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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천원짜리 생선구이. 20가지 반찬에 정성이 가득하다.
7천원짜리 생선구이. 20가지 반찬에 정성이 가득하다. ⓒ 오문수

모처럼 날씨가 화창하다. 봄은 왔어도 비가 계속내리는 이상기후와 천안함 사건으로 침울했던 기분이 모처럼 풀린다. 여수를 떠나 군산으로 향하는 내내 보이는 도로 주변 풍경이 예쁘다. 눈처럼 하얀 벚꽃들과 진달래가 만개해 봄이 왔음을 실감케 한다.

군산항 주변을 구경하고 저녁밥을 먹기 위해 신풍옥에 갔다. 신풍옥은 군산시 문화동에 자리하고 있는데 좋은 목은 아니지만 20평 남짓한 조그만 식당에 손님이 꾸준하다는 얘기다. 손님 대부분은 단골고객이거나 지인들의 추천을 받고 찾아온 사람들이다.

신풍옥은 한식과 생선요리가 주종이다. 한정식은 4만 원, 6만 원짜리가 있다. 돈이 부담스러우면 생선요리가 있다. 생선요리에는 생선탕, 생선조림, 생선구이의 세 가지.

 당근 이파리 위에 도라지정과 씨를 뺀 대추를 둘둘 말아썬 한 조각을 살짝 얹었다(좌). 건포도와 밤으로 색깔을 내고 산호수 잎으로 멋을 냈다(우).
당근 이파리 위에 도라지정과 씨를 뺀 대추를 둘둘 말아썬 한 조각을 살짝 얹었다(좌). 건포도와 밤으로 색깔을 내고 산호수 잎으로 멋을 냈다(우). ⓒ 오문수

깔끔한 식당 테이블에 도라지정과와 백오이가 함께 나왔다. 지인과 얘기하는 사이에 주문한 생선구이가 차례대로 나온다. 7천 원짜리 생선구이에 나온 반찬 수는 정확히 20가지. 그런데 상 위에 놓은 반찬들이 정갈하고 색감이 예사롭지가 않다. 지인이 이 식당을 추천한 이유다.

"저는 이 식당을 애용하죠. 값도 싸지만 집에서 밥 먹는 기분입니다. 제가 알기로는 상에 놓이는 반찬을 거의 다 식당에서 직접 만든다고 합니다. 정갈하고 담백할 뿐만 아니라 색에 대한 배려가 장난이 아닙니다. 대접받는 기분이죠."

 검은깨가 들어간 호박 양갱에 측백나무 이파리가 조화롭다(좌). 고추냉이가 들어간 소스에 당근, 버섯, 피망을 얹은 퓨전오징어(우).
검은깨가 들어간 호박 양갱에 측백나무 이파리가 조화롭다(좌). 고추냉이가 들어간 소스에 당근, 버섯, 피망을 얹은 퓨전오징어(우). ⓒ 오문수

음식의 데코레이션에서 주인의 정성을 엿볼 수 있다. 상 위에 놓인 반찬의 색감이 건성이 아니다. 고급 음식점의 몇 만원짜리 음식이야 그렇다 치지만 이건 7천 원짜리 생선구이다. 

양태와 고등어 한 조각에 레몬 한 조각과 당근 이파리, 호박 양갱 밑에 놓인 측백나무 잎 한 조각, 약밥에 산호수 잎, 도라지정과 위에 씨를 빼고 둘둘 말아서 가지런히 썰어 정성스럽게 놓은 대추, 마른 멸치위에 예쁘게 놓인 1센티쯤의 고추, 심지어 배추김치 사이로 놓인 몇 가닥의 열무김치까지도 색의 조화를 이룬다.

 갓김치에 당근 반조각. 살짝 방향을 틀어 멋을 냈다.
갓김치에 당근 반조각. 살짝 방향을 틀어 멋을 냈다. ⓒ 오문수
그러고 보니 약밥 위에 놓인 건포도와 밤, 호박양갱에 뿌려진 검정깨, 갓김치 위에 놓인 반쪽의 당근도 색깔을 배려했다. 버섯, 오징어, 피망, 당근이 들어간 바닥에 고추냉이의 다양한 색깔이 어우러진 퓨전 오징어 요리가 예사롭지 않다. 약간 새콤하면서도 아삭아삭한 백오이 사이사이에 놓인 하얀 무채가 정말 맛있다. 지인은 오방색을 넣는다고 한다.

무국에 들어간 새우는 말리지 않은 민물새우라 부드러워 먹기가 좋다. 마늘 한 조각을 곁들여 곰삭은 황석어도 일품이다. 도토리묵을 제외한 모든 음식을 주인이 직접 만든다고 한다. 주인 아주머니를 불렀다.

"아주머니, 음식이 정성스럽고 보기 좋은데 왜 이렇게 음식마다 데코레이션을 합니까? 그리고 백오이를 아삭아삭하면서도 맛있게 만드는 비법은 무엇입니까?"
"장사한다는 생각보다는 내 가족이 먹는다는 심정으로 음식을 만들어 푸짐하게 대접하죠. 데코레이션을 하는 이유는 보기 좋은 떡이 먹기도 좋다는 말이 있지 않습니까? 오이를 아삭아삭하게 만드는 비법은 시간에 달렸죠. 시간이 짧으면 제 맛이 안 나고, 지나치게 길면 오이가 물렁물렁해집니다.

실은 시어머니가 올해 아흔이세요. 그러니까 일제 때부터 장사를 하셨는데 저희들한테 물려주셨고 남편(57)과 저는 약 4년쯤 문을 닫고 시누이가 하는 한정식 전문점에서 주방을 보면서 제대로 배웠습니다.

작년 다시 문을 열었을 때 일입니다. 아주머니 한 분이 백오이를 세 접시 드시면서, 계모임인데 몸이 아파 안 나오려고 했지만 오이를 먹고 입맛이 살아났다고 하며 손님들을 계속 모셔 오시는 거예요."

이 식당을 자주 이용한다는 손님인 이신재씨에게 신풍옥을 이용하는 이유를 물었다.

"음식이 깔끔하면서도 맛깔스럽습니다. 그래서 자주 이용합니다."

 아삭아삭한 오이속에 당근과 무채가 맛있다.
아삭아삭한 오이속에 당근과 무채가 맛있다. ⓒ 오문수

지인은 "음식이 칼칼한 맛도 있고 한 마디로 입에 착착 맞아요"라고 결론을 맺었다. 주방을 보니 두 부부가 주방 일을 보고 있다. 이제야 궁금증이 약간 풀린 것 같다. 내집이니 애정을 가질 수밖에. 그 식당에 자주 간다는 한 아주머니는 "그 돈 받고 남는지 모르겠어요"라며 칭찬이다.

다음날 점심 때 가까운 식당엘 갔다. 시장통이라 북적거리며 손님도 많다. 6천 원에 반찬 가짓수도 17가지나 되고 닭다리까지 나왔다. 하지만 가리지 않고 아무거나 잘 먹는 내 식성에도 불구하고 반찬 두 가지만 찾았다. 천 원 차이인데 이렇게 다를 수가.

2대에 걸쳐 45년간 운영하면서도 지역에서 호평 받는 이유는 정성 때문이리라. 7천 원으로 오랜만에 손님 대접을 받은 느낌이다. 집에서 먹은 느낌처럼 입맛만 아니라 뒷맛도 개운하다. 음식은 정성이라야 한다.

덧붙이는 글 | 희망제작소에도 송고합니다



#맛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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