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벚꽃 작년에 핀 그 자리에 꽃이 다시 피었습니다. 저 꽃이 피려고 아이들이 그렇게 아팠나 봅니다.
벚꽃작년에 핀 그 자리에 꽃이 다시 피었습니다. 저 꽃이 피려고 아이들이 그렇게 아팠나 봅니다. ⓒ 안준철

꽃샘추위 때문이었는지 지난주에 무려 네 명의 아이가 병원신세를 졌습니다. 학교가 파한 뒤에 아이들을 차례차례 병문안 하고 방천길을 따라 걸어오다가 보니 냇가 쪽으로 가지를 뻗은 벚나무들이 어둑한 허공 속에서 막 꽃망울을 터뜨리고 있었습니다. 그 광경을 보자 문득 이런 생각이 머리를 스쳐 지나갔습니다.

 

"저 꽃들이 피려고 아이들이 그렇게 아팠나 보다!"

 

그럴 리가 없겠지만 또 그럴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한 송이 국화꽃을 피우기 위해 봄부터 소쩍새는 그렇게 울었나보다'식의 시적 상상력이 아니더라도, 꽃샘추위로 인해 하늘이 아프고 땅도 아프다면 그 사이에 사는 우리 인간도 그 아픔에 조응하는 것이 자연스러운 순리일 수도 있겠지요. 

 

어쨌거나 아이들은 아프면서 성장합니다. 그래서 아픈 아이들을 바라보면 마음이 함께 아파지다가도 금세 회복이 됩니다. 성장을 위한 아픔이겠거니 생각하는 것이지요. 그런 아픔들이 담임인 저와 아이들 사이에도 존재합니다. 교사가 아픈 만큼 아이들은 성장합니다. 그 아픔은 아이들을 올바르게 지도하고 싶은 마음이 클수록 더 크게 자리합니다.

 

벚꽃 만개한 벚꽃이 참 곱고 화사합니다. 우리 아이들도 저마다 아름다운 꽃들을 피웠으면 좋겠습니다.
벚꽃만개한 벚꽃이 참 곱고 화사합니다. 우리 아이들도 저마다 아름다운 꽃들을 피웠으면 좋겠습니다. ⓒ 안준철

가령, 요즘 아이들에게 책을 읽히기가 쉽지 않습니다. 점심시간에 도서관에서 모둠끼리 만나 읽을 만한 책을 권해주려고 하는데 아이들이 싫어할 것 같아서 벌써부터 마음에 아픔이 느껴집니다. 그래도 포기할 수 없는 것은 책만큼 아이들의 성장에 도움을 주는 것이 없기 때문입니다. 제 강요에 못 이겨 어렵사리 책을 읽는 아이들도 마음이 불편하기는 마찬가지 일 것입니다. 그 불편함과 아픔의 과정을 잘 이겨낼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 또한 교사의 일이겠지요. 언젠가 아이들에게 해준 말입니다.

 

"여러분에게 꿈이 없다면 단 한 권의 책을 읽는 것도 불가능할 수 있습니다. 1년 동안 단 한 권의 책을 읽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꿈이 없다면 3년 동안 단 한 권의 책을 읽지 않고 학교를 졸업할 수도 있습니다. 여러분의 변화와 성장에 도움을 주는 책을 단 한 권도 읽지 않고 청소년 시절을 마감한다면 여러분은 과연 어떤 사람이 되어 있을까요?"

 

이런 말을 하면서도 아픔이 느껴집니다. 말이 가서 아이들의 영혼에 스며들지 않고 튕겨져 나오기 때문이지요. 그 말의 유탄은 고스란히 교사의 가슴에 꽂힙니다. 그러다가 한 아이와 눈이 마주칩니다. "아, 넌 내 말을 듣고 있었구나!" 이런 확신을 갖게 하는 아이가 한두 명은 꼭 있기 마련이지요. 그들의 초롱초롱한 눈빛은 치료제가 되어줍니다.

 

그런 고마운 아이가 하필이면 생일 전날 심한 감기몸살로 입원을 했습니다. 그 아이가 아파주어 벚꽃이 화사한 옷을 입고 세상 밖으로 나올 수 있었던 눈부신 사월의 첫날이었습니다. 병원으로 아이를 찾아가던 날 제 손에는 예쁘게 코팅한 생일시 한 편이 들려 있었습니다.

 

사월이 오면

 

사월이 오면

네가 태어난 꽃 피는 사월이 오면

살구꽃도 피고 복사꽃도 피고

이름 모를 꽃들도 다투어 피어나는  

눈부신 사월이 오면

이제는 가장 먼저

네 이름이 생각나가겠다.  

 

사월이 오면   

'목련꽃 그늘 아래서

베르테르의 편지를 읽노라'

'사월은 가장 잔인한 달'

이런 멋진 말들이 생각나곤 했는데

이제는 가장 먼저

네 갸름한 얼굴이 떠오르겠다.  

 

발레는 허리 부상 때문에 꿈을 접었고 

패션 쪽은 너무나 관심이 가지만 

어른들의 시선이 좋지 않아 고민 중이라고 

네 꿈 이야기를 들려주다가 

선생님과 함께 할 수 있는 1년

정말 뜻 깊고 뭔가 변화하고 성장할 수 있는

조우리가 되었으면 좋겠다고 

넌 첫 편지에 그렇게 썼었지.

 

바로 그 말

변화라는 말 성장이라는 말이

어찌나 빛나보이던지

어찌나 가슴에 와 박히던지

이제 사월이 오면

가장 먼저 네 이름이 생각나겠다. 

네 예쁘고 갸름한 얼굴이 떠오르겠다.  

 

2010년 4월 1일

 

사랑하는 우리의 생일을 축하하며, 담임선생님이

 

벚꽃 꽂샘추위가 기승을 부려도 꽃은 때를 맞추어 어김없이 피어납니다. 우리 아이들의 꿈도 저 꽃처럼 환히 피어났으면 좋겠습니다.
벚꽃꽂샘추위가 기승을 부려도 꽃은 때를 맞추어 어김없이 피어납니다. 우리 아이들의 꿈도 저 꽃처럼 환히 피어났으면 좋겠습니다. ⓒ 안준철


#순천효산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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ㄹ교사이자 시인으로 제자들의 생일때마다 써준 시들을 모아 첫 시집 '너의 이름을 부르는 것 만으로'를 출간하면서 작품활동 시작. 이후 '다시 졸고 있는 아이들에게' '세상 조촐한 것들이' '별에 쏘이다'를 펴냈고 교육에세이 '넌 아름다워, 누가 뭐라 말하든', '오늘 교단을 밟을 당신에게' '아들과 함께 하는 인생' 등을 펴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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