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월 중순, 몽골 출신 이주노동자 잠발이 쉼터를 찾아왔었습니다. 한국에 온 지 1년 조금 더 됐다는 잠발은 그럭저럭 자신의 의견을 우리말로 표현하는데 큰 무리가 없었습니다. 수염을 깎지 않고, 초췌한 몰골에 목이 쉰 목소리로 그는 자신의 사연을 이야기했습니다.
"딸아이가 발이 썩고 있는데, 당장 수술하지 않으면 어린아이의 다리를 잘라내야 합니다. 몽골에서는 의료 수준이 낮아 자른다고 하는데, 한국에서는 다리를 절단하지 않고도 치료가 가능하다고 들었습니다. 도와주십시오."
그러면서 잠발은 영문으로 된 서류 한 통을 내밀었습니다. 의료카드(Medical Card)라고 적힌 서류에는 환자 이름과 함께 컴퓨터단층 촬영 결과를 적고 있었는데, 골수염(osteomyelitis)라고 적혀 있었습니다. 그래서 인터넷에서 골수염을 검색해 봤습니다.
골수염이란 세균 감염에 의한 골수의 염증이며, 황색포도상구균(Staphylococcus aureus)이 가장 흔한 원인균으로 주로 아이들에게서 많이 볼 수 있다고 나와 있었습니다. 그 증상으로는 열, 오한, 뼈의 통증이 있다가 나중에는 감염된 주위가 빨갛게 부어오르는 증상이 나타나며, 예전에는 사망률이 매우 높은 병이었으나 지금은 항생제로 쉽게 치료가 된다는 설명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의료수준이 나은 한국에서 좀 더 나은 치료가 될 것이라는 잠발의 말이 일리가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 결과 잠발의 딸, 첸드슈렌(11)이 엄마와 함께 지난 달 29일에 의료관광 비자로 입국했습니다. 의료관광비자는 질병 치료 또는 요양의 목적으로 국내 전문의료기관 또는 요양시설에 입원하고자 하는 자와 환자의 간병을 위하여 입국하는 환자의 배우자, 자녀 또는 직계 가족 등을 대상으로 발급되는 비자입니다.
휄체어에 앉은 첸드슈렌은 오른쪽 무릎 아래를 붕대로 칭칭 감고 있었는데, 붕대 안에는 얇은 돌이 들어 있었습니다. 잠발은 붓기가 있는 상처 부위에 돌을 올려놓는 것은 몽골 민간요법이라고 했습니다. 붕대를 풀자, 종아리 전체가 허연 고름과 딱지가 뒤덮여 있는 모습이 보였습니다. 의료지식이 없는 문외한이 보기에 어떻게 저런 상태를 참고 지냈는지 의아할 정도였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이는 한국에 왔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싱글벙글 웃고 있었습니다. 말이 통하지 않았지만, 성격이 밝은 아이임을 쉬이 알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골수염이라고 알고 있던 첸드슈렌이 갖고 온 진단서에는 한글로 "상기 환자는 우측 경골 부위의 급성 골수염과 골수육종이 의심됩니다. 이에 정밀 검사 및 수술적 치료 및 화학적 치료를 요합니다"고 적혀 있었습니다. 그 진단서는 몽골에 있는 '연세친선병원'에서 작성한 것이었습니다. 역시 골수육종이라는 단어를 인터넷에서 검색해 봤습니다.
"육종은 근육, 결합조직, 뼈, 연골, 혈관 등의 비상피성 세포에서 생긴 악성 종양"이라고 나와 있었습니다. 다시 말해 암이라는 것이었습니다. 검색을 좀 더 해 보니, 첸드슈렌의 경우 소아암으로, 성장이 빠르고 암이 상당히 진행될 때까지 증상이 나타나지 않는 소아암의 특성상, 약 80%가 처음 진단시 신체의 다른 부위로 퍼져 있을 수 있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소아암은 성인암보다 화학요법에 대한 반응이 좋아 치료 성적이 훨씬 좋은 편으로, 꾸준히 치료하면 전체적으로 70% 이상이 완치가 가능하다는 것이었습니다.
골수염인줄 알았는데, 소아암이라니! 어린아이를 생각하면 딱하지 그지없었습니다. '소아암'이라니, 절단을 할지도 모른다는데, 어린아이가 그 큰일을 어떻게 감당할지 생각만 해도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습니다. 또한 아이를 바라보는 부모의 심정은 어찌하며, 치료 과정에 들어갈 비용은 어찌할지를 생각하니 막막해졌습니다. 그 일로 여러 곳에 문의를 해 봤습니다. 다행히 쉼터에 무료진료를 해 주시던 의사선생님께서 소아암 전문의를 소개해 주셨습니다.
잠발은 지금 딸 첸드슈렌이 긴 치료과정을 잘 극복하고, 그 과정에 필요한 것들이 채워질 수 있기를 기도하고 있습니다. 어쩌면 잠발은 어떤 희생을 치르더라도 딸아이를 치료할 각오를 하고 있을 것입니다. 가시고기처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