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자'는 시장의 우리 말이다. 그러나 저자란 말보다 시장이란 말을 많이 쓴다. 문헌상으로 보면 시대가 내려올수록 장이라는 말을 더 많이 썼다. 저자에 가는 것을 한자어로 행시(行市)라고 하며, 장이란 말을 써서 '장 보러 간다'고 할 때에는 '간장(看場)'이라고 한다. '간지(看指)'라고도 하는데 이 또한 '저자'를 의미한다.
저자는 옛날 선조들의 개념으로 보면 경제적 행위를 하러 온 사람이나 장을 보러 온 농민드 잠시 생산활동에서 해방되는 공간이었다. 이러한 분위기에서 저자에서 행해지는 각종 민속 놀이에 의해 더욱 고조되었다고 볼 수 있다.
조선 후기 탈춤의 연회장소는 주로 장터였다. 야유, 오광대 가면극 등이 행해지는 경상도권의 동래(현재 부산)의 중앙통의 장터(동래시장)와 수영(수영팔도시장), 고성 장터가 대표적이었다.
부산시 수영구 소재의 수영 팔도 시장의 역사는 조선 후기부터 형성된 역사가 깊은 시장…. 그리 멀지 않는 옛날에는 광안리 청사포 기장 등지의 어부들과 농민들이 가져오던 물품을 바탕으로 하루에 세 번 '삼일장'이 열렸다.
좌수영성문 앞에 자리한 '수영팔도시장'이란 현재의 시장 이름은 37년 전 재일교포인 김팔도씨가 고국으로 돌아와 지금의 형태로 시장을 개조하면서 자신의 이름 따와 '팔도시장'으로 불리게 되었다고 한다.
'수영팔도시장'은 그 이름처럼 낙동강 유역 농민들과 남해와 동해안 어민들과 농부들이 산지에서 바로 가져온 곡물, 해산물, 수공업품 등 없는 것이 없는 전통 재래시장이었다. 십년전만 해도 부산 지역에서 꽤나 큰 규모의 재래시장으로, 수영동, 민락동, 망미동, 연산동, 남천동 주민들까지 아우르는 큰 시장이었다.
그러나 모든 재래 시장이 위축되고 있듯이, 널리 유명세를 떨치던 '수영팔도시장'은 최근들어 인근에 신세계 백화점과 롯데백화점 및 대형마트들이 들어서면서 점점 활력을 잃어가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래도 주부층과 관광객의 발길이 줄어들지 않는다. 그 이유의 하나는 수영팔도 시장 안에 자리한 '수영사직공원'이 존재하기 때문이고, 백화점과는 비교할 수 없이 산나물과 약초 등을 싸게 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싱상한 야채와 과일, 반찬 재료인 채소, 젓갈, 족발, 어묵, 생선, 약초, 화초, 약재 등 가짓수를 손으로 다 헤아릴 수가 없다. 싸고 푸짐한 먹거리 음식점들이 많다는 이유도 있겠다. 수영팔도 시장 안의 먹거리 음식점 중에는 언론매체를 통해 유명해진 먹거리 점이 많다.
해산물 골목에는 기장시장 등에서 받아온 신선한 해산물, 건어물 등이 넘쳐난다. 비교적 저렴한 가격에 신선한 회를 맛볼 수 있는 횟집과 떡, 죽, 잔치국수, 김밥, 돼지갈비 집 등이 즐비하다. 그 중간 중간 지점에는 의류거리가 형성되어 있는데, 다양한 종류의 옷을 싼 가격에 골라잡아 살 수 있다.
수영사직공원의 남문 입구에서 보면 왼편 골목으로 줄지어 푸짐한 선술집 등이 자리하고 있다. 이곳에서는 안주 삼천원이면 다양한 술안주들이 맛볼 수 있다. 수영 공원을 찾는 실업층과 노인층을 겨냥한 것 같지만, 퇴근시간이면 샐러리맨들이 한 잔의 막걸리로 목을 축이기 위해 빈 자리가 나길 기다리는 모습도 흔치 않게 만날 수 있다.
그 옛날 삼일장이 섰던 수영팔도 시장. 허리가 구십도 각도로 굽은 연로하신 할머니 한 분 을 만나, 옛 수영 시장의 장날에 대한 추억을 한 말씀 해달라고 했더니, 20년 전만 해도 시장 골목 안 주택가까지 노점상들이 형성됐다고 술회하신다. 망미동에 사신다는 할머니는 산책 삼아 양지볕도 쐬고 공원에 나오면 벗도 만날 수 있어 수영팔도 시장을 매일 찾는다고 말씀하셨다.
수영팔도시장은 교통이 어느 지역보다 편리하다. 인근에 수영교차로가 있고 부산 지하철 2호선이 지나는 역이지만, 환승역으로 2호선 3호선이 다 연결된다. 수영 교차로가 있어 부산 시내 버스 노선도 편리하다. 서면, 동래, 광안리, 해운대 방향의 교통편 등 부산 지역 전 시내버스 노선이 연결되지 않는 교통편이 별로 없다 하겠다.
시장 손님만큼 상인들도 함께 북적거리는 수영팔도시장. 유치원생과 초등학생들의 자녀를 데리고 시장을 보러온 주부층이 선호하는 시장. 시장도 보고 아이들과 함께 문화 유적도 답사할 수 있고, 아이들은 아이들끼리 만나 마음껏 뛰어 놀수 있는 해방공간이 있기 때문에, 유난히 엄마따라 시장 나오고 싶어 하는 나이의 저학년층에게 인기 많은 재래시장이기도 하다.
수영팔도 시장 안에 자리한 수영사직공원의 정확한 위치는 수영교차로에서 북쪽으로 200m 거리에 위치한다. 현재 수영사적공원의 자리는, 조선시대 동남해안을 관할했던 수군군영인 경상좌도수군절도사영이 있던 자리다.
'수영성 남문'은 부산광역시 지정 유형문화재 제17호. 이 성문은 조선시대 경상좌도수군절도사영의 남문으로 1692년에 설치되었으며, 수영성 남문의 현재의 상태는 앞 뒤 홍예와 우주석이 남아있고, 우주석 높이의 성벽이 좌우 10m 내외로 남아있다.
전면 우주석 앞에는 같은 크기의 사각석 주위에 '박견' 한쌍이 나란히 서 있다. 이 형태의 석물이 문 옆에 설치되어 있는 것은 다른 지방에서는 볼 수 없는 독특한 모습니다. 오랜 세월에 홍예석이 조금씩 침하되어 붕괴될 우려가 있어 1993년 8월 보수하여 현재의 모습을 갖추고 있다. 성문에는 각기 문루가 있었고 일정한 시각에 북을 울려 문을 열고 닫았다고 한다.
수영 사직 공원안에는 시지정 기념물인 '25의용단'을 비롯한 '수영야류' 등 무형문화재 3종, 좌수영 성지의 '곰솔나무', '푸조나무' 등 천연기념물 2종, '안용복장군 사당' 등 비지정 문화유적 5종이 있으며, 이를 보존 관리하고 있는 '수영고적민속예술보존협회'가 있다.
천연기념물 제270호 곰솔나무는, 수영성 남문 가까이 있는 400년 이상의 연륜을 지닌 거대한 나무로서 줄기가 곧게 하늘로 치솟아 있다. 이 곰솔 나무는 조선시대 좌수영이 설치되었을 때 이미 거대한 자태를 지닌 수목이었다고 전한다. 이 나무는 전쟁터에 나가면서 무사안전을 기원하였다 하여 군신목(軍神木)이라고 불리우기도 한다.
한편에서는 북적이는 장이 서고 한편에서는 씨름, 줄다리기 윷놀이, 남사당패 놀이, 보부상 놀이 등이 펼쳐졌던 수영성 앞의 그 옛날 저자 거리 '수영 시장'. 시간이 흘러가도 '수영팔도 재래 시장은 우리의 조상들의 얼이 깃든 장터로 영원히 민중의 사랑을 받을 것이다.
덧붙이는 글 | 수영사직공원과 수영팔도시장은 부산 2호선 지하철, 수영역에서 하차하면 된다.
시내 버스 이용시 노포동 고속버스 터미널에서 - 49-1번 일반버스를 타고 수영로터리 하차.
- 지하철 1호선 타고 서면역에서 2호선 장산 방향 수영역 하차. 사상 시외버스 터미널에서
- 62번 일반버스를 타고 수영역 하차. 기타 외 많은 교통 노선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