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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대 말까지 인천에서 중·고등학교를 다녔다면 한 번쯤 배다리 지역의 헌책방에 들러봤을 것이다. 며칠 전 만난 후배 역시 고등학교 시절 오락실에서 가방을 잃어버리고 교과서를 사러 배다리 헌책방을 찾은 기억을 꺼냈다.

 

'배다리'. 인천 시민에게는 향수를 자아내는 고향같은 곳이다. 이 명칭은 100여 년 전 인천항이 열릴 때만 해도 이 지역에 배가 들어왔다고 해서 붙은 것이다. 현재 인천시 동구 금창동의 일부가 여기에 해당된다. 그런데 몇 해 전부터 이곳에 여러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 민운기(41) 씨는 배다리 생활문화공동체 '띠앗'의 실행위원장이자 공동체문화운동 단체인 스페이스 빔의 대표를 맡고 있다. 그를 만나 배다리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고향에 정착하다

 

 공동체 문화운동단체 '스페이스 빔' 사무실 앞에 선 민운기 씨. 문 오른쪽에 '띠앗'의 로고가 있다.
공동체 문화운동단체 '스페이스 빔' 사무실 앞에 선 민운기 씨. 문 오른쪽에 '띠앗'의 로고가 있다. ⓒ 노동세상

2007년, 주민들의 폭로로 인천시가 배다리를 관통하는 산업도로를 건설하려는 사실이 드러났다. 주민들은 바로 '중동구 관통 산업도로 반대를 위한 주민대책위'와 '배다리를 지키는 인천시민모임'등의 단체를 꾸렸다. 회원들은 감사를 청구하거나 일방적 공청회를 막아내고 집회를 벌이는 등 배다리를 지켜  왔다. 민 대표는 이 과정에서 배다리 주민이 되었다.

 

"당시 인천지역 10곳을 선정해서 한 지역에서 이틀 또는 닷새씩 텐트를 치고 머물면서 도시를 몸소 체험하는 '공공미술 프로젝트'를 하고 있었어요. 배다리가 세 번째였죠. 송도 청라지구와 배다리를 잇는 산업도로 공사가 한창이던 때였는데, 도심에 뻘건 흙이  파헤쳐져 있는 것이 무척 처참했습니다."

 

공공미술이란 미술을 전시관에서 공공장소인 도시로 옮겨와 주민들에게 미술 경험을 제공하고 삶의 질을 높이는 공익적 예술 활동이다. 공공미술은 공간을 사회적·문화적·정치적 소통의 장으로 생각하고, 행동하는 예술가의 역할을 강조한다. 공동체 속에 들어가 주민들의 참여를 이끌어 내고 함께 다양한 예술 활동을 하면서, 예술과 주민들의 삶이 관계 맺도록 하는 것이다. 이를 통해 주민들로 하여금 동네에 대한 애정을 키우고, 동네의 환경과 특성을 새롭게 살리면서 지속가능한 도시를 만드는 것이다. 

 

민 대표는 산업도로 공사를 방관할 수 없었다. 동네가 두 동강 난 모습에도 충격을 받았지만 더 견디기 어려운 것은 효율, 경제적 이익을 앞세워 사람들의 마음을 갈라놓는 것이었다.

 

"진보적인 활동을 한다면서도 이런 상황이 닥치기까지 난 뭘 했는가 하는 반성을 하게 됐습니다. 그래서 아예 배다리에 들어와 살기로 했죠."

 

배다리의 과거

 

 배다리 곳곳에 그려진 벽화
배다리 곳곳에 그려진 벽화 ⓒ 노동세상

"일제시대와 개항기에는 자유공원 일대가 인천의 중심이었습니다. 그러다 외세의 점령 탓에 그 쪽에 살던 조선 사람들이 쫓겨 오면서 지금의 배다리 지역이 형성됐습니다. 역사적 애환과 함께 어려운 조건에서도 희망을 품은 서민들의 발자취가 서린 곳이죠."

 

이곳에는 옛 서민들의 주택이 많고, 건물마다 건축 시기가 다르다. 전문가들은 건축박물관이라 칭하기도 한다. 얼마 전 도코모모 코리아(Do, co, mo, mo-korea 한국근대건축보존회)가 주최하는 2010년 건축설계 공모대상으로 배다리가 최종 결정되었다. 계획적으로 꾸며진 대도시와 달리, 모든 것이 자신의 존재 이유를 갖고 자연스럽게 어우러져 있는 모습이 높은 점수를 얻은 이유가 아닐까.

 

"사람이 공간의 주도권을 갖고 있는 것이 배다리의 매력입니다. 집 앞 길거리에 화분을 내놓고 키우는 건 사실 불법 점거죠. 그래도 자연스럽게 화분을 함께 가꾸는 게 이곳만의 여유입니다."

 

이곳에는 100여년이 지난 창영교회 여선교사 기숙사와 한국 최초의 사립학교인 영화학교(현 영화초등학교)의 서양식 건물이 지금도 보존되어 있다. 또한 민족 자본이 바탕이 되어 건립한 창영학교(현 창영초등학교)는 인천에서 3.1운동의 불씨를 지핀 곳이다. 당시 창영학교 3,4학년 학생들이 3월6일 인천공립상업학교(현 인천고등학교) 학생들과 '대한독립만세'를 외치며 시가행진을 벌였다. 그 기념비가 창영초등학교 운동장에 세워져 있다. 이 세 건물은 인천시 지방문화재로 등록되어 있다. 일제 치하에서도 교육에 대한 열정이 남달랐던 선조들의 유물이다.

 

한국전쟁 이후엔 미군부대에서 나온 책자들을 판매하면서 책방거리가 형성되었다. 40개까지 있었던 책방은 현재 4개만 남아 있다.

 

배다리의 현재

 

 스페이스빔 앞에 설치된 배다리처럼 소박하고 친근한 로봇 조형물
스페이스빔 앞에 설치된 배다리처럼 소박하고 친근한 로봇 조형물 ⓒ 노동세상

배다리의 가치는 추억만이 아니다. 도시의 미래를 모색하는 데도 있다. "주민들의 살아온 경험과 인생의 교훈이 잘 발휘되고 서로 주고받는 관계를 형성하는 것이 진정한 예술이라고 생각합니다." 2009년 9월, 스페이스 빔이 주관한 '가가호호(家街呼好)' 사업이 정부의 <생할문화공동체 활성화 시범사업>에 채택되면서 다양한 시험적 공동체 문화 사업을 진행했다. 주택(家)이나 거리(街)에서 서로를 불러내는(呼)가운데 상호 이해의 폭을 넓히고 실생활에 보탬이 될 수 있도록 해 모두가 좋아(好)하는 동네를 만들자는 것이다. 마을에 대한 자긍심을 높이고 '더불어 삶'을 이어가고자 하는 사업이다.

 

재활용품으로 새 물품을 만들어 내는 '되살림 교실', 목공교실 등 다양한 프로그램 중 가장 사랑받은 것은 상가 벽화 그리기였다. 삭막한 가게 셔터에 상가에 맞는 다양한 이미지를 그려 넣은 활동이다. 황량한 공터에는 텃밭을 가꿨다. 상추, 토마토, 고구마, 감자 등을 수확해 나눠 갖고, 함께 김장을 담그면서 주민들은 관계를 돈독히 다졌다. 죽어가던 동네에 생활문화운동의 불씨가 지펴진 것이다.

    

지역통화 '띠앗'

 

배다리 생활문화공동체의 출발은 지역통화인 '띠앗'이다. 스페이스 빔은 '미술봉사'를 넘어 주민들의 재능을 나누자는 취지로 지역통화를 만들었다.'띠앗'은 형제나 자매 사이의 우애심을 뜻하는 순우리말이다. 가진 것이 없어도 서로 돕고 나누는, 사람 냄새 물씬 나는 동네를 만들 수 있다는 믿음에서 출발했다.

 

'띠앗'의 화폐단위는 <품>이다. 회원으로 가입하면 실제 화폐 1,000원의 가치를 지닌 100품을 준다. 회원들에게 도움을 요청하고 품을 주거나 도움을 준 후 품을 받을 수 있다. 자신이 가진 갖가지 능력과 재주, 물건들을 필요로 하는 사람에게 제공하고 자신 역시 제공받을 수 있는 일종의 '다자간 품앗이'다. 예를 들면 30대 직장 여성은 아이들의 독서지도 능력을 나눠주고, 집수리를 도움 받을 수 있다. 한 회원은 '누군가에게 필요한 존재가 될 수 있고, 또한 서로가 무척 소중한 존재라는 걸 배울 수 있는 드물고도 좋은 기회'라고 소감을 밝혔다.

 

배다리의 미래

 

민 대표의 고향은 강원도 영월이다.

 

"시골과 도시 생활을 함께 경험한 게 활동에 많은 도움이 됐죠. 기존 미술의 관습을 탈피해서 다른 길을 체험하고 싶었습니다. 내가 사는 인천 지역사회에 대한 관심을 토대로, 예술이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 고민하다 지역문제에 직접 개입해 실천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이러한 가치관은 그를 풍찬노숙하는 거리 예술가로 만들었다.

 

"산업도로를 막는 건 지역을 파괴하는 신자유주의 논리와의 싸움입니다. 나아가 인간과 자연이 공존하는 도시공동체를 만들어 나가는 것입니다."

 

<배다리를 가꾸는 인천시민모임>은 지난 9월18일부터 한 달간 <배다리 책방거리 보존 및 에코뮤지엄(역사문화마을) 조성을 위한 '배다리 역사·문화지구' 지정 촉구 시민서명운동>을 벌였다. 6천여 명의 서명을 받았고 이를 인천시에 제안했다. 자연과 사회, 인간을 유기적인 관계로 인식하고 과거·현재·미래를 통합적으로 바라보며 지역의 역사 문화 유산을 보존하자는 취지다.

 

"에코뮤지엄은 공간, 공동체, 생활경제 세 가지 영역으로 나누어 볼 수 있습니다."라고 민 대표는 설명했다. 공간적 으로는 역사가 깃든 장소에 표지석을 세우고, 각종 문화재 건물은 박물관으로 꾸미고, 책방 골목 안 빈 점포들은 북카페 등의 소통 공간으로 바꾸고, 주택과 건물과 골목길은 보다 넉넉하고 아기자기하게 만든다는 것이다. 공동체 영역에서는 '더불어 살며 열린 동네'를 만들고자 한다. 주민 참여 강좌나 프로그램을 개발해 주민들의 인문적 소양을 키우면서 그들의 삶의 지혜를 끌어내려는 것이다.   

 

생활 측면으로는 자본의 논리를 벗어나 재정 자립 기반을 만드는 것이다. 배다리 일대의 공터나 텃밭, 건물 옥상의 화분 등을 이용해 소규모 도시농업을 진행하고자 한다. 물론 모두 당장 추진되는 것은 아니다. 더 많은 지혜를 모아야 할 단계다. 

 

이처럼 배다리 주민과 공동체문화 운동을 벌이는 이들은 함께 배다리를 지켜나가며 이곳을 인천의 새로운 문화 근거지로 되살리는 가능성을 만들고 있었다.

 

만만한 로봇과 배다리

 

스페이스 빔 사무실 앞에는 큰 로봇이 서 있다. 한 신진작가의 작품인데, 초능력을 발휘한다는 로봇이 덩치만 크고 만만해 보이는 게 친숙한 느낌이다. 세련되지 않고 엉성하지만 그 느낌 자체로 가치 있고, 이곳에 꼭 있어야 할 것만 같다. 마치 배다리와 같다.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월간 <노동세상> 3월호(www.laborworld.co.kr)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배다리#띠앗#민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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