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절대 건강검진을 받지 않는다'라고 가족뿐만 아니라 친구들에게도 말했던 내가 갑자기, 아니 슬그머니 건강검진을 받으러 병원에 갔다. 그것도 예약일을 하루 앞당겨.
개인적인 일로 10여 일 동안 갈등과 고민을 반복했더니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는지, 요 며칠 속이 더부룩하고 소화도 되지 않은데다 몸도 무거웠다. 그러면서 내 몸을 의심(?)하게 되었다.
사실 5년 전만 해도 매년 건강검진을 받았다. 그런데 아내가 암 진단을 받으면서 나는 앞으로 절대 건강검진을 받지 않겠다고 마음먹은 것이다.
암이라는 진단을 받고 계단을 힘들게 내려왔던 절망스런 모습과 항암 치료 중에 힘들어 하는 아내 모습을 볼 때마다 차라리 '모르는 것이 약이다'라는 생각을 했고 그 이후로 나는 병원을 아주 멀리 했다.
병원은 가게에서 걸어서 200여 미터에 있다. 4월인데도 낙엽이 떨어지고 있는 왕참나무가 오늘따라 더 스산하고 마음을 심란하게 만든다.
게다가 매일 나를 보면 반갑게 꼬리치며 달려들던 앞집 가게에서 키우는 개도 꼬리를 축 늘어뜨리고 나를 보더니만 고개를 돌려 외면해버린다. 참 별것이 다 신경이 쓰인다.
'아니야, 별일 있겠어. 나는 매일 사우나에도 가고, 건강보조 식품도 먹고, 일요일에는 꾸준히 운동도 하고, 또 일주일에 두 번은 벌침도 맞고, 허투루 산 것도 아닌데'라며 불안한 마음을 진정시키고는 원장님 앞에 앉았다.
"왜 이렇게 오랫동안 병원에 오시지 않으셨어요?""예, 그것이... 글쎄요."의사선생님 앞에서 말을 더듬을 수밖에 없었다.
X선 촬영도 하고 초음파 검사, 심전도검사, 피검사도 했다. 그리고 위는 수면 내시경을 했다. 얼마나 지났을까. 수면내시경 마취에서 깨어나면서 심장 뛰는 소리가 쿵당쿵당 요란하다. 내시경 결과를 듣기 위해 진찰실로 들어설 때 의사선생님을 제대로 볼 수가 없었다.
"위 간 심장 등은 이상이 없습니다. 오후에 피검사 결과를 보러 오세요."아직 다는 아니었지만 1차 검사는 통과한 것이다. 위는 가족력이 있어 항상 관심을 가졌지만 늘 자신이 없는 장기(臟器)다. 점심시간이 지나 다시 병원에 갔다.
"당, 콜레스테롤 등 모두 정상수치입니다. 건강 합격입니다.""감사합니다." 그러면서 나는 의사선생님 앞에서 박수를 치고 있었다.
사람들 앞에서는 건강하다고 큰소리 쳤지만 속내는 드러내 놓지 못하고 불안에 떨고 있었던 것이다. 솔직히 무섭고 두려웠다.
병원에 갈 때는 보지 못했던 동사무소 화단에 목련과 개나리가 참 예쁘다. 턱밑에 와 있는 봄의 빛깔과 소리를 이제야 보고 들을 수 있다.
돌아오는 길에 다시 만난 개도 예전처럼 꼬리를 흔들며 반갑게 달려든다. 그 녀석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나처럼 좋아한다.
몇 시간 만에 이렇게 세상이 달라 보일까. 목련 개나리 벚꽃 진달래가 펼치는 봄의 향연에 가장 편안한 맘으로 초대 받고 싶은 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