서 '죄수처럼' 통제당한다고 여긴다. 이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여기에 부모와 학생 모두 저항해야 한다. 중고등학생들도 자신의 인권을 위해 외쳐야 하고 부모들도 그것을 지원해야 한다. 오직 대학 간다는 미명 아래, 학교에서 체벌을 당하고 두발 자유까지 희생하는 삶이 무슨 소용인가? 부모나 학생이나, 대학 가기 위해서는 아무 생각 하지 말고 그저 공부만 하라는 말만 반복하지 말도록 하자. 대학 입시 과목도 너무 많다. 앞으로도 한동안 대학 나와도 일자리에 대한 불안은 지속될 것이다. 그러니 중고등학교 때부터 삶과 자유를 저당잡히고 삶을 희생할 필요는 없지 않은가? 일자리 부족은 구조적인 것이기에 금방 개선되기 어렵다.
대학에 가지 않아도 차별받지 않고 살 수 있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 머리를 쓰고 또 행동하자. 대학생들도 획일적인 공부와 똑같이 하는 취업 준비에 저항하자. 이것은 하나같이 쉽지 않은 일이다. 대학에 가지 않거나 대학을 그만두는 일은 차별에 대한 불안, 그리고 공포와 싸우는 일이기 때문이다. 부모들도 자식의 미래에 대한 불안과 공포와 마주해야 하는 일이다. 대학을 그만두거나 가지 않으면 당장은 차별을 받을 가능성이 큰 건 사실이다. 그것을 부정할 필요는 없다. 그러나 확실한 것은, 불안과 공포에 직면해서 밀리기만 한다면 희망도 없고 자유도 없다. 불안과 공포와 벌이는 싸움에서 조금씩이라도 버텨야 한다.
덧붙이는 글 | 필자는 인하대 철학과 교수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