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모가리는 뚝배기를 말하는 것이다. 매운탕을 끓여내는 질그릇을 전주지역에서는 오모가리라는 정겨운 사투리로 표현을 한다. 내가 오모가리 매운탕을 처음 맛 본 것은 1979년인가 보다. 세월이 그렇게 빨리 지난 것일까? 그 해 '제1회 대한민국 무용제'가 열렸고, 난 전주에서 활동하시는 최선 선생(현 전북무형문화재 제15호 보유자)이 무용제에 참가하는 '가잿골의 전설'이라는 무용극의 작곡을 맡아, 전주에서 30일 정도 작업을 하고 있을 때였다.
한벽루 인근에서 맛본 오모가리
작업을 하다가 찾아간 곳이 한벽루였다. 앞으로 시원한 전주천이 흐르는 한벽루는 절경이다. 그리고 전주천 옆에 자리를 잡은 집들에는 '오모가리'라는 글씨들이 쓰여있었다. 그래서 처음 맛본 게 오모가리 매운탕이다. 그 맛이 어찌나 좋던지 아마 소주를 두 병은 마셨던 것 같다.
그리고보니 벌써 30년 전 이야기다. 어제 전주천 곁에서 먹어 본 잊지못할 맛을 찾아 한벽루 인근을 찾아보았다. 50년 전통이라는 문구를 크게 써 놓은 집이 보인다. 앞의 천변에는 평상이 줄지어 있다. 그때도 이렇게 평상에 앉아서 먹었던 기억이 난다. 바람이 불고 해가 진 시간이라 평상에는 앉지 못했지만, 그래도 옛 정취를 느끼고 싶어 전주천이 보이는 곳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구수한 주방장의 이야기가 맛을 더하다
오모가리탕을 주문한다고 하니 주방장이라는 아주머니가 들어온다. 17년째 주방일을 맡아하신다고 하면서 주문을 받는데, 말투부터가 재미있다. 쏘가리탕이 좋다면서, 금방 들어와 매를 땄다고 한다. 그만큼 물이 좋다는 것을 알려주는 것인지.
오모가리탕을 주문해놓고 이야기를 하다가보니, 어느새 휴대용 레인지 위에서 보글보글 끓는 오모가리 매운탕이 김을 내고 상위에 오른다. 술을 한 잔씩 하다가 술을 한 잔 권했더니 단숨에 비우고 나서 하는 말이 "괜히 꺼쩍지근하게 입맛만 버렸다"면서 거듭 세 잔은 마셔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 주방장이라는 분, 아무에게나 무조건 반말이다. 슬쩍 물어보았다.
"주방장 얼마나 하셨어요?"
"나, 17년 됐지."
"오래 하셨네요. 몇 살부터 하신 거예요?"
"39살 때 부터 이 일을 했나."
그러면 금방 나이가 나온다. 나이도 어린 사람이 왜 반말이냐고 하였더니 대꾸도 없다. 아마 그 반말이 정겹게 느껴지는 것은, 심한 사투리를 섞어쓰며 정신없이 들락거리는 혼자 분주한 모습 때문인가보다.
맛은 그만인데, 옛 맛은 아녀
시래기를 가득 넣어 끓인 빠가사리 오모가리탕. 17년 차 주방장의 인심으로 더해준 쏘가리와 빙어 등을 더해 끓인 전주천변 오모가리 매운탕. 맛은 그만이다. 하지만 30년 전의 정취는 사라진 듯하다. 주변이 바뀌고 내가 바뀌었기 때문인가 보다. 하기야 30년 전에 먹어 본 맛을 기억할 리는 없다. 다만 당시 젊었을 때의 그 분위기가 사라졌기 때문인가 보다.
그래도 정신없이 드나들며 참견을 하는 17년차 주방장 때문에, 정말 모처럼 마음껏 웃어가며 식사를 마쳤다. 사람은 추억을 먹고 산다고 했던가? 오랫만에 찾은 한벽루 옆의 오모가리 매운탕 안에는 또 다른 맛이 배어있었다. 연신 들락거리며 참견을 하면서, 청양고추전이며 누룽지를 갖다주며 수다르 떠는 주방장으로 인해 또 하나의 맛을 느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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