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 <열린음악회>(프로듀서 권영태)가 지난 27일 이병철 전 삼성 회장의 탄생 100주년을 기념하는 음악회를 열어 물의를 빚고 있다. 지난 1월말 한국전력의 협찬으로 '원전 수출 기념' <열린음악회>를 열어 '관제방송'이란 비판을 받은 지 두 달도 채 되지 않아 이번에는 일개 기업 창업주의 '출생'을 기념하는 음악회를 연 것이다. 이 같은 사실이 알려지자 시청자들은 '해당방송 저지'와 '수신료 거부'까지 거론하며, KBS를 거세게 질타하고 나섰다.
이번 사건은 몰락하는 공영방송 KBS의 현주소를 그대로 보여준다. 김인규 낙하산 사장 취임 후 KBS는 부적절한 협찬 방송으로 계속 문제를 일으켜왔다. KBS 공방위 보고서에 따르면, 2009년 정부와 공공기관의 협찬 실적만 142억원에 달한다.
심각한 문제는 단순 협찬에 그치는 게 아니라 프로그램 내용에도 개입했다는 점이다. 한전으로부터 1억원을 받고 제작된 '원전 수출 기념' <열린음악회>를 비롯해, 법무부가 10억여원을 협찬해 정부 캠페인를 홍보한 <미녀들의 수다 2>, 농식품부의 지원을 받아 미국산 쇠고기를 홍보한 <과학카페> 등 KBS를 정권의 홍보수단으로 활용한 사례가 반복됐다.
이처럼 김인규 체제는 정치권력과의 유착을 통해 공영방송을 정권의 홍보도구로 전락시켜왔고, 그 결과 자본권력마저 공영방송을 기업 홍보수단 쯤으로 여기는 지경에 이른 것이다.
이번 사건은 또한 '언론과 삼성'의 관계를 돌아보게 한다. 얼마 전 김용철 전 변호사의 신간 <삼성을 생각한다>의 일간지 광고가 '원천봉쇄'되고 책 소개 기사가 '삭제'되는 사건이 발생했다. 대신 비슷한 시기 주요 언론지면은 호암 100주년을 기념하는 신세계의 광고로 채워졌고, 이병철 전 회장을 미화하는 특집기사가 쏟아졌다. 언론이란 공론장에서 삼성이 누리고 있는 특별한 지위를 보여주는 사례다.
이번 사건도 마찬가지다. 신세계 측은 이번 음악회가 "호암의 프로모션 차원에서 진행한 것"이라고 밝혔다. 공영방송 프로그램을 자사 창업주 프로모션(홍보)에 활용할 수 있는 광고지면쯤으로 여기는 매우 위험한 언론관이다. 그런데도 KBS는 아무 거리낌 없이 3억원을 받고 공영방송을 팔았다. 삼성이 아니었다면 불가능했고, 김인규 체제였기에 가능한 '경언유착'의 합작품이 만들어낸 결과물이다. 몰락하는 공영방송의 현재와 재벌방송이 가져올 우울한 미래를 동시에 보여주는 상징적인 사건이 아닐 수 없다.
KBS는 이번 사태의 모든 책임을 협찬사인 신세계 측에 떠넘기고 있다. 또한 "실제 방송에서는 호암관련 내용은 일절 포함되지 않을 것"이라며 별 문제가 없다는 투다. 그러나 초대권에 협찬처의 문구가 삽입되었느니 마느니, 호암 관련 내용이 방송에 포함되느니 마느니 하는 건 문제의 본질이 아니다. 'KBS가 삼성사내방송인가?', '이건희 사면 기념 음악회도 부탁한다', '이럴 거면 삼성에서 수신료를 받으라'는 시청자의 조롱과 분노를 보고도 부끄럽지 않다면 더는 기대할 것도 없다. 이러고도 공영방송 운운할 수 있겠는가?
2010년 3월 30일
언론개혁시민연대 (언론연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