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에 무덤가에서 처음 만났을 때 별의 별 식물이 다 있구나 싶었습니다. '지의류' 종류라는 것은 확실한데 어떤 분은 영국병정지의라고 하시는 분도 있고, 어떤 분은 꼬마요정컵지의라고 하시는 분도 있습니다.
붉은 베레모를 연상시키는 것은 '영국병정지의', 작은 컵모양을 연상시키는 것은 '꼬마요정컵지의'라고 합니다만, 아무리 살펴보아도 서로 다른 것이 아니라 같은 것으로 보이기 때문에 고민이 되는 것입니다.
서로 다른 종류라면 몰라도 만일 같은 종류라면 한 가지 이름으로 불러주는 것이 좋을 것인데 저는 '꼬마요정컵지의'가 마음에 듭니다.
'꼬마'는 작은 것의 대명사이고, 상상 속에 존재하는 '요정'은 신비한 존재입니다. 그리고 '컵'모양을 닮았고, 지의류에 속하니 붉은 립스틱 짙게 바른 꼬마요정을 떠올릴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함께 어우러져 있으되 각기 다른 것일 수도 있지만, 유심히 살펴보았지만 그들은 단지 종(種)만 같은 것은 아니었습니다.
아니면 식물학자들 간에 같은 종을 놓고 다른 이름으로 부르는 것일지도 모르겠지만, 시중에 나와 있는 일반인을 위한 제법 큰 식물도감에서도 이들의 존재는 찾아볼 수 없었습니다.
인터넷 검색창에는 꼬마요정컵지의보다는 영국병정지의라고 했을 때 이미지가 더 많이 검색되기는 했지만, 크게 달라보이지는 않았습니다.
지난 해 만났을 때에는 그냥 '꼬마요정컵지의'라고 생각했습니다. 영국병정지의 같은 이름이 내 머리에 아예 들어있지 않았고, 그 이름도 얼마나 앙증맞고 잘 붙여진 이름인가 싶어 의심을 하지 않았던 것이지요.
어떤 분들은 그 이름을 꼭 불러줘야 하냐고, 그냥 보고 느끼면 되는 것 아니냐고 하십니다.
그러나 저는 생각이 다릅니다. 사랑하는 사람이 생기면 이름도 궁금해지고, 함께 가족도 궁금해지고, 취미도 궁금해지고, 어떤 책을 읽는지, 어떤 영화를 좋아하는지... 점점 그 영역이 넓고 깊어지는 것이죠. 사랑한다면서, 사랑을 느낀다면서 그냥 '사람'이라고 통칭한다면 그건 아니겠지요.
이 땅에 존재하는 수많은 동식물들은 저마다의 이름을 가지고 있습니다. 물론 사람이 붙여준 이름입니다. 그런데, 그 이름이 그냥 대충 붙여진 것이 아니라 아주 오랜 관찰을 한 가운데 붙여진 것들입니다.
그러니, 그 이름 불러주는 일이 의미없는 일이 아닐 것입니다. 올 봄에도 어김없이 땅과 가장 가까이 호흡하며 그들의 옷이 되어 피어난 이들, 나는 이들의 이름을 제대로 불러주고 싶습니다.
'영국병정지의'인지 아니면 '꼬마요정컵지의'인지 어떻게 불러줘야 하는지 알고 싶습니다.
그래서 다음에 그들을 만나러 갔을 때에는 그 이름을 불러주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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