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아, 요즘은 시 안 쓰니?""아빤? 내가 요즘 시 쓸 시간이나 있까니. 참기도 힘든데."이틀 결석하고 하루 조퇴하고 머리 아픔과 배아픔을 견디면서 겨우 학교를 나가고 있는 아들에게 시를 안 쓰냐고 물었더니 펄쩍 뜁니다. 지금의 상황을 견디기도 어려운데 웬 시냐 이거지요,
아들의 꿈은 한의사가 되는 것입니다. 한의사가 되려고 하는 이유는 아빠의 병을 고쳐주기 위해서랍니다. 뭐 그렇다고 내가 큰 병이 있는 건 아닙니다. 여기저기 고장 난 곳이 나타나는데 아들의 눈엔 조금 안돼 보였나 봅니다. 그래서 한의사가 되어 아빠를 치료해주겠다고 합니다.
그런 아들에게 난 가끔 시인이 되라고 말하곤 합니다. 특별히 글을 잘 쓰는 건 아니지만 이따금 일기장에 시를 쓰는데 그 동심이 예쁩니다. 아이들은 보이는 그대로 글을 씁니다. 꾸밈이 없지요. 아들 녀석도 그렇습니다. 이따금 기발한 표현을 쓸 때도 있습니다. 그럴 때마다 종종 '야, 우리 아들 시 잘 쓰네!' 하면서 용기를 주곤 합니다.
예전에 이런 일이 있었습니다. 아이가 초등학교 1학년 때입니다. 차 안에서 밖을 바라보던 아이가 갑자기 '아빠, 저기 용거북 있어.' 합니다. 거북선 모양의 레스토랑을 보고 하는 소리입니다. 아들이 '용거북'이라고 말하자 아내는 바로 그건 용거북이 아니라 거북선이라고 지적을 해주고 난 그 지적에 대해 뭐라고 한 적이 있습니다.
"아니, 왜 말을 고치는 거야. 용거북이 훨씬 좋은데."
우리 어른들은 어떤 사물을 바라볼 때 고정된 시각으로 바라봅니다. 그런데 아이들은 그렇지 않습니다.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사물을 인식하고 표현을 합니다. 아들이 거북선을 보고 '용거북'이라 한 것은 머리는 용인데 몸통은 거북이라 이 둘을 표현하여 '용거북'이라 말한 것입니다. 난 그때 아이의 표현이 너무나 새롭게 들렸습니다. 한 번도 거북선을 보고 '용거북'이라는 말을 생각하지 않았거든요.
그런 조금은 엉뚱하고 새로운 표현을 쓰는 아이를 보고 "야, 너 시인의 자질이 있다. 그러니 한 번 써 보라."라고 농반진반 권유하곤 했습니다. 정말 아들에게 시인의 자질이 있어 시를 쓰라고 한 건 아닙니다. 다만 어떤 글이건 자신의 마음을 표현하는 사람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에서 시를 써보라고 한 것이지요.
시를 쓰라고 하면서 아들에게 약속을 하나 했습니다. 초등학교 졸업 전에 아들이 쓴 시를 엮어 작은 시집을 만들어주겠다는 약속을 한 것이지요. 그런 약속 때문인지 아니면 정말 시를 쓰고 싶어서인지는 모르지만 가끔 연습장이나 일기장에 시를 쓰면 가져와 보여주고 나서 컴퓨터에 저장을 하곤 합니다.
고추잠자리 - 한 울 -아이고 매워너는 왜 맵니?고추를 먹었는지 고추장을 먹었는지너는 참 매운 잠자리구나 눈 - 한 울 -휭~ 휭~ 휭~천사들이 어린이들이 놀으라고 보내주는푹신푹신한 돌멩이딱딱하지도 않고 뭉치기 딱 좋게얏! 아야!친구가 눈덩이에 맞았다우리는 그렇게 천사들이 보내준돌멩이로 재미있게 논다.아들 녀석이 근래에 쓴 동시 중의 하나입니다. 아이들의 천진난만함과 솔직함이 그대로 드러나 있음을 볼 수 있습니다. 눈을 바라보면서 '푹신푹신한 돌멩이'라고 이야기할 수 있는 것도 아이들이나 쓸 수 있는 표현이 아닌가 싶습니다.
그러고 보니 아들 녀석이 개학한 뒤론 한 번도 일기나 시를 쓴 적이 없는 것 같습니다. 조금씩 치유되고 있으니 언젠가는 자신이 겪은 고민들을 시라는 형식을 빌려 쓸지 모릅니다. 그땐 지금보다 좀 더 어른스럽고 단련되어 있을 거라 믿어봅니다. 비 온 뒤에 땅이 더 단단하게 굳는 것처럼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