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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매일 황사가 와서 아이들과 산책가기에 어려웠는데
볕좋은 날 나가보니 운동장 구석에서 쑥이 하얗게, 초록을 머금고 자라고 있다.
빵칼을 하나씩 챙겨들고  나가서

"이게 쑥이다. 쑥국도 끓여 먹고 떡도 해먹는다.
그런데 오늘은 특별한 것을 하려고 해.
쑥차를 만들려고."

"에이, 선생님, 차는 파는 것인데 어떻게 쑥차가 되요?
거짓말 하지 마세요. "

진지한 내 설명에도
예찬이 말이  모두 맞다는 표정이다.

"선생님이 요술쟁이잖아. 믿어줘! 믿어."

성균이의 응원발언이 뒤이어지지 않았다면
아이들은 빵칼로 칼싸움을 할 기세였다.
모두들 앉아서 쑥을 캤다.
은해는 별꽃을, 여진이는 마른 잔디를, 소민이는 봄까치꽃을
쑥이라고 캐서 바구니에 담았지만
다른 아이들은 쑥잎만 손으로 쥐어 뜯더니 요령이 생기는지 하나씩 캐기도 한다.

"선생님, 이거 우리할머니 떡만든 것이다요."

아이들이 캔 쑥은 쑥 한줌에 쑥아닌 것들이 세배는 되었다.
교실에 와서 쑥만 고르는 일을 하는데
은해가 갑자기 운다.

"앙앙앙... 내 쑥."

자기가 뜯은 별꽃들을 버린다고 교실이 떠나갈듯 운다.
에고 그게 뭐라고. 목숨걸고 우는 은해에게 다시 가져다가 비닐봉지에 담아줬더니
울음도 그치고 활짝 웃는다.

햇빛에 이틀을 말리는데
"언제 먹어요? 왜 안돼요?"
매일 들여다보고 들여다 본다.
후라이팬에 모두 둘러 앉아서 덖기를 여러 번했다.

"이거 볶는거죠?"
"아니, 덖는거야."
"에이, 이것 볶는건데."

덖는다는 말이 낯선 성균이는 끝까지 볶는거란다.

하루를 더 말려서
드디어 둘러 앉아 쑥차를 마셨다.

"난, 안 먹어 냄새나."

매일 차마실 때마다 하는 호재의 말도 오늘은 없고
모두 말똥말똥 차를 우리는 것을 지켜본다.

"아, 맛나.
좋아요.
달아요.
과자맛이야.
할머니맛이야.
쑥떡맛이네.
신기하다.
진짜 차다."

저마다 자기 맛을 말하면서 차분하게 앉아서 차를 마신다.

이 봄, 우리반  아이들의 미각은 천국에 이르렀다.


#쑥차#유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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