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고등학교 2학년인 민지는 최근 한 영화를 통해 7년 전 한국 사회 모습을 보면서 무척이나 의아했다. 당시 초등학교 4학년이었기에 세상일에 대해 아무 것도 몰랐던 그는 한국 사회의 경직성에 깜짝 놀랄 수밖에 없었다. 영화 속에서 보게 된 한국 사회의 모습은 적지 않은 충격이었고, 쉽게 이해가 되지 않았다.
개인의 다양성이 무시되고, 객관성을 유지해야 할 언론이 사건의 중심에 주관적으로 개입하는데다, 기자들이 검사의 말을 전해주는 전달자 역할을 하는 것이 납득하기 어려웠다. 학교에서 가르치고 배우는 것과는 영 다르기만 한 모습.
"다양성을 존중 안 한 채 전향만을 강요하는 나라가 진정한 민주국가인지 의심스러웠어요"라고 말한 민지의 노트에는 이런 감상평이 적혀 있었다.
'우리나라 언론이 아직도 이렇게 후진적이며 독립적이지 않고 어디에 종속돼 있는 것에 충격이었다.'"언론이 이렇게 후진적이며 종속돼 있음에 충격"
2003년 송두율 교수 사건을 다룬 <경계도시2>가 잔잔한 파장을 일으키고 있다. 7년 전 한국 사회의 모습을 비추고 있는 영화는 관람한 사람마다 부끄러움과 함께 스스로에 대한 반성을 토로하고 있다. 포털사이트를 통해 매기는 관객들의 별점 평가는 극단으로 엇갈린다. 별 5개를 주거나 아니면 1개만 줄 뿐이다. 모 아니면 도만 존재하는 식이다.
그렇다면 2003년 한국 사회에 대해 당시의 상황을 몰랐던 사람들은 어떤 시각으로 영화 속 한국사회를 평가하고 있을까?
지난 4일 오후 분당의 한 논술학원에서 2003년 한국 사회에 대한 고등학생들의 이야기를 듣는 특별한 시간이 마련됐다. 2003년을 아무 생각 없이 지나친 2010년 고등학생들이 7년 전의 우리 사회에 대해 각자의 생각을 나누는 시간이었다.
논술학원 선생님과 함께 영화를 본 학생들이 공부 중간에 짬을 내 시간을 마련한 것인데 이날 자리에는 특별한 손님 한 분도 초대돼 학생들과 자리를 같이 했다. <경계도시2>를 만든 홍형숙 감독이었다.
이날 만남은 영화를 보고 나서 학생들이 이야기했던 감상평을 선생님이 개인 블로그에 올린 것이 계기가 돼 이뤄졌다. 트위터를 통해 감독과 배급사 측에 내용이 전달됐고, 감독과 학생들 간에 서로의 호기심이 작용해 특별하게 마련된 시간이었다.
"상당히 큰 사건이 쉽게 잊혀지고, 이분법적 사고 지나쳐"
당시의 상황을 전혀 모르는 고등학생들의 시선에 2003년 한국 사회는 이상한 나라의 모습으로만 비쳐질 뿐이다.
"처음에는 무슨 이야기인지 멀뚱멀뚱하다가 보면서 내용을 알게 된 학생들은 영화를 보고 나서 답답하고 우울함을 토로했고, 어떤 학생은 '에이씨, 사회교과서에 나오는 다양성은 다 뭐야'하며 투덜댔다"고 논술학원 교사 정혜영씨는 전했다.
수줍은 표정을 짓던 소희도 친구 민지와 비슷한 생각을 말했다. 기자를 꿈꾸고 있는 소희는 관찰자가 아닌 게임플레이어인 언론의 모습을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고 한다.
"언론에 실망했어요. 국가보안법의 목적이 무언가 싶기도 하고 무고한 사람 괴롭히는 악법처럼 보였어요. 특히나 대부분의 혐의가 무죄로 확정되는 영화 속 마지막 내레이션을 들으면서는 얼마나 허탈하던지…" 고1인 인태는 영화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야간자율학습이 없는 날, 일부러 영화를 보러 압구정동까지 갔다 왔다. 평일에 보러 가려고 담임선생님께 이야기 했으나 공부에 도움이 안 된다며 허락을 해주지 않아 따로 시간을 내야 했다.
"당시 일이 상당히 큰 사건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송두율 교수가 전향하고 나서는 잊혀진 것이 너무 허무하고 허탈했어요. 어디를 선택할 것이냐고 강요하는 이분법적 사고가 지나치게 느껴졌고." 많은 말을 하지는 않았지만 인태 친구인 승우와 민준이도 다르지 않았다. 학생들은 책에서 배운 것과 너무나 다른 폭력적인 언론의 모습이 쉽게 이해되지 않는 듯했다.
"언론이 그렇게 큰 힘을 발휘하는 줄 몰랐어요. 한 사람을 완전히 매장시키던데, 예전부터 언론의 힘이 세다는 생각은 했지만 송두율 교수를 보면서 정말 심하다고 생각되던걸요." "노무현 대통령이 왜 돌아가셨는지 알 것 같다"
어느 순간 취재하기 위해 지켜보고 있던 기자를 향한 학생들의 시선이 따갑게 느껴졌다. 자기 입맛에 맞게 제 멋대로 왜곡하고 오도하는 일부 언론의 실태를 알게 된 학생들이 언론 자체를 경계의 눈초리로 바라보기 시작한 것이다.
습관적 왜곡을 일삼는 조중동과는 다른 바른 언론들도 많음을 예로 들며 그 눈빛을 누그러뜨렸지만 때 묻지 않은 학생들의 시선은 그만큼 명료하게 세상을 보려 하고 있었다.
논술 선생님에 따르면 "어떤 신문이 길거리에서 상품권과 현금 5만 원을 나눠주며 독자를 늘리고 있는 것을 학생들이 직접 보게 되면서 충격을 받기도 했었다"고 한다.
마지막에 송교수가 남긴 말을 거의 그대로 외워 친구들을 감탄케 했다는 정윤이도 "언론의 태도가 정말 충격이었다"고 한마디 하고는 세밀한 영상을 담아낸 감독에게 '찍을 때 제지당한 적 없냐'며 궁금해 하기도 했다.
재형이는 "송두율 교수가 북한의 명단에 이름이 오르고 남한에서는 억압적으로 전향했지만 (그렇다고) 경계인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라고 다른 시각에서 질문을 던지며 감독의 생각을 듣고 싶어 했다. 이에 대해 홍형숙 감독은 선이 아닌 양쪽 면 사이에 비어있는 공간의 의미로 경계인을 설명했다.
논술학원 정혜영 교사는 "영화를 본 학생들이 요즘 친구들에게 '한국 사회의 모습을 아냐'고 진지한 질문을 던지기도 하는데, 대부분의 아이들이 그냥 돈에 관심 있고, 이런 문제에 대해 생각할 기회도 없는 것이 안타깝다"고 말했다. 이어 "모순과 불합리에 매몰되는 현실을 아이들도 느끼고 있다"면서 "아이들을 소위 '개념없는 것들'로 만드는 건 어쩌면 어른들일 것"이라고 지적했다.
영화를 보고 나서 많은 생각을 하게 됐던 듯, 길게 적어 놓은 소희의 감상평은 이렇게 맺고 있었다.
'일단 이 영화를 보고 노무현 대통령이 왜 돌아가셨는지 알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언론 횡포, 언론 재판이 아직까지 일어나는 데 대해 국민으로서 부끄러움을 느꼈다. 둘째로, 우리나라가 진정한 민주화가 되려면 아직 멀었다고 생각했다. 왜 사람들은 경계인으로 살고자 했던 그를 이해하지 못하며 양자택일을 강요하는지 다양성을 존중하지 못하는 사회에 실망을 했다.'
우리 사회에 살고 있는 고등학생들만큼이나 외국인들의 시선에도 한국 사회는 이해하기 어려워 보이는 듯했다. 특히 한때 같은 분단국가였던 독일인들까지도.
4일 저녁 <경계도시2>가 상영되고 있는 홍대 앞 상상마당에는 특별한 외국인 관람객들이 방문했다. 한스 울리히자이트 주한 독일대사와 대사관 직원들이었다. 독일에서 경계인으로 살고 있던 한국인 학자가 고국에 돌아와 겪은 시련을 본 독일인들은 한국 사회의 모습에 궁금증이 많아진 표정들이었다.
영화가 끝나고 나서 감독을 향해 여러 가지 질문을 던졌다. '영화에 대한 반응은 어떤가?' '2003년에 비교해 2010년 한국 사회는 어떤 모습인지?' '당시 송두율 교수가 온 것이 한국 사회에 그렇게 큰 충격이었나?' 등등
한국에 온 지 6개월 정도 됐다는 한 독일 관객은 영화를 이렇게 총평했다.
"이 영화는 강하고 외국인으로서 심오한 충격이었다. 당시 상황을 보면 이데올로기적 분열과 미디어의 혼란 등 여러 이야기가 보인다. 7년 동안 어떤 변화가 있을까 싶지만 한국 사회는 여전히 극단적으로 보인다. 통일이 될 때 독일보다 힘들 것 같다는 인상을 받았다. 남북의 화해가 어려울 듯하다."이들의 의문에 대해 홍형숙 감독은 "당시 송 교수님은 한국사회에 떨어진 핵폭탄과 같은 존재였다"고 설명하면서 "최근 천안함 사건에서 보듯 북한과 연계시키기 위해 집요하게 움직이는 모습들이 보이고 있다"고 말했다.
함께 자리했던 조영각 서울독립영화제 집행위원장은 "2003년도에도 여러 가지로 충격이고 혼란스럽긴 했지만, 2010년 지금도 오시자마자 구속이 될 것이다"라고 말해, 독일인들의 궁금증을 유발했는데 한 관객은 "와이?"(why?)를 소리 지르듯 외치며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이었다.
이에 대해 조영각 집행위원장은 "법적으로는 문제가 없지만, 논리적으로 설명이 힘든 정서적인 문제"라고 답변했고, 옆에 있던 이택광 교수는 "보편적인 문제로는 설명이 안 되지만, 한국은 특수한 경우로 국보법은 법이 아니고 정치적인 분위기에 따라 정파들이 이용할 수 있는 도깨비 방망이 같은 것"이라고 설명했다.
송 교수가 다시 오면 법적으로는 무죄지만 정치적인 분쟁을 초래하게 될 가능성이 매우 크다는 것이었지만 외국인들은 상식적으로 이해하기 힘들다는 표정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