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파트 자전거 보관대에 주차된 나의 초록색 자전거. 요즘 이 자전거를 타고 동네를 누비는 재미에 푹 빠졌다. 외진 곳으로 이사온 탓에 걸어다니기는 힘들어서 시작한 자전거 타기.
16만 원인가를 주고 산 이 조그만 양철덩어리에 올라타 매일같이 도서관에도 가고, 슈퍼에도 가고, 그냥 동네를 한 바퀴 돌기도 하고, 그렇게 지내고 있다.
자전거타기와 더불어 내가 요즘 푹 빠진 게 있다면 사진찍기다. 대단한 실력도 장비도 없지만, 30만 원짜리 '똑딱이' 자동카메라를 늘 들고 다니면서 이렇게 자전거도 찍고, 동네 풍경도 찍어 본다.
집 안에서도, 늘 보던 액자가 새로워 보이거나 차를 마시던 컵이 문득 예쁘게 느껴지면 바로 카메라를 찾아든다. 그냥 이렇게 일상의 소소한 것들을 관찰하고, 구도를 잡아 프레임에 넣고 하는 일이 재미있다. 글 쓰는 것도 마찬가지 아닌가. 관찰, 초점, 표현. 수단만 조금 다를 뿐이다.
DSLR 갖고 싶었지만...내 카메라는 2008년 가을에 산 '캐논 익서스 90 IS' 다. 그 당시 나온 캐논의 똑딱이 중에서는 가장 최신이었고, 'Image Stabilizer'라는 카피를 내세운 익서스 시리즈가 한창 인기였다. 특별히 카메라에 대해 잘 알지도 못했고 욕심이 있던 것도 아니어서 그냥 남들이 추천하고 베스트셀러라고 하는 이 녀석을 샀고 지금도 아주 잘 사용하고 있다.
다만 똑딱이를 쓰다보니 아쉬운 게 주로 두 가지가 있는데, 우선은 광각이 좁은 것이고 두 번째는 취재할 때 곤란하다는 점이다. 후자는 오마이뉴스 시민기자를 시작하면서 생긴 문제다. 스무살 남짓, 어린 티 풀풀 나는 여자애가 미니홈피에 올릴 '셀카'나 찍음직한 똑딱이 카메라를 들고 와 기자입네 하고 있으면, 당장에 의심스러운 눈초리가 날아온다.
전문적인 장비가 주는 위압감이랄까, 권위랄까 하는 것은 생각보다 대단해서 소형 캠코더보다는 6mm 카메라가, 똑딱이보다는 DSLR 카메라와 반사판이 도움이 된다. 개선되어야 할 점이겠지만 아직까지 현실은 시궁창.(ㅠㅗㅠ)
그래서 작년 말에는 DSLR을 하나 장만할까 생각했다. 무료 사진 강좌도 찾아 다니고, 지인들을 통해 알아보기도 했다. 그런데 이거, 도저히 불가했다. 기본 100만 원이 그냥 넘어가는 바디와 렌즈들과 가방, 삼각대에 또 무슨무슨 이름도 복잡한 기타 장비들. 카메라는 일단 눈 뜨는 순간부터 돈덩어리랬다.
대학 다닌다고 서울에 나와 살며 등록금과 생활비로 연 2천만 원씩 꼬박꼬박 부모의 소득을 축내고 있던 나로선, 그 돈을 마련할 길도 없었고, 엄마한테 사달래기도 미안했다. 조금 아쉽지만 꼭 필요한가 싶기도 했고. 결국 포기하고 지금까지 내 알바비를 보태 산 30만 원 남짓의(이것도 사실 만만한 돈은 아니다) 똑딱이 한 대로 버티고 있다. 화각은 좁고 '가오'는 안 살지만 일상의 소소함들을 잡아내는 데 큰 불편은 없다.
'문화인'의 조건? 저는 이미 글렀어요DSLR 카메라를 포기하면서 생각한 건데, 정말 문화인 되기 힘들고, 취미생활 즐기기도 어려운 것 같다. 문화라는 게 죄다 너무 고급이 되어가고 있기 때문이다. 낭패! 사전적 정의는 모르겠다만 문화는 그냥 삶의 양식이고, 작은 낭만이고, 여유고, 인생의 즐거움이고, 그냥 그런 것 아닌가?
요즘 주류의 문화인이 되려면 무얼 갖춰야 하는지 생각해 보자. 일단 앞서 언급한, 기본 100만 원이 그냥 넘어가는 그런 카메라들을 한 두 대쯤은 가져야 한다. 여름마다 십 몇 만원을 오르내리는 값비싼 락 페스티벌에 가줘야 한다. 수만 원이 훌쩍 넘는, 화제의 뮤지컬과 연극 관람을 제 때 관람하는 것도 필수다.
주말에는 신사동 가로수길에서 2-3만원 하는 브런치를 먹으면서 시간을 보내고, 쇼핑은 도산파크 편집숍에서 한다. 명품으로 전신을 휘감지는 않더라도, 지갑이나 가방 정도는 신경써줘야 한다. 혼다나 할리데이비슨의 바이크도 장착 필요. 여름 휴가 때는 유럽이나 뉴욕으로 떠나서 유명 미술관들을 돌아다니며 여유를 즐기고 영감을 얻는다. 돌아올 때는 트렁크 가득 면세점 쇼핑도 잊지 않고. 아, 생각만 해도 숨이 막힌다. 이렇게라면, 난 그냥 문화인 안 할란다. 아니, 못한다.
비주류를 표방하거나 서브컬쳐(주변 계층의 하위문화)를 사랑하는 이라고 해도 상황은 특별히 낫지 않다. 아마 자본주의가 쳐놓은 미로에서 빠져나가는 게 쉽지 않아서 그렇겠지만, 안타까운 일이지만 말이다. 체 게바라가 그려진 스타벅스 컵을 본 적이 있는가? 자본은 자신을 부정하던 체 게바라조차 티셔츠에 그려서 팔아먹는다.
이렇게 비주류, 서브컬쳐라는 것도 결국 주류에 식상해진 사람들에게 던져지는 또 하나의 떡밥, 소비재가 되어버릴 뿐이라는 생각이 들어서, "이렇게 또 하나의 무기를 빼앗겨버리나" 하는 안타까움이 크다. 신촌도 처음에는 저렇게 흥청대지 않았고, 홍대도 저토록 세련되고 상업적이진 않았는데. 한 번 자본의 맛을 본 거리는 두번 다시 조용한 골목길이 되기는 어렵다. 너무 아깝다.
내 또래의 스물 몇 살 여대생이 한 달에 화장품값으로 40만 원을 지출한다는 잡지의 인터뷰(당시 내 자취방 월세보다 비싸다!)며, 겨울방학 때 미국으로 여행가서 호텔비와 쇼핑 등으로 근 천만원을 썼다는 잠실 사는 내 같은 과 동기며, 진품인지는 알 수 없었으나 열에 일고여덟은 구찌, 루이비통을 들고 다니더라는, 백화점 알바하던 내 친구의 증언 등 현실은 아찔하다. 빌어먹을.
솔직히 나도 엄청 근검절약하는 것은 아니다. 집이 부자는 아닐지라도 먹고 살 만은 하다. 먹고 싶은 거는 다 먹고, 사고 싶은 것도 웬만하면 다 산다. 그래도 "착한 가격"이라며 십몇만원짜리 옷을 당장 질러야 한다는 잡지에는, 그냥 헛웃음만 나온다. 적게는 수십, 많게는 수백만원대의 상품을 매달 소개하는 고급잡지의 편집장이 "솔직히 나도 내가 소개하는 물건들을 살 능력은 안 되지만, 언젠가를 위해서 눈을 높여 놓을 필요가 있지 않을까"라고 주장하는 것에 어이가 없기도 했다.
비주류라며, 스트리트 매거진이라며, 소개하는 상품들은 5만 원 짜리 티셔츠, 30만 원짜리 청바지인 모 잡지에 대해 화가 난다. 나는 비싼 DSLR 카메라도 하나 없고, 10만 원이 넘어가는 가방은 가져본 적도 없으며, 아마 평생 마이카를 몰 수 없을 거 같으니.
"우리 꼭 고급 모텔 가서 섹스해야 하나?"인터뷰집 <요새 젊은 것들>에서, 아마 한윤형이었나, 가난한 20대가 데이트 비용이 없어 연애를 못한다는 얘기를 담은 <한겨레21> 기사를 비판하며 "우리 꼭 고급 모텔 가서 섹스해야 하나?"라고 말했었다. 그 때는 무슨 말인지 잘 이해가 안 됐는데, 요즘 들어 현실파악 하고 나니 알겠더라.
예전에 나는, 지금은 학생이라도 나중에 돈 벌면 외제차도 사고, 명품도 사고, 호텔 같은 집에서 살고, 뭐 그럴 줄 알았다. 그래서 그런 것들을 미리 '연습'해야 한다고 생각했고 열심히 흉내냈고 눈으로라도 익혀두었다.
하지만 지금은, 내가 영영 그럴 수 없으리라는 걸 알아채 버렸고 그러고 싶지도 않아졌다. 그냥 좀 가난하게 살면 안되나? <녹색평론>의 김종철, 권정생 선생님도 늘 말씀하신 '자발적 가난'. 적당한 물질적 결핍은 다른 것들을 더 풍요하게 해준다.
나는 30만원짜리 똑딱이로, 100만원짜리 DSLR로는 결코 찍을 수 없었을 사진들을 찍고 있다. 짙게 선팅된 벤츠를 타고서는 느끼지 못했을 서늘한 바람, 햇볕, 가로수에서 떨어지는 잎새까지도 16만 원짜리 자전거를 타고 다니며 마음껏 음미하고 있다.
우리 꼭 할부 끊어 차 사고, 카드 긁어 명품 사고, 대출 받아 집 사야 하나? 그냥 좀 느리게 걷고, 옷은 동네 어귀 작은 가게서 가끔씩만 사고, 서울 밖으로도 좀 눈을 돌리면 안 되나?
양심적 물질거부자? 자기 궤도를 만드는 소행성!이미 시작돼버린 게임에서 개인이 벗어나기 힘들다는 걸 잘 안다. 벗어나고 싶어도 벗어날 수 없는 처지에 놓인 이들도 많기에, 내 이야기는 그저 '한가한 소리'일지도 모른다. 굳이 애써 구조를 탈피하라 종용하지 않겠다. 그냥, 내가 그래보니까 참 좋더라고, 그냥 자랑 좀 해보려고.
차나 명품이나 집 같은 걸로는 자랑 못하니까, 나의 이 행복한 자발적 곤궁이나 좀 자랑해 보려고. 근처에 백화점도 없고 영화관이나 고급 식당도 없지만, 나는 서울 한복판 노른자위 땅의 월세 35만 원짜리 옥탑방에서 아득바득 살 때보다 지금 여기 충청도 한 자락의 전원도시에서 가족과 얼굴 맞대고 책이나 읽으면서 한가롭게 지내는 편이 훨씬 더 좋다고.
'양심적 물질거부자'라는 표현을 써볼까? 솔직히 소비욕이 없는 건 아니기에 나를 이렇게 부른다면 좀 허세겠고, 얼마 전 블로그 이웃 한 분이 남겨주신 댓글을 가져와 본다.
"끊임없이 자기 궤도를 만드는 소행성이 되시길!"
황석영의 <개밥바라기별>에서 인용했다는 이 문구가 너무 좋아 끊임없이 되뇌고 있다. 자기 궤도를 만드는 소행성. 작고 불완전해도, 나에겐 나만의 궤도가 있다. 우주를 유리하는 우리 여행자들에겐, 모두 각자의 궤도가 있어야 한다. 반드시 그래야 한다.
덧붙이는 글 | 기자의 블로그에 썼던 글을 손질한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