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월 2일 오후 7시 20분경. 서울지법 311호 법정은 고요했다. 200명에 가까운 사람들이 법정 안을 가득 메우고 있었음에도 누구 하나 숨조차 쉬지 않는 듯 느껴졌다. 변호인 신문이 끝나고 한명숙 전 총리의 최후진술이 시작되려는 참이었다(☞ 최후진술 전문 보기).
"존경하는 재판장님…."
한 전 총리가 이렇게 최후진술을 시작했다.
"저는 이제 피고인으로서 치러야 할 마지막 절차를 밟고 있습니다. 그러나 지금 이 순간까지도, 제가 왜 피고인으로서 이 법정에 서 있어야 하는지를 이해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깊은 분노가 밑바닥에 깔렸었으나 단아하고 차분한 목소리였다. 그는 "총리를 지냈으면 훨씬 엄격한 도덕성을 요구받아야 당연하지만 뚜렷한 증거도 없이 추정과 가정을 바탕으로 기소당해야 한다는 현실이 참기 어렵다"면서 "법관이 판결문으로 말하듯 검사는 오로지 사실 관계에 기초해 증거와 공소장으로 말해야 한다"고 전제했다. 이어 "검찰이 공명심에 사로잡혀 표적수사를 벌임으로써 생겨난 참담한 비극의 역사를, 우리는 잘 알고 있다"며 "그 역사가 더 이상 반복되어서는 안 된다"고 힘주어 말했다.
흐트러지지 않던 그의 목소리가 떨리기 시작한 것은 "제게 주어진 시련을 견뎌내는 동안 몸도 마음도 매우 고통스러웠다"고 말한 다음 "영문도 모르고 모진 일을 겪게 된 주위 분들과 가족들의 고통을 바라보는 일이 무엇보다도 힘들었다"고 말할 즈음이었다.
그리고 방청석 이곳저곳에서 흐느끼는 소리가 들려왔다. 한 전 총리가 아들에 관해 언급하며 "아이가 마치 깨끗하지 않은 돈으로 유학생활을 하는 듯 얘기 되어지고 홈페이지까지 뒤져 집요한 모욕주기에 상처받았을 마음을 생각하면 엄마로서 한없이 미안하고 제가 받은 모욕감보다 큰 고통을 느낀다"는 부분을 읽어 내려갈 때 법정 안은 한없이 숙연해졌다.
짧은 순간 한 전 총리의 목소리에 울먹임이 섞이는 듯하더니 이내 그는 자신의 감정을 수습하고 최후진술을 마무리하고 있었다. 법정 안 대부분의 사람들 눈에서 눈물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방청객들은 '엄마로서 한없이 미안하다'는 한 전 총리의 절절한 모성에 울었고 오열해야 마땅한 상황에서도 참아야 하는 그의 모습을 보면서 또 울어야 했다.
이어 재판장이 선고일을 공포하고 재판을 마감했다. 지난해 12월 22일 검찰이 기소한 후
열세 번의 재판이 진행되고, 사상 처음으로 현장검증을 벌이기까지 하면서 진행된 무리한 재판, 정치검찰과 '권언 한몸된 언론'의 야합으로 진행된 한명숙 흠집내기 사건, 국가기관이 총동원되어 벌인 희대의 국민우롱사건은 분노와 한숨과 눈물 속에 이렇게 마무리되어가고 있었다.
"여보세요!"... 판사가 말하다
이날 재판 카피를 뽑는다면 그것은 단연코 "여보세요"가 될 것이다. 아니, 재판에 관한 방청기를 쓰며 '여보세요'라니! 기이하게 여기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날 판사의 입에서 나온 이말, '여보세요'는 이번 재판에 임하는 검사 측의 태도가 어떠하였는지 그 문제점을 적나라하게 반증해주는 단어였다.
이날 재판은 변호인 반대신문에 이어 검사의 반대신문이 있었다. 한 전 총리는 변호인 신문을 통해 "상상할 수조차 없다", "그런 일은 있을 수도 없다", "결코 그렇지 않다"는 등의 표현으로 결백을 주장했다. 그렇다면 문제의 '여보세요' 발언은 어느 지점에서 나온 것일까.
검찰은 재판이 진행되면서 상황이 불리해지자 돌연 골프채와 2008년의 '제주도 로드랜드' 문제를 들고 나왔었다. 당일 변호인 반대신문 때 한 전 총리는 로드랜드에 간 일이 있으며 동생 등과 함께 골프장에 나간 일이 있다고 시인했다. 그러나 골프채를 받은 일이 없다고 단호히 말했다. 이와 관련해 검찰은 아래와 같은 반대신문을 했다.
검사 : "왜 가명으로 골프를 쳤나. 가명으로 한 건 객관적인 증거자료로 증명된 것인데…."
변호인 : "저건 모욕적인 질문으로 어제 빼기로 한 거다."
재판부 : "여보세요. 어제 논의할 때 모욕적인 질문이라고 신문사항에서 빼기로 한 걸 질문하면 어떻게 해요. 동생이름으로 친 거라는 것도 객관적 증거자료라고 하는데 검찰이 주장하는 거지 입증된 것도 아니고."
검사 : "어제 제가 그 자리에 있지 않아서…."
재판부 : "어제 이태관 검사가 있었지요? 이태관 검사가 질문하세요."
한마디로 판사가 "너는 아웃이고 네가 질문해!"라고 한 것이다. "여보세요"라고 제지하면서. 이후 검찰 반대신문은 이태관 검사가 진행했고, 한 전 총리는 검찰 쪽으로 고개조차 돌리지 않았다.
이후 검찰은 의견진술을 한다면서 50여 분 동안 오찬장 상황, 뇌물자금 사용처, 곽 전 사장과의 친분 관계에 관한 전 총리 주장의 허구성 등의 항목을 보여주면서 누가 보아도 허술하고 허접한 논리로 한 전 총리 흠집내기에 주력한 반면, 또 다른 피고인 곽영욱을 감싸기에 바빴다.
검찰이 '직접 돈을 건네주었다'→'의자에 두고 왔다'→'10만 불이다'→'3만 불이다'→'5만 불이다'→'선거 때 천만 원을 주었다'→'주려고 돈을 가져갔으나 상황이 번잡해 주지 못했다…'는 식으로 바뀐 곽영욱의 진술에 대해 '일관성' 운운하자, 한 방청객은 "저게 검사인가, 곽영욱 변호사인가"라고 혼잣말을 하며 깊은 한숨을 쉬고 있었다.
검찰이 "뇌물을 정말 받지 않았다면 뇌물을 줬다는 사람을 적극적으로 공격하는 게 통상적"이라고 전제하고 한 전 총리가 "곽씨의 진술을 정면 반박하지 못하고 약자나 행사하는 진술거부권을 행사했다"며 한 전 총리를 공격하는 대목에서는 방청석 여기저기서 헛웃음이 터져 나왔으나 법정 경비조차 제지하지 않았다.
이게 어찌 검찰의 논거일 수 있는가. 여기가 시정잡배들이 모여 싸우고 욕지거리하는 곳이란 말인가. 시정잡배들이 싸울 때에는 억지 주장을 하며 서로 공격할 수 있겠지만 적어도 한 나라의 총리를 지낸 사람을 뇌물죄라는 파렴치범으로 몰아가려 하려면 객관적인 사실과 증거자료에 근거해야 하는 것이 아닌가. 검찰의 수준이 이 정도밖에 안 된다면 어떻게 이런 검찰에게 법 실현의 일부를 맡길 수 있을 것인가. 검찰개혁의 필요성을 절감하게 하는 대목이 아닐 수 없었다. 재판이 끝난 뒤 이해찬 전 총리는 "검사 임용과 검찰 운용방식을 바꾸어야 한다"고 말했다.
검찰의 허술한 논고는 이어진 변호인 변론에서 여지없이 무너져 내렸다. 변호인 측은 먼저 공판중심주의에 따라 재판이 진행된 점을 평가하고 재판을 합리적으로 진행해 준 판사에게 감사의 말을 전했다. 이어 이번 공소내용의 쟁점을 정리하고 진술 내용의 합리성, 상황의 타당성, 검찰 수사의 문제점 등등을 준비한 프레젠테이션으로 보여주며 검찰 주장을 하나하나 반박해 갔다.
변론에 모두 공감하는 분위기였지만, 특히 곽영욱이 가지고 있는 외화 액수와 쓰임을 분석한 뒤 '한 전 총리에게 줄 5만 불은 어디에도 있지 않다'라고 주장한 부분, '의자에 돈을 놓고 나왔다'는 곽씨의 주장이 맞을 경우 있어야 할 상황 열 가지에 대한 언급은 큰 공감을 자아냈다.
백승헌 변호사는 "곽씨의 주장이 맞으려면… 한 시간 이상 돈 봉투를 가슴에 넣은 채 식사를 해야 하고, 의전상 이례적으로 총리가 오찬 후 손님 뒤에 나와야 하고, 훤히 내부가 들여다보이는 오찬장 안에서 총리가 돈을 보자마자 집어서 서랍장에 넣어야 하는 도저히 현실에서 일어나기 힘든 전제들을 충족해야 한다"고 반박했다.
지금까지 이 재판은 오직 곽영욱의 진술 하나에 의지해 진행되었다. 곽영욱은 주요 공소사실에 대해 수시로 말을 바꾸었다. 애초 "돈 준 전주고 출신 정치인들을 불라"는 검찰의 압박으로 진행된 수사는 왜 한 전 총리를 향하게 되었고, 이후 곽영욱이 돈을 주었다는 전주고 출신 혹은 전라북도 출신의 정치인들에 대한 소환조사는 이루어지지 않았던 것일까. 권언 한몸된 언론의 거짓보도, 흠집내기 보도와 청와대를 비롯한 권부와 한나라당 몰지각한 의원들의 거들기가 검찰의 힘이라면 힘이었다.
재판이 진행되는 과정에서 "과연 이 재판을 진행할 수 있느냐"는 자조의 목소리가 검찰 내부에서도 나왔다고 한다. 법원 일각에서도 같은 의문을 표시한 법관들이 있었다고도 한다.
이번 재판에서 간과할 수 없는 문제점은 또 있다. 변호인도 없는 상태에서 진행된 수사, 검찰의 강압수사, 반인권적 수사 행태가 그것이다. 아무리 곽영욱이 미워도 그 또한 이명박시대가 만들어낸 정치적 희생자의 하나이다. 그리고 그에게도 인권이 있고 생명을 담보로 한 강압수사와 그로 인해 얻은 자백만이 유일한 증거인 이 재판은 애초 성립될 수 없는 것이 아니었을까.
한명숙의 재발견
그동안 불의한 정권과 검찰에 의연히 맞서왔던 한 전 총리는 이날 재판이 끝나고 강금실 변호사에게 의지해 재판정을 걸어나올 수 있었다. 재판을 받으며 주어진 시련을 견디어 내는 동안 그는 정말 "몸도 마음도 힘들고 고통스러웠을 것"이다. 우리는 짧지 않은 시간을 한 전 총리와 함께해왔지만 웃지 않는 그이 얼굴, 온화함이 가신 그이 얼굴을 본 기억이 별로 없다. 한명숙 전 총리는 늘 미소를 머금고, 어떠한 순간에도 부드러움을 잃지 않았었다.
이번 재판 과정에서 우리는 가끔 미소가 가신 그이의 얼굴을 만났다. 때로는 단호함이 그이의 얼굴에 어렸고, 가끔은 서글프게도 보였다. 그리고 최후진술이 끝나고 걸어나올 때 처음으로 무너져 내리려는 자신을 안간힘으로 추스르는 그이를 보았다. 차라리 무너져 내렸으면 좋으련만… 한명숙 전 총리는 끝까지 무너지지 않았다. 그이는 무엇을 위해 그렇게까지 의연한 것일까.
'한명숙의 재발견'. 먼 훗날 역사는 '공판중심주의'가 철저하게 이루어졌다는 측면에서 이 재판을 사법사상 '그 이전'과 '그 이후'를 가르는 재판으로 기록할지 모른다. 사법사상뿐만 아니다. 이번 재판은 무엇보다 한명숙 그이를 '그 이전'과 '그 이후'로 확연히 가를 것이다. 이와 함께 우리 사회 또한 '재판 이전'과 '재판 이후'로 획기적으로 달라질 것임이 틀림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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