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귀포시 대평포구에서 가세기 마을올레까지는 6.9km. 드디어 안덕계곡 속살을 보는 순간이었다. 제주올레 9코스의 절정은 안덕계곡이 아닐까. 암반 바닥 위로 유유히 흐르는 물, 그리고 병풍처럼 둘러쌓인 절벽. 계곡과 기암절벽의 어우러짐, 그곳이 하늘이 울고 땅이 진동하고 구름과 안개가 낀 지 7일 만에 큰산이 솟아나, 시냇물 암벽 사이를 굽이굽이 흐르는 치안치덕 안덕계곡이다.
그 길을 걷는 기분을 상상해 보았는가? 서귀포시 안독면 안덕계곡, 그곳은 바로 제주의 계곡에서 가장 아름다운 계곡으로 손꼽힌다. 특히 이 계곡은 추사 김정희와 정온이 제주에 유배와서 절경을 즐겼을 만치 아름다운 속살을 가진 계곡이다.
가축 냄새 피어나는 진모르 동산과는 달리 감산천 계곡 올레는 쇠소깎처럼 푸른 물 '소'를 이뤘다. 오름의 하나인 군산 북사면과 월라봉 서사면을 오르락내리락 하다 보니, 깎아지른 절벽 아래로 통하게 되었다. 계곡인가 싶더니 산 모퉁이, 산 모퉁이 돌아가면 또 다시 계곡이 보이는 올레길이었다.
'산에서 직접 물을 받았다'는 '산바다든' 물을 지나 청둥오리와 원앙새가 서식한다는 '오리소' 올레는 오름 등반로였다. 오르막길과 내리막길이 이어지는 올레는 발품을 파는 재미가 쏠쏠했다. 개울물 같은 하천을 지나면 가을 하늘처럼 맑은 물이 흐르는 암반의 하천이 이어졌으니까 말이다.
그 길을 걷다 보니 '장마나 우천 시 물이 불어나면 하천이 범람하지 않을까'하는 조바심이 생기게 된다. 따라서 제주올레 9코스를 걷게 되는 올레꾼들은 우천시나 태풍에 물이 불어나는 것을 조심해야 한다.
암반 위로 유유히 흐르는 '임금내'에서는 쉬어가지 않을 수가 없었다. 지난 겨울 계곡의 숲속에서 떨어진 후박나무며 조록나무, 구실잣 밤나무의 낙엽도 임금내 계곡에서 머물렀다. <추노>의 촬영지로도 잘 알려진 '대길이와 설화'가 쉬어간 곳이 이곳이 아닌가 싶었다. 암반 위에 누워 사랑을 틔우는 작업을 시도할 만큼 아름답고 시린 암반 위로 유유히 계곡물이 흘렀다. '유유자적'이란 말이 생각났다.
'뻥-' 뚫린 하늘을 제외하고는 사방이 닫혀진 공간이다. 그 공간은 방이라면 방이고, 화장실이라면 화장실이고, 카페라면 카페가 될 수 있는 공간이었다. 그렇다 보니 지나가는 나그네의 소매깃을 붙들기 마련이다. 지나가는 나그네는 물론 지나가는 구름도 쉬어가는 곳이 바로 임금내다.
둘이 걸으면 자연스럽게 손을 잡아주어야만 건널 수 있는 계곡의 징검다리, 안덕계곡 임금내 올레는 나그네들의 발걸음을 붙잡기에 충분했다. <추노>의 대길이와 설화0의 한 장면을 떠올렸다.
조면암 계곡 양쪽에 병풍처럼 둘러 쌓인 절벽, 절벽에 공존하는 식생대, 암반 위로 흐르는 맑은 물, 추사 김정희와 정온이 유배되어 후학을 가르치고 절경을 즐겼을 만치 아름다운 계곡의 속살이었다.
후박나무·조록나무·가시나무·구실잣밤나무·붉가시나무·참식나무 등이 울창하고 숲속에는 남오미자를 비롯해서 백량금, 자고, 담팔수, 상사화 등 난대림이 상생하며 사는 숲속에서 산새소리가 요란했다. 자연은 늘 인간과 어우러질 때 그 묘미가 더한다.
안덕계곡을 빠져 나오자 귤 농장길, 지나온 안덕계곡 속살은 자취를 감취고 숲만 무성하다. 임항도로에 접어들었다. 우뚝 솟은 산방산이 신화의 세계 같았다. 돌담안에서는 겨우내 이겨낸 파란 보리가 쑥-쑥 자라고 있었다.
대평포구에서 출발한 지 2시간이 지난 오후 4시 20분, 화순항 화순선주협회 사무실에 도착할 수 있었다. 임금내 암반 위를 선비처럼 걸었기 때문일까. 9코스 올레는 짧지만 가슴설레게 하는 길이었다.
선비들이 걸었던 암반 위 계곡이 휴식처였다면 화순항은 은신처라고나 할까. 하오의 햇빛이 화순항에 내리쬐었다. 소금밭 갈대가 누렇게 익어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