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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 김이하 시인 김이하(51)가 백정이라는 천민 신분 벽을 훌쩍 뛰어넘어 우리나라 최초로 근대식 병원 의사가 된 박서양 삶을 다룬 동화 <제중원>(라이프플러스)을 펴냈다
시인 김이하시인 김이하(51)가 백정이라는 천민 신분 벽을 훌쩍 뛰어넘어 우리나라 최초로 근대식 병원 의사가 된 박서양 삶을 다룬 동화 <제중원>(라이프플러스)을 펴냈다 ⓒ 이종찬

우리나라 최초 서양병원 의사는 누구일까. 박서양이다. 독립운동가이기도 했던 그는 1885년 9월 30일 서울 종로 관자골에서 백정 박씨 아들로 태어난다. 그때 이름은 박봉출이었다. 그는 서양의사 에비슨이 장티푸스에 걸린 아버지를 살린 것이 인연이 되어 1898년부터 제중원에 들어가 허드렛일을 하기 시작한다.

그는 1900년 10월 제중원 의학교에 정식으로 입학한 뒤 1906년 홍석후, 김규식, 이교승 등과 함께 황성기독청년회에 나가 학생교육을 맡는다. 1908년 6월 3일에는 제1회 세브란스 병원 의학교를 졸업하고, 그 다음날 의술 개업 인허장을 받는다. 1909년 9월에는 콜레라가 나돌자 김필순, 김희영, 안상호, 이석준, 박용남, 장기무, 한경교, 정윤해 등과 함께 방역에 나섰다.

1917년에는 간도로 옮겨 연길에 구세병원을 개업하고, 1919년에는 대한국민회 군의가 되어 대한국민회 홍범도가 이끄는 대한독립군, 최진동이 이끄는 북로독군부 등과 연합정책을 펼친다. 1936년에는 황해도 연안으로 귀국해 병원을 개업해 수많은 사람을 치료하던 박서양은 1940년 12월 15일 고양군 은평면 수색리 165번지에서 55세란 짧은 나이로 이 세상을 떠나고 만다. 정부는 2008년 8월 15일, 그에게 건국포장을 추서했다.                    

백정 아들에서 의사이자 독립운동가로 이름을 떨쳤던 박서양. 그 파란만장한 삶은 지금 SBS 드라마 '제중원'에서 주인공 황정(박용우 분)으로 되살아나고 있고, 동화로도 읽히고 있다. 하지만 이 드라마는 황정이 간도로 떠나는 데까지만 다루고 있으나, 김이하 시인이 이번에 내놓은 동화 <제중원>은 박서양이 살아온 삶 모두를 꼼꼼하게 다루고 있다.

"백정의사 박서양 진짜 삶 알리고 싶었다"

동화 제중원 백정의사 박서양  이 책은 김이하 시인이 지난해 여름부터 제중원과 우리나라 근대의학사, 박서양에 대해 깊이 연구한 박형우 대한의사학회장을 찾아가 얻은 자료를 주춧돌과 기둥으로 삼아 서까래를 얹고 용마루를 올렸다
동화 제중원 백정의사 박서양 이 책은 김이하 시인이 지난해 여름부터 제중원과 우리나라 근대의학사, 박서양에 대해 깊이 연구한 박형우 대한의사학회장을 찾아가 얻은 자료를 주춧돌과 기둥으로 삼아 서까래를 얹고 용마루를 올렸다 ⓒ 이종찬
"박서양이라는 실제 인물이 주인공으로 나오는 드라마가 나라를 빼앗긴 지 100년 되던 해에 만들어져 어른들도 보고 우리 아이들도 새로운 분을 알게 되어 참 좋다는 생각을 한다... 아쉬운 것은 이미 나온 소설이나 드라마에는 사실과 다른 이야기가 많다. 내가 이 책을 쓴 것은 아이들에게 사실을 사실 그대로 알려주고 싶었기 때문이다."

시인 김이하(51)가 백정이라는 천민 신분 벽을 훌쩍 뛰어넘어 우리나라 최초로 근대식 병원 의사가 된 박서양 삶을 다룬 동화 <제중원>(라이프플러스)을 펴냈다. 이 책은 김이하 시인이 지난해 여름부터 제중원과 우리나라 근대의학사, 박서양에 대해 깊이 연구한 박형우 대한의사학회장을 찾아가 얻은 자료를 주춧돌과 기둥으로 삼아 서까래를 얹고 용마루를 올렸다.  

제1장 '백정의 아들로 태어나다', 제2장 '교회 학당에 가다', 제3장 '의학교에 가다', 제4장 '서양 의술을 배우다', 제5장 '나라를 살리다'에 실린 '족보자루 태어나다' '교회 학당에서 얻은 새 이름' '호적을 가진 백정' '사람을 살리다' '식민지가 된 조국, 떠나는 의사와 남는 의사' 등 24꼭지가 그것.

김이하는 24일(수) 전화통화에서 "어린이들은 재미보다 사실을 제대로 알고 위인들의 훌륭한 점을 본받아 더 훌륭하고 건강한 사람으로 자라야 한다"고 말한다. 그는 "드라마로 방영되고 있는 제중원은 사실과 많이 다르다"라며 "아이들에게 백정 신분이지만 그 천민이란 벽을 무너뜨리고 올곧게 살아낸 박서양의 진짜 삶을 알리고 싶었다"고 못 박았다.

족보자루 아닌 의사 박봉출 태어나다

"쓰잘 데 없는 족보자루 하나 또 나왔네. 지체 높은 양반집에나 점지하지 이런 천한 집에 나서 뭐가 되려고..."
산파가 중얼거렸습니다. 그러자 문지방 아래 아무렇게나 걸터앉아 막걸리 사발을 들이키던 박 씨가 소리를 꽥 질렀습니다.
"뭐가 되긴! 백정이지!" -17~18쪽, '족보자루 태어나다' 몇 토막

족보자루란 대를 이을 백정을 속되게 부르는 말이다. 봉출(박서양)은 우리나라 최초로 서양식 병원인 제중원이 들어선 지 6개월 뒤인 1885년 9월 30일 광대와 무당, 기생 그리고 소와 돼지 등을 잡는 천민 중 천민이라는 백정이 모여 살던 관철동에서 태어난다. 그가 태어나면서 내지른 울음소리는 유난히 우렁찼지만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는다.  

그날, 조상 때부터 백정 일을 이어온 봉출 아버지 박씨는 푸른 솔가지에 부엌에서 타다 만 숯검댕이를 금줄로 매단다. 하지만 조선시대에는 아버지가 백정이면 그 자식도 백정으로 살아야 했고, 양반처럼 족보가 있는 것도 아니며, 제대로 된 이름조차 없었다. 까닭에 봉출이 아버지도 이름도 없이 그냥 박씨로 불렸다.

봉출이가 태어나던 그해는 영국과 미국, 프랑스 등 서양에 있는 여러 나라에서 배를 타고 조선으로 다가와 무역을 하자며 협박을 하던 때였다. 우리나라 정부에서는 이를 놓고 서양문물을 받아들여 나라를 개혁하자는 개화파와 서양이 우리를 지배하려는 것이라며 나라 문을 열지 말자는 척사파가 팽팽하게 싸우던 때이기도 했다. 까닭에 봉출은 신분도 천했지만 시국도 복잡할 때 태어난 풍운아라 할 수 있다.

이름을 호적에 올린 백정 아버지와 그 아들   

박서양은 아버지가 병에 걸려 죽을 뻔한 그 여름이 생각났습니다. 그때 박서양은 정말 의사가 되고 싶었습니다. 에비슨이 아버지를 살려 주었듯이 자신도 누군가를 살릴 수 있다면 정말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 박성춘은 곧바로 무어 선교사를 만나 뜻을 전했습니다.
"무어 선교사님, 우리 서양이를 의사로 키우면 어떻겠습니까?"
"뭐라고요? 서양이를 의사로?"-81쪽 '꼬마신랑 장가들다' 몇 토막

박서양('상서로운 볕'이라는 뜻)은 무어 선교사가 지어준 새 이름이며, 무어 선교사는 콜레라에 걸려 죽어가던 박서양 아버지 박씨를 살려낸 '양귀'이자 박서양 아버지 박봉출('이룬 봄'이라는 뜻)이란 새 이름과 호적을 만들어 준 이다. 그러니까 박서양에게 무어 선교사는 새로운 희망을 꿈꾸게 하고, 의사로서 살아갈 수 있는 새로운 길을 터준 은인이었다.

제중원에 들어간 박서양은 에비슨(1860~1956)이란 또 다른 은인을 만나게 된다. 에비슨은 영국에서 태어나 캐나다로 옮겨 스스로 학비를 벌어 의대를 졸업한 뒤 캐나다 토론토 대학 교수를 맡고 있는 의사였다. 하지만 에비슨은 제중원에 들어온 박서양에게 허드렛일만 시킨다. 왜? 자신과 같은 굳은 의지가 있는지 시험하기 위해서다.

그러던 어느 날, 에비슨은 박서양에게 미리 준비해 두었던 <모기와 말라리아> <이와 발진티푸스> <파리와 장티푸스>라는 책을 건넨다. 이 책은 에비슨이 한글로 옮긴 책이었다. 박서양은 그때부터 의학에 대해 공부하지만 너무 어려워 자주 에비슨을 찾아가 묻곤 한다. 그는 그리하여 마침내 경성학당 야간 속성과에 1회 입학생이 되면서 의사가 되는 길목으로 발을 내디딘다.      

박서양, 간도에서 독립군 의사 되다

"그날 전투에서는 독립군이 크게 이겼습니다. 이것이 그 유명한 봉오동 전투입니다. 봉오동 전투에서 일본군은 150여 명이 죽고 300여 명이 다쳤습니다. 한편 독립군은 네 명이 죽고 두어 명이 다쳤습니다./ 아침에 맑았던 하늘이 저녁이 되면서 점점 어두워지더니 장대비가 퍼부었습니다.

박서양이 독립군을 따라 골짜기를 빠져나오는데 숨진 독립군 얼굴이 자꾸 떠올랐습니다. 빗속에서 누군가 낮은 목소리로 노래를 부르자 모두 함께 불렀습니다. '삼일운동의 노래'였습니다. 박서양도 조용히 따라 불렀습니다." -155쪽, '독립군 의사가 되다' 몇 토막

백정 아들 박서양은 의사로서만 이름이 높은 것이 아니라 독립운동가로서도 그 이름을 크게 떨쳤다. 그는 한일강제병합이 되자 간도로 건너가 군의관으로 활동을 하면서 다친 사람을 치료하는가 하면 구세병원과 숭신학교까지 세운다. 이 숭신학교는 간도에서 반일운동을 하는 중심점이 된다. 
 
간도에서 독립운동과 의술을 펼치던 박서양은 독립군에 대한 만주국 탄압을 견디지 못하고 1936년 쉰한 살 때 아내와 3남3녀를 데리고 그리운 조국으로 돌아온다. 이때 큰딸 인애는 서울에서 아버지 도움 하나 없이 세브란스 병원 유치원 교사가 되어 있다. 그는 하지만 이미 몸과 마음이 쇠했고, 1940년 쉰다섯 나이로 이 세상을 떠나고 만다.    

"소설만큼 재미는 덜 하더라도 사실을 전하고 싶었다"

시인 김이하 시인 김이하가 쓴 동화 <제중원 백정의사 박서양>은 사실을 밑그림으로 삼아 백정의사 박서양을 발가벗기고 있다.
시인 김이하시인 김이하가 쓴 동화 <제중원 백정의사 박서양>은 사실을 밑그림으로 삼아 백정의사 박서양을 발가벗기고 있다. ⓒ 이종찬
시인 김이하는 "이 책의 기획은 지난해 여름으로 되돌아간다. 경술국치 100년을 맞는 2010년에 출판인으로 의미 있는 일을 해야겠다고 생각하던 중 박서양이라는 인물을 알게 되었다"며 "소설만큼 재미는 덜 하더라도 사실을 전하고 싶었다. 그리고 우리 아이 또래의 어린이들을 위한 책으로 만들면 좋겠다는 판단을 했다"고 말한다.

그는 "몇 달 뒤 원고가 완성되었다. 한 편의 드라마 같았다. 재미도 있었다. 그런데 아이들이 읽기에는 다소 어려운 내용이 있었다. 이를 어린이 수준에 맞게 맞추는 윤문작업이 필요했다"고 고백한다. 그는 이어 "윤문과 일러스트레이션을 토대로 편집을 하고 나니 드라마 '제중원'이 방영되었다"고 귀띔한다.

그는 "교정 교열을 마친 뒤 박형우 대한의사학회장(연세대 교수 겸 동은의학박물관장)의 감수를 받았다"며 "박 회장(교수)님은 생각보다 '꼼꼼하게' 보셨다. 마치 편집자가 교정 교열하는 것보다 더 세심하게 내용을 검토하셨다. 사실과 다른 부분은 바로잡고 명확하게 짚고 넘어가야 할 부분은 명확하게 하자고 하셨다"고 덧붙였다.

시인 김이하가 쓴 동화 <제중원 백정의사 박서양>은 사실을 밑그림으로 삼아 백정의사 박서양을 발가벗기고 있다. 이 책이 지닌 백미는 이미 나와 있는 소설이나 지금 방영되고 있는 드라마에서 다루고 있는 '사실을 적당한 겉치레로 부풀린' 것에 '사실 그대로인 진실'로 맞불을 놓고 있다는 점이다

감수자 박형우 대한의사학회장은 추천사에서 "제중원은 우리나라 최초의 서양식병원이다. 이 병원 의학교에서 우리나라 최초의 면허 의사 7명이 탄생했는데 그중 한 명이 박서양"이라며 "이 책은 사실을 가장 정확하게 전달하면서도 박서양 선생님의 모범적인 삶을 잘 그린 유일한 정통 위인전이라 할 수 있다"고 평했다.

시인 김이하는 1959년 전북 진안에서 태어나 잡지사 기자, 출판사 편집장 등을 맡으며 <오늘의 시> <오늘의 소설> <오늘의 영화> 등을 편집했다. 시집으로 <내 가슴에서 날아간 UFO> <타박타박>이 있으며, 어린이책으로는 <세계의 신화전설>(중국편)을, 어린이 그림책 '옛멋 전통 과학시리즈' <참숯의 비밀> 등 12권을 펴냈다.

덧붙이는 글 | <유포터>에도 보냅니다



백정 의사 박서양

김이하 지음, 박형우 감수, 라이프플러스인서울(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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