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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해군 초계함 '천안함' 침몰 나흘째인 29일 오후 경기도 평택 해군 제2함대 내 체육관 앞에서 군인들이 합동분향소 설치 작업을 시작하자, 실종자 가족들이 "구조하는 척하며 장례식장 준비한다" "니들이 죽은 거 봤냐"고 거세게 항의하며 천막을 부쉈다. 군은 실종자 46명의 가족에게 배정할 천막 46개와 군에서 사용할 천막 4개 등 총 50개를 설치했었다. (휴대폰 #5505 엄지뉴스 사진)
해군 초계함 '천안함' 침몰 나흘째인 29일 오후 경기도 평택 해군 제2함대 내 체육관 앞에서 군인들이 합동분향소 설치 작업을 시작하자, 실종자 가족들이 "구조하는 척하며 장례식장 준비한다" "니들이 죽은 거 봤냐"고 거세게 항의하며 천막을 부쉈다. 군은 실종자 46명의 가족에게 배정할 천막 46개와 군에서 사용할 천막 4개 등 총 50개를 설치했었다. (휴대폰 #5505 엄지뉴스 사진) ⓒ 박상규

 

한 장의 사진이 가슴을 때린다. 한 노인이 폐허가 된 천막들 사이에 넋을 놓고 앉아 있다. 무너진 천막들을 부수는데 이 노인도 작은 힘을 보탰다. 해군 실종자 46명의 가족들과 함께 말이다. 천막 50개는 순식간에 무너졌다.

 

'생존의 69시간'이 거의 끝나갈 무렵, 그러니까 서해의 낙조가 평택 해군 2함대 사령부를 붉게 적시기 직전인 지난 29일 벌어진 일이다. 이날 해군은 발빠르게 장례식장을 만들었다. 저 노인이 허문 건 바로 아들의 장례식장이었다.  

 

"이 천하의 나쁜 놈들! 실종자는 못 찾으면서 장례식은 참 빨리도 준비하네! 내 아들이 살았는지, 죽었는지 지들이 어떻게 알어!"

 

이 말을 쏟아내며 노인은 얼마 동안 자리를 뜨지 않았다. 아직 차가운 3월의 바람이 노인을 감쌌다. 캄캄한 서해 바다로 침몰한 배 안에 아직 아들이 살아있다고 믿고 있는 노인이 장례식장을 부수는 건 자연스런 행동이다. 노인은 그렇게 함으로써 아들이 실종된 이 현실을 부숴버리고 싶었을 것이다.

 

발빠르게 장례식장을 만드는 군과 이를 부숴버린 실종자 가족들. 이는 천안함 침몰을 대하는 대한민국 군과 실종자 가족들 태도의 극명한 차이를 대변한다.

 

발빠르게 장례식장 만드는 군, "살아있다" 믿는 가족들

 

가족들은 26일 사건 발생 직후부터 실종자들에 대한 생존의 믿음을 버리지 않았다. 이런 믿음의 바탕에는 차마 말로 다 표현할 수 없는 가족에 대한 애정이 있다. 또한 그렇게 믿는 게 아직 생사가 확인 안 된 '실종자'에 대한 예의다.

 

우리가 종종 목격하는 재난 현장의 '기적의 생환'은 대개 이런 믿음과 인간에 대한 예의 속에서 이뤄졌다. 살아있다는 믿음과 살려야 한다는 예의가 없는 곳에서 기적은 일어나지 않는다.

 

그렇다면 대한민국 군은 어땠을까? 사고 발생 후부터 진행된 군의 대응을 보면, 군은 처음부터 실종 군인들의 생존 가능성을 매우 낮게 본 듯하다. 

 

하지만 '실종자들이 살아 있다'는 강한 믿음에서 비롯된 행동과 '이미 사망했을 것'이란 추정에 따른 행동은 크게 다를 수밖에 없다.   

 

지금까지 청와대와 국방부 그리고 해군 2함대 사령부는 늘 똑같은 말을 반복했다. 실종자 구조가 우선이고, 군은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그리고 군 통수권자인 이명박 대통령은 "초동 대처를 잘해 큰 피해를 막았다"고 말했다.

 

"살아있다" 말 못한 군, 그 안에 의혹의 실마리 있다

 

 27일 오후 평택 해군 제2함대 사령부에서 침몰된 초계함 '천안함' 함장 최원일 중령이 실종자 가족 앞에서 브리핑하고 있다. 최 함장은 "살아나와서 죄송하다"고 실종자 가족들에게 사과했다.(사진은 #5505 엄지뉴스로 휴대전화 4987님이 보내주셨습니다.)
27일 오후 평택 해군 제2함대 사령부에서 침몰된 초계함 '천안함' 함장 최원일 중령이 실종자 가족 앞에서 브리핑하고 있다. 최 함장은 "살아나와서 죄송하다"고 실종자 가족들에게 사과했다.(사진은 #5505 엄지뉴스로 휴대전화 4987님이 보내주셨습니다.) ⓒ 엄지뉴스

그렇다면 군 통수권자가 치하한 군의 대처를 하나하나 따져보자. 지난 27일 오후 생존한 최원일 함장은 실종자 가족들 앞에 섰다. 그는 가족들에게 자신이 느낀 사고 경위를 설명했다. 한 실종된 군인의 어머니가 절규하듯 최 함장에게 물었다.

 

"함장님, 지금 내 아들이 살아 있다고 보십니까?"

"……."

"대답 좀 해보세요! 내 아들이 살아 있을 가능성이 있다고 보십니까?"

"……."

 

계속된 묵묵부답. 결국 이 모친은 "제발 살아 있을 가능성이 있다고 말해줘!"라며 "내 살점이 떨어져 나가는 것 같아 견딜 수 없다"고 울부짖었다. 함장은 뒤늦게 "그렇게 믿고 싶다"고 말했다. 이날 수많은 군 고위 관계자들이 현장에 있었지만 아무도 "살아있을 가능성이 있다"고 말하지 못했다.

 

그럼 '생존의 69시간' 발언은 어떻게 나왔을까? 국방부 공식 발표였을까? 아니다. 해군 2함대 사령부 관계자가 27일 자정께 "생존 가능성을 말해 달라"는 가족들의 계속된 요구에 실종자들이 밀폐된 공간에 있을 때를 가정해 이론적으로 계산해 69시간을 말했다. 

 

국방부가 공식 발표하지 않았는데도, 이 발언이 먼저 언론을 타면서 69시간은 군의 공식적인 생존 가능 시간이 돼버렸다. 군이 처음부터 실종자들의 생존 가능성에 무게를 뒀다면 '생존의 69시간'은 사고 직후 국방부에서 계산 돼 발표됐을 것이다.

 

그랬다면 음파탐지기 '소나'가 장착된 웅진함이 사고 직후 10시간이나 지난 뒤 진해 쪽에서 출발하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그리고 "초기 대응을 잘 했다"는 군보다 어선이 먼저 함미를 발견하는 황당한 일도 벌어지지 않았을 것이다.

 

실종자 가족들의 "대한민국 바다는 어부가 지키느냐, 어떻게 최선을 다하고 있다면서 함미를 어부가 먼저 찾을 수가 있느냐"는 한탄은 괜한 게 아니다.

 

또 군은 입으로는 계속 "실종자 구출이 우선이고, 구조에 최선을 다하고 있다"면서도 사건 발생 바로 다음날 합동분향소 설치와 영결식을 준비하기로 내부 결정을 내렸다. 이는 국방부가 27일 오후 국회 국방위원회에 제출한 현안 보고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늑장 대응과 어선이 먼저 찾은 함미, 그리고 이와는 너무 대비되는 빠른 장례식 준비. 이런 일련의 과정은 결국 군이 '실종자들은 모두 사망했을 것'이란 결론에서 나온 행위가 아닐까? 

 

왜 믿지 못하냐고? 군이 자초한 일

 

 백령도 부근에서 침몰한 해군 초계함 '천안함' 실종자 가족들이 모여 있는 경기도 평택 해군 2함대에 28일 오후 김태영 국방부장관이 방문해서 면담을 가지는 도중 실종자 가족들이 "민간전문가를 구조작업에 빨리 투입해달라" "침몰한 선박을 몇일 지나도록 왜 못찾나" "우리 아들 좀 찾아달라"고 요청하고 있다.
백령도 부근에서 침몰한 해군 초계함 '천안함' 실종자 가족들이 모여 있는 경기도 평택 해군 2함대에 28일 오후 김태영 국방부장관이 방문해서 면담을 가지는 도중 실종자 가족들이 "민간전문가를 구조작업에 빨리 투입해달라" "침몰한 선박을 몇일 지나도록 왜 못찾나" "우리 아들 좀 찾아달라"고 요청하고 있다. ⓒ 권우성

김태영 국방장관은 28일 해군 2함대 사령부에서 실종자 가족들을 만나 "나도 여러분과 똑같이 마음이 아프다"고 말했다. 하지만 가족들은 이 말을 진심으로 받아들이지 않았다. 오히려 가족들은 "(높은 지위에 있는) 당신들이 이렇게 가족 잃어 봤냐"고 따졌다.

 

실종자 가족들과 군의 너무나 큰 인식 차이. 이 차이는 실종자들이 군함을 타고 누볐을 바다 보다 크고 깊은 것이다. 이 인식 차이가 좁혀지지 않는 한 "왜 우리를 믿지 않느냐"는 군의 하소연은 영원히 핑계에 그칠 것이다. 

 

군이 불신을 받은 건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국군 창설 이후 수없이 벌어진 '군 의문사'가 말해주듯 군에 대한 사람들의 불신은 태평양만큼 깊다. 그리고 이 모든 건, 군이 자초한 면이 크다. 

 

밑바닥에서 박박 기었을 부사관과 사병 46명은 지금 50cm 앞도 보이지 않는 깊은 바다에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아직 생존 여부를 아무도 모른다. 하지만 이들은 자신들이 충성했던 군의 마음 속에서 이미 죽임을 당했던 것인지도 모른다.


#천안함 침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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