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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백령도 장촌포구. 지난 26일 침몰한 천안함 수색 작업에 나섰던 어선들이 정박해 있다.
백령도 장촌포구. 지난 26일 침몰한 천안함 수색 작업에 나섰던 어선들이 정박해 있다. ⓒ 최경준

"천안함이 가라앉은 후에 관광객이 통 없어요. 아마도 6·25 이후 섬에서 일어난 제일 큰 사건인 것 같은데 언제나 잠잠해질지..."

백령도의 택시기사 김병득(63)씨의 푸념이다.

서해 최북단의 백령도는 효녀 심청이 몸을 던진 전설의 인당수를 사이에 두고 북한의 해안포 기지가 있는 장산곶을 마주하고 있다.

북한이 서해 북방한계선(NLL) 문제를 거론할 때마다 언론들은 '위기의 백령도'를 찾았지만, 정작 이곳 주민들은 대수롭지 않다는 반응을 보여왔다.

비교적 적은 인구(5000여 명)에 문화·의료 혜택도 열악하지만 교통사고와 강력범죄가 거의 없고 물·공기가 깨끗하기 때문에 삶의 질은 비교적 높은 편이라는 게 주민들의 한결같은 얘기다.

백령도 주민들의 주 수입원은 관광과 어업. 2008년 촛불시위 때 일부 시위대가 '애용'했던 까나리 액젓도 이곳 백령도의 특산품이다. 당시 시위대가 분사한 까나리 액젓을 맞은 경찰들이 지독한 냄새가 잘 지워지지 않아 고생했다는 얘기가 회자되지만, 진촌리의 어민 장충석씨는 "그때 시위대가 까나리 액젓에 식초 같은 걸 섞어서 그런 냄새가 났는지 몰라도 제대로 삭은 액젓은 비린내가 안 난다"고 항변했다.

심란한 백령도... 갯벌 나갈 맘도 안 나

 지난 1일 오전 인천 옹진군 백령도 두문진에서 어민들이 어구를 손질하고 있다.
지난 1일 오전 인천 옹진군 백령도 두문진에서 어민들이 어구를 손질하고 있다. ⓒ 뉴시스

천안함 사건 이후에는 백령도의 어업은 어업대로, 관광은 관광대로 안 풀리고 있다.

"늦어도 4월 중에는 까나리 조업을 시작해야 (발효시킨 뒤) 10월(김장철)에 시장에 내놓을 수 있다"고 말하는 이도 있지만, 까나리 조업은커녕 갯벌에서 굴을 따기도 쉽지 않은 분위기다.

섬 남쪽 장촌포구에서 만난 김성애(78)씨는 "이 와중에도 갯벌에 나가는 사람들이 있길래 내가 '남의 집 귀한 아들들이 물에 빠졌는데 갯벌에서 굴 딸 마음이 나냐'고 야단을 쳐놨다"고 말했다. 김씨는 "TV에서 허구한 날 섬 얘기가 나오니 마음이 진정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관광객의 발길도 뚝 끊어졌다. 한 여행사의 경우 지난 주말 2박3일 일정으로 50명분의 단체관광객을 맞기로 되어 있었는데, 천안함 사고의 여파로 갑자기 취소됐다.

그나마 여객선 선착장이 있는 용기포와 장촌 등의 민박집 사정은 나은 편이다. 전국에서 몰려온 기자들이 관광객의 공백을 메워주고 있기 때문이다. 2일 백령도에 도착한 기자도 숙소를 구하지 못해 적잖이 애를 먹었다.

해군본부는 천안함 사고가 난 후 최대 220명의 기자들이 섬에 들어온 것으로 파악했다. 백령도에 파견된 해군 공보장교는 4일 "군의 작전이 구조에서 인양으로 국면 전환이 됐는데도 아직까지는 200명 가량의 기자들이 섬을 떠나지 않은 것 같다"고 말했다.

"암초 있다"고 말한 백령도 주민, 기무대서 찾아와

그렇다고 섬 주민들이 기자들을 마냥 반기는 것도 아니다.

기자들의 인터뷰에 응했다가 관의 뒤늦은 추궁으로 곤경에 처하기도 하고, 선의로 한 말이 언론사의 성향에 따라 이용된 게 아니냐는 피해의식을 느끼는 사람들도 있다.

지난달 29일 보도된 모 방송사 인터뷰에서 "천안함 사고 지점 부근에 '홍합여'라는 암초가 있다"고 얘기한 이원배(73)씨도 그 중의 한 명이다.

 29일 모 방송사에 보도된 백령도 주민 이원배씨의 인터뷰
29일 모 방송사에 보도된 백령도 주민 이원배씨의 인터뷰 ⓒ 방송사 화면 캡처

이씨는 방송에서 "물속에 잠겨있는 암초가 있는데 함대가 가도 GPS에도 표시 안 돼 있으니까 모른다"고 말했고, 이로 인해 천안함 사고원인과 관련해 '암초설'이 부상하기도 했다. "사고 해역에서 암초가 확인되지 않았지만 좌초라든지 내부 폭발의 가능성도 열어놓고 있다"(2일 김태영 국방장관)는 게 정부의 공식입장이다.

그러나 방송이 나간 후 이씨의 발언을 확인하고자 여기저기서 연락이 왔다. <오마이뉴스> 기자도 3일 오전 이씨가 사는 두무진으로 찾아갔지만, 그는 한동안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인터뷰를 사양했다.

이씨의 가족에 따르면, 방송사 보도 이후 국립해양조사원이 그에게 전화를 해 '해도를 확인해 보고 인터뷰를 했냐?"는 취지로 추궁을 했고, 현지 기무대 간부도 찾아왔다고 한다. 기무대 간부는 이씨가 짐작하는 암초의 위치를 묻더니 "천안함이 침몰한 위치는 (당신이 아는) 그곳이 아니다"고 말한 뒤 가버렸다고 한다.

이씨의 아들도 <오마이뉴스> 기자를 보자 대뜸 "혹시 조중동에서 온 기자 아니냐?"며 불쾌한 표정을 지었다. 두무진의 또 다른 주민도 "그 신문들이 아무 근거도 없이 북한이 저지른 짓이라고 몰아가던데, 그런 식으로 몰아가면 이곳 주민들은 다 죽는다"고 말했다.

이씨는 "물속에 그런 바위가 있으니 함대가 닿을 가능성도 있다고 얘기한 것이지, 내가 단정적으로 얘기한 게 아니다"고 섭섭함을 내비쳤다.

이씨는 "도움 되라고 얘기해 봤자 헛소리나 한다는 말이나 듣고... 더 이상 얘기할 마음이 없다"고 하면서도 군 당국의 안이한 대응에 대해서는 기어코 쓴소리를 던졌다.

"뭘 알아도 얘기를 할 필요가 없는 거야. 군부대가 어선들의 도움을 안 받는다. 우리는 군함 침몰했다는 뉴스가 나온 후 군을 지원해주려고 기다리고 있었는데... 아마 지원 받았으면 벌써 다 끝났을 텐데... 물살이 센 것도 모르면서 말이야."

이씨의 주장에 대해서는 섬 주민 사이에서도 평가가 엇갈린다. "백령도에서 50~60년 고기잡이를 했고, 바닷길을 보는 눈도 훤하다"고 그의 경륜을 평가하는 이도 있지만, "사고 해역은 온통 모래밭이기 때문에 이씨가 얘기하는 암초 같은 게 없다"고 깎아내리는 사람도 있었다.

"북한이라는 근거 있나... 조중동처럼 하면 주민들 다 죽어"

한 가지 분명한 것은 기자들이 주민들과 접촉하는 과정에서 크고 작은 해프닝이 일어나면서 주민과 관청, 주민과 주민, 주민과 기자들의 상호불신이 싹텄다는 점이다. <오마이뉴스> 기자가 백령도에서 만난 상당수 주민들도 "말 한 마디 잘못했다가는 경찰이나 기무대에서 찾아온다", "이곳은 바닥이 좁아서 언론에 이름 나가면 곤란하다"며 난색을 표했다.

연화리의 한 주민은 "북한이 했다는 증거도 없고, 내부폭발도 아니라면 암초에 부딪친 것밖에 없지 않냐"며 이씨를 옹호했다가 기자가 그의 말을 받아적자 발언을 급히 취소하기도 했다.

해군본부의 관계자는 "주민들이 언론과 만나는 것을 어려워한다. 인터뷰 기사를 삐딱하게 쓰니 히스테리 반응을 부리는 것 아니냐?"고 말했지만, 중앙언론사의 한 기자는 "백령도에 와 있는 군인들은 서울의 국방부 브리핑을 참고하라면서 취재 정보를 안 주려고 한다. 취재가 안 되니 주민들을 상대로 탐문을 하는 것은 당연하지 않냐"고 항변했다.

천안함 침몰 원인에 대한 논란이 계속되는 가운데 백령도 사람들의 '마음의 문'도 서서히 닫혀가고 있다.


#백령도#천안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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