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x²-16|x|y+17y²=225미지수 X만 나와도, 만 단위가 넘어가는 숫자만 봐도 머리부터 아파오는데, 웬 뜬금없는 복잡한 방정식? 이 복잡하고 무시무시한 방정식은 수학이라면 치를 떠는 이들에게 공포심부터 조장하는 암호가 아니라 '사랑의 방정식'이다. 사랑의 방정식은커녕 '방정식'이 무엇인지 몰라도 좋다. 그냥 쉬엄쉬엄 보고만 지나 가시라. 그렇게 난해하고 메마른 수학식은 아닐 테니.
이 사랑의 방정식은 지난 2004년 방송된 SBS드라마 <형수님은 열아홉>에서 수학영재인 승재(윤계상 분)가 유민(정다빈 분)에게 사랑을 고백하는 방정식으로 소개되기도 했다. 아마도 이 장면은 어렴풋이 기억이 나지만 '방정식'이라는 특수성(?) 때문에 잊고 있었으리라. 아니, 별로 기억하고 싶지 않았으리라.
그래프를 그려보면 하트 모양이 나와서 일명 '사랑의 방정식'이라고 하는데, 이 방정식의 그래프를 간단히 소개해 보면 일단 17x²-16xy+17y²=225의 그래프를 그린 후 y축으로 잘라서 대칭시키면 그래프의 결과물은 예쁜 하트 모양이 된다. 이처럼 하트가 만들어지는 사랑의 방정식은 이 외에도 비슷한 것이 여러가지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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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결과물만 하트모양처럼 예쁘게 나왔다고 해서 이렇게 복잡하기 짝이 없는 방정식을 감히 아름답다고 할 수 있을까?
백제 개루왕 때 도미(都彌)의 부인은, 빼어난 미인에 절개까지 굳기로 유명하다는 전설이 <삼국사기>에 전해 내려온다. 또, 신라 때의 미실(美室)은 신라 진흥왕~진평왕까지 3대를 쥐고 흔든 미모를 자랑했다고 <화랑세기>는 전한다. 이밖에 어우동, 장녹수, 황진이로 이어지는 절세미인들은 모두 사람의 넋을 나가게 하는 빼어난 여인들이었다고 전한다.
하지만 요즘의 기준에 놓고 볼 때 그녀들이 천하 미인의 조건을 모두 갖추고 있었다고 할 수 있을까? 최소한 요즘에 말하는 미인이라면 황정음, 신세경쯤의 기준은 갖춰야만 하리라.
시대와 사회를 초월한 아름다움의 보편적 기준이 과연 있을까. 적어도 수학적으로는 언제 어디에서나 통하는 보편적 기준을 말할 수 있다. '대칭성'이 그 중 하나이다. 대칭? 이것이 아름다움과 무슨 관련이 있을까 하며 의아해 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아름다움의 밑바탕에 '대칭성'이 깔려 있다고 전제한다면, '수학'은 정말 아름다운 것이란 걸 아는지 모르는지.
과학적 관점에서 '아름다움'이란 개념은 물리학보다는 수학에 더욱 가까울지도 모른다. 실제로 아름다움을 구성하는 요소인 대칭(Symmetry)은 수학에서 발달되었다. '사랑의 방정식'을 예로 든 것처럼, 수학의 대칭 개념은 기하학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방정식을 풀다 발견한 개념이다. 오히려 대칭과는 무관해 보이는 대수(algebra)에서 나온 것으로, 대칭의 발전 과정은 방정식의 해 찾기의 과정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3000여 년에 걸친 대칭의 역사, '진리는 아름답다'라는 시구로 승화머리 아프게 수학적으로 접근하지 않더라도 대칭성은 자연에서 쉽게 찾을 수 있다. 바다 속의 생물들은 급격한 온도 변화가 없는 환경에서 부유하기 위해 아름다운 구형을 이루고 모든 방향으로 대칭성을 가지고 있다. 또, 꽃에서는 좌우 대칭이 많이 나타나는데 이유는 마치 열쇠와 자물쇠의 관계처럼 수분매개자와 궁합이 잘 맞으며 특별히 제한된 동물만을 수분 매개자로 받아들이기 위해서다.
영국수학자이자 파국(Catastrophe) 이론의 개척자인 이언 스튜어트(동명이인으로 콜로라도 로키스의 내야수로 활동하는 이언 스튜어트도 그래서 야구실력이 뛰어난 것은 아닐까?).
대칭은 자기닮음이다. 이를 확장하면 '반복적 자기닮음'이다. 인간은 대칭을 이룬 건물을 아름답다 느끼며, 자기 자신을 닮은 인간을 사랑한다. 인간의 유전자 속에는 '대칭은 아름답다'는 명제가 각인되어 있는지도 모른다. - 본문 중에서이언 스튜어트는 책 <아름다움은 왜 진리인가>를 통해 좌절한 의사와 병약한 천재, 불운한 혁명가, 탁월한 교수, 특이한 수학자들의 기묘하고 흥미로운 이야기와 함께 '대칭'이 어떻게 오늘날 가장 중요한 개념 가운데 하나가 되었는지를 한편의 청춘소설을 읽는 것처럼 재미있게 풀어 놓는다.
정치, 역사, 음모가 화려하게 어우러진, 읽는 즐거움을 주는 수학책특히, 일상의 여러 상황을 수학 관련성으로 풀어, 수학의 '수'자만 들어도 도망가고 싶은 사람도 충분히 접근할 수 있을 만큼 흥미롭다. 때때로 방정식, 차원, 입방배적(주어진 정육면체의 두배 부피를 갖는 정육면체 작도하기) 등 수학용어가 등장하고, 군(群, Group)이론과 초월수, 페르마 소수, 끈 이론 등 전문개념도 등장하지만, 걱정거리가 되지는 않는다. 그냥 읽어 내려가기만 하면 앞뒤 상황을 통해 충분히 이해가 간다. 낯선 용어들이 흥미진진한 에피소드와 수학의 아름다움을 이해하는 데 별다른 걸림돌이 되지 않음이 신기할 정도이다.
수학적 아름다움은 매우 추상적인 아름다움이다. 훌륭한 음악이나 위대한 시와 마찬가지로, 그 아름다움은 감각이 아닌 마음에 의해서 지각된다. 그것은 추상적이고 상징적인 사고를 할 수 있는 뇌에 의해서만 지각될 수 있다. 위대한 영국의 철학자 버트런드 러셀조차 수학의 아름다움은 '차가움과 간결함'이라고 규정한다. 사실 수학자들을 애초에 수학이란 학문으로 이끈 것은 바로 이 냉정하고 간결한 아름다움이다.
역시 저자는 '진정한 수학의 아름다움 찾기'로 흥미를 유도하지만, '아름다움은 왜 진리인가'에 대한 해답은 숙제로 남긴 채 마무리한다. '5차 방정식은 근호만 써서는 풀수 없다'는 증명을 놓고 수백 페이지에 걸친 눈물겨운 노력을 했던 수학자들. 결과는 둘째치고라도 증명을 밝히기 위한 그 노력이 아름다움이었고 진리 아니었을까? 우마르, 레오나르드, 카르다노, 피오르, 가우스, 피아치, 갈루아 등으로 이어지는 수학자들의 다채로운 생애와 일화들은 아름다움을 이해하기 위해 곁들여진 양념이다.
방정식이 하나 들어갈 때마다 책 판매량이 반으로 감소한다는 것은 과학 서적계의 일반 통념으로 알려져 있다. 이 통념이 사실이라면 정말 유감스럽다. 방정식이 아니었으면 대칭의 아름다움과 수학의 아름다움을 어찌 이처럼 기묘하게 표현할 수 있었을 것인가?
아름다움은 진리이고, 진리는 아름다움일까? 그 둘이 긴밀하게 연관된 까닭은 아마도 우리의 마음이 그 둘에 유사하게 반응하기 때문일지도 모른다.(중략) 대칭이 물리학, 혹은 실질적으로 모든 과학에서 가지는 의미는 아직까지도 비교적 완전하게 밝혀지지 않았다. 이해되지 않는 일들이 아직도 많다. 그러나 우리는 대칭군이 미개척지로 나아가는 길임을 안다. 적어도 강력한 수학적 개념이 나타나기 전까지는 말이다. 물리학에서, 아름다움이 곧 진리를 보장하지는 않지만 진리를 찾는데 도움이 된다. 수학에서 아름다움은 반드시 참이다. 참이 아닌 모든 것은 추하기 때문이다. - 본문 중에서(416p)'대칭'을 알고나면 세상이 아름답다. 호랑나비 날개의 대칭을 보며, 봄을 알리는 예쁜 들꽃 꽃잎의 대칭을 보며 수학의 아름다움에 빠져보자. 세속의 가치가 지배하는 이 세상에 아직 아름다움과 진리라는 단어에 공명을 일으킬 수 있는 영혼을 가진 당신, 벌써 호기심이 오지 않는가? 수학의 아름다움에 새롭게 눈뜨고 있는 당신, 꽃보다 더 아름답다!
덧붙이는 글 | -아름다움은 왜 진리인가/이언 스튜어트 지음ㆍ안재권 안기연 옮김/승산 발행ㆍ424쪽ㆍ
<목차>1. 바빌론의 서기관들 2. 간판 스타 3. 페르시아의 시인 4. 도박하는 수학자 5. 발자국을 감추는 여우 6. 좌절한 의사와 병약한 천재 7. 불운한 혁명가 8. 평범한 기술자이자 탁월한 교수 9. 공공시설물에 낙서한 취객 10. 군인 지망생과 병약한 책벌레 11. 특허국 사무관 12. 양자 5중주 13. 5차원에 사는 사나이 14. 정치부 기자 15. 우왕좌왕하는 수학자들 16. 진리와 아름다움을 탐구하는 사람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