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집 손바닥 정원엔 볼품 없어 보이는 식물들이 오종종 모여 산다. 흠모할 만한 풍채도, 모양도 없는 조악한 것들로 이루어져 있다. 화단이라야 실험용 마루타 집합소처럼 어린 묘목들과 씨앗, 고만고만하게 자라는 식물들이 전부지만 남편은 천국의 화원이라도 되는 양 지극정성이다. 가끔은 무슨 큰일이라도 난 것처럼, "여보, 여보~얼른 와 봐요!"하며 숨 가쁘게 불러 대서 달려가 보면 밤새 새잎이 돋았거나 꽃이 피었거나 했다.
2년 전 가을에는 인삼의 고장 금산에서 인삼 씨를 어렵게 구해와 작년 3월에야 심었다. 엉성하기 짝이 없는 화단이지만 일명 '천국의 화원' 책임자인 남편은 손수 스티로폼 박스에 흙을 깔고 인삼가게 주인이 일러준 대로 조심스럽게 씨를 심었다. 너무 깊이 심지 말라고 해 어림잡아 3센티 정도 땅에 묻고 흙으로 덮은 뒤 햇살이 잘 드는 창가에 심어 두었다. 그리고 잊었다. 인삼이 잘 자랄 만한 기후도 토양도 아니라, 과연 이 작은 씨앗이 땅에 뿌리를 내리고 싹을 틔워 올릴 수 있을까 생각한 나는 별 기대도 품지 않았다.
햐, 그런데 신기했다. 며칠이 지나도 덮은 흙만 보이던 그(스티로폼) 안에서, 생명의 기운이란 전혀 감지되지 않았던 딱딱한 씨앗들이 거짓말처럼 발아했다. 흙 속에 발 뿌리를 힘껏 뻗어 내리고 툭툭 앙증스런 잎을 틔우더니 수줍은 듯 배시시 웃으며 줄기를 위로 올렸다. 기적처럼 돋은 어린 잎새가 이젠 매일 아침마다 새로운 모습을 보여주었다. 키는 더 자라고 잎은 커지면서 잎맥은 지문처럼 섬세하고 또렷해졌다.
처음엔 잎이 돋으면서 씨 껍질을 혹처럼 달고 있어 손으로 떼어내 주고 싶었지만, 애벌레가 나방이 되기 위해 홀로 껍질을 깨고 나와야 하듯 애네도 그래야지 싶어 가만히 두고 보았다. 다행히 며칠 뒤엔 스스로 껍질을 벗고 유록빛 잎을 반듯하게 내밀었다. 알을 깨고 나온 어린 새, 대견했다.
매일 새벽 기도를 끝내고 나면 남편은 이 어린 나무들을 자식 돌보듯 관찰하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한다. 아침 햇살이 창가에 비쳐들면 화초들은 생기를 띤다. 신기한 것은 햇살이 비치면 이파리들은 누가 뭐랄 것도 없이 빛을 향해 일제히 몸을 비틀었다. 하도 신기해서 화분을 반대 방향으로 놓아보았다. 빛과 반대인 그늘 쪽으로 잎의 방향을 바꿔놓고 한참 뒤에 보면 어느새 그 어린 이파리들은 그늘에서 다시 방향을 틀어 빛을 향하고 있었다. 빛을 따라 움직이는 빛바라기다.
겨울이 되면서 작은 인삼나무(나무랄 수 있을까)는 사라지고 상흔처럼 여윈 가지 하나 화분에 남았다. 그랬던 것이, 깊은 침묵을 깨고 봄 같지 않은 이 봄도 봄이라고, 얼마 전부터 '나 여기 있노라'고 다시 그 존재를 드러내기 시작하였다. 작년보다 더 단단한 줄기에 잎을 틔워 싱그럽고 견실하다. 여릿여릿 위태롭던 가지는 이제 긴긴 겨울을 견뎌내고 더 당당하고 꼿꼿한 모습이어서 대견스럽기까지 하다.
오늘도 인삼나무 가지는 곧고 단단하게 생명의 경이를 맘껏 뿜어내고 있다. 인삼 씨를 우리집 화분에 심은지 어느새 해가 두 번 바뀌고 봄을 두 번 맞았다. 어린 인삼나무 옆에는 춘란, 알로에, 선인장, 동백 등등 어린 묘목들이 고만고만하게 이웃해 자라고 있다. 여전히 이 어린 것들은 빛을 향해 고개를 내민다.
가끔 등산을 하다 보면 햇빛 잘 안 드는 숲에 키 큰 나무들이 도열해 있는 것을 본다. 빛을 향해 높이 더 높이 목을 빼느라 정작 몸 둥치는 넓히지 못하고 키만 껑충한 야윈 나무들이다. 빛이 잘 들지 않는 응달에 살다 보니 옆에 있는 나무들과 경쟁하듯 빛을 더 많이 확보하기 위해 발돋움했기 때문이다. 그 아랜 별다른 식물이 자라지 못한다.
어떤 경우는 나무들이 일제히 한쪽으로만 치우쳐 가지를 뻗쳐 나간 것을 본다. 한 그루만 그런 것이 아니라 그 주변 나무들 모두 그렇다. 무용할 때 한쪽 팔은 허리에 얹고 한쪽 팔만 훠이훠이 펼쳐든 모양과 흡사하다. 햇볕 드는 곳으로만 일제히 가지를 뻗고 있어 시선이 절로 머문다. 어둠을 깨치고 아침 해가 떠오르면 숲에도 햇살이 부채살처럼 넓게 퍼진다. 나무들은 빛을 향해 몸을 한껏 뻗친다.
살아 있는 것들은 빛을 향한다. 빛은 생명. 생명 있는 모든 것은 빛을 향하고 빛을 호흡하며 빛에 거한다. 우리집 손바닥정원에 오종종 모여 사는 어린 식물들은 깊은 어둠의 솜이불을 털고 나와 오늘도 빛을 향하고 있다. 그 빛은 바로 생명이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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