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월 12일, 숙명여대 홈페이지 내 숙명인게시판에는 '[필독] 경상대학 경제학부 긴급공지'라는 제목의 글이 올라왔다. 경제학부 이미지 학생회장이 올린 글의 내용은 매우 놀라웠다.
"... 학교 측에서는 학교발전이라는 명목아래 경상대를 폐지하고 경영단과대의 개설을 계획 중에 있습니다. 이에 경제학부를 더 이상 경상대 소속이 아닌 사회과학대로의 강제 편입을 논의 중에 있으며 이미 상당부분 진행된 것으로 파악됩니다.(후략)"하루 아침에 경제학부가 경상대학에서 사회과학대로 소속이 바뀌는 개편에 대해 알고 있는 재학생은 아무도 없었다. 경제학부 재학생뿐 아니라 자신의 보직이 바뀌게 될 교수들조차도 정확한 사실을 알지 못했다. 교수들 사이에 떠도는 '카더라' 통신에 의해 2월 말부터 소문이 나돈 게 전부였고 이를 전해들은 경제학부 학생회장이 게시판에 해당 내용을 공지한 것.
이 게시물이 순식간에 수천의 조회수를 돌파하자 숙명여대 홍보실 측은 긴급히 '우리 대학, 학과제 전환 포함한 학제 개편 단행'이라는 뉴스를 게시했고 비로소 모든 숙명여대 구성원이 해당 사실을 확인하게 됐다.
교수님들도 모르셨어요? 신문에는 났던데
홍보실이 올린 학제 개편의 골자는 '소문'과 다르지 않았다. 기존 경상대학 중에서 경영학부는 경영대학으로 독립하고 경제학부는 사회과학대학으로 편입된다. 이외에도 학부제를 학과제로 개편하고 영어영문학부와 미디어학부를 독립시키는 등이다.
개편 자체에도 설왕설래가 많지만 가장 논란이 되는 것은 모든 개편 과정에서 학내 구성원들이 배제됐다는 것. 경제학부 학생회장의 글이 회자되자 총학생회가 조사해 발표한 글에서는 더욱 놀라운 사실이 드러났다.
이미 며칠 전인 3월 8일자로 한국대학신문을 비롯한 몇 개의 인터넷 신문에 숙명여대의 학과제 개편안에 대한 기사가 나와 있던 것.
게시글에서 강보람 총학생회장은 "경상대학을 경영대학과 경제학부로 분리시켜 경제학부를 사회과학대학으로 '편입했다'라는 기사를 확인했고 현재의 학부체제를 15개 학부와 32개의 학과로 개편하는 대대적인 계획도 나와 있었다. 신문에 기사로 실릴 만큼 일찍부터 개편이 논의되었다는 것인데 학생들은 전혀 모르고 있었다"며 분노를 드러냈다.
홍보실의 발표에 이어 경제학부 교수 10명 전원은 입장글을 내어 학교측을 비판했다. "아직도 학생들은 물론 교수들도 정확한 사실을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며 "편제가 몇몇 보직자에 의해 일방적으로 개편되었으며, 학문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개편으로 전공 학생들에게 피해가 될 것"이라는 주장이다.
경영학부 교수 17명도 학제 개편에 대해서 "절차와 내용면에서 도저히 받아들이기 어렵다"며 비슷한 입장을 드러냈다. "학제 개편이 회의 한 번 없이 일방적으로 결정됐으며, 경영학의 학문적 성격과 세계적 추세를 고려하지 않은 것"이라며 "학생들의 피해가 우려된다"며 재고해야 한다는 뜻을 분명히 했다.
"스승님들이 시위를 하시는데..."이후 보름이 넘도록 숙명여대 게시판은 재학생 및 교수들의 의견글과 댓글, 총학생회의 호소문, 경제학부의 서명운동 등으로 계속 소란스럽다. 총학생회장은 29일부터 무기한 단식 농성에 들어갔고 오프라인 서명운동에는 1200명이 넘게 참여했다. 아고라에도 청원이 등장해(
http://agora.media.daum.net/petition/view?id=90952) 현재 700명이 넘는 인원이 서명했다.
숙명여대 대학본부는 공지글을 올려 여론 진화에 나섰다. 학제 개편은 "교육의 질 제고를 위한 것"이니 외려 "사회과학대로의 편입을 반대하는 것에 대한 근거를 대라"는 것. 대학본부는 "소통의 장은 항상 열려 있었다"고 덧붙이기도 했다.
오늘(30일) 오후 1시경에는 경영·경제학부 교수 10여 명이 항의집회를 벌이기도 했다. 총장실, 기획처장실 등이 자리한 행정관을 향해 피켓을 들었다. 모두 검은 상복을 입은 채였다.
"더이상 뒤에서 숨지 말고 대화의 장으로 나오시오 기획처장!""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릴 수 없습니다. 경상대 학장은 모든 책임을 지고 즉각 사퇴하시오!!" 경제학부 이미지 학생회장은 "학교 이미지 생각해서 조심스러웠는데 저희 스승님들이 시위하시니까 더이상 안 되겠다"며 "내일은 재학생들도 함께 행정관을 향해 피켓을 들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번 숙명여대 학제 개편은 한영실 총장이 취임 이후 야심차게 추진하고 있는 '숙명 블루 리본(Reborn)' 프로젝트의 일환이다. 새롭게 다시 태어나겠다는 뜻이다. 이에 게시판에는 '도대체 누구를 위한 리본이냐'는 불만이 날마다 터져 나온다.
한 교수는 게시판에 "'섣푸른 리본'를 달려 앞장 서지 말고 '뒷장' 서자"며 "시류에 뒤쳐질까 초조해하지 말고 그냥 구성원들의 의견을 들어 달라"고 제안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