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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 아이들과 봄 소풍을 다녀왔습니다. 요즘은 소풍이라고 하지 않고 체험학습이란 말을 쓰기도 하지요. 소풍을 하루 놀러가는 날 정도로 생각하는 아이들에게 소풍도 교육의 연장이라는 생각을 갖도록 그런 용어를 사용했겠지만 역시 소풍이란 말이 정감이 갑니다. 소풍이든 체험학습이든 잠시 책을 덮고 틀에 박힌 학교 일상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신나는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봄 소풍 지난 4월 16일(금) 순천시 서면 청소골(계족산)으로 소풍을 다녀왔습니다. 이번 소풍의 목적은 '자연과 친해지기' '자연 속에서 행복하기'였습니다.
봄 소풍지난 4월 16일(금) 순천시 서면 청소골(계족산)으로 소풍을 다녀왔습니다. 이번 소풍의 목적은 '자연과 친해지기' '자연 속에서 행복하기'였습니다. ⓒ 안준철

그런데 아이들 표정을 보니 소풍을 앞두고도 별로 신나 보이지 않습니다. 자치활동 시간에 소풍계획을 세우고 모둠별로 식단을 짜보라고 해도 잡담하느라 정신이 없거나 시큰둥한 표정을 짓고 있거나 둘 중 하나입니다. 하긴 이미 예상했던 일이긴 합니다. 예상을 했다면 그 대책도 마련해놓아야겠지요. 봄 소풍을 닷새 앞둔 4월 12일에 발행한 <학급쪽지통신 7호>에는 이런 글이 실려 있습니다.       


-4월 16일(금)은 학교 소풍날입니다. 소풍이나 수학여행을 다녀오면 재미가 없었다고 말하는 친구들이 많습니다. 언젠가 야외수업을 한 번 하자고 한 것 같은데 소풍날은 하루 종일 야외수업을 하는 셈입니다. 한 시간만 야외수업을 해도 좋은데 하루 종일 하니 얼마나 좋습니까?

소풍날은 친구들과 온 종일 잡담을 해도 좋고, 귀에 이어폰을 꽂고 노래를 들어도 누가 뭐라고 야단칠 사람이 없습니다. 이런데도 신나지 않나요? 이번 소풍의 목적은 '자연과 친해지기'입니다. '자연 속에서 행복하기' 입니다. 아무리 지위가 높고 돈이 많아도 삶을 즐기지 못하는 사람은 불행한 사람입니다. 소풍 끝나고 재미가 없다고 하면 그것은 여러분 자신 책임이란 것을 꼭 명심했으면 합니다. (담임생각)

 

봄 소풍 산 초입은 조금 가파르지만 곧 평지가 나옵니다.
봄 소풍산 초입은 조금 가파르지만 곧 평지가 나옵니다. ⓒ 안준철

<학급쪽지통신 7호>에는 다음과 같은 소풍 시상계획도 실려 있습니다. 


*베스트 드레서 1명(문화상품권 1만원)

(부모님을 졸라서 새로 산 유명메이커 옷이나 학생답지 않는 촌스러운 양장에 하이힐 등은 실격이며, 집에서 평소 입던 간편한 차림에 자신만의 개성이 돋보이는 옷이 유리함.)


*쑥을 가장 많이 캔 1모둠(담임과 함께 피자 파티)

 (쑥은 모아서 쑥떡을 해먹을 계획임)


이런 시상계획을 굳이 세워놓은 것은 부모의 경제력으로 구매한 행복이 아닌, 자연이나 소박한 삶으로부터 이미 공급받고 있는 것들을 잘 받아 누릴 수 있는, 말하자면 행복에 대한 감수성을 키워주기 위해서입니다. 하지만 이렇게 사전 준비를 철저하게 해도 정작 아이들이 신이 나지 않으면 말짱 도로목입니다. 아이들이 주체가 되어 움직이지 않고 담임 혼자 북 치고 장구 치고 하다보면 똑똑한 아이들에게 이런 말이나 듣기 십상입니다.

 

"왜 항상 선생님만 옳다고 생각하세요?"


봄 소풍 산을 내려와 저마다 예쁜 포즈를 잡았습니다.
봄 소풍산을 내려와 저마다 예쁜 포즈를 잡았습니다. ⓒ 안준철

언젠가 한 아이로부터 그 말을 들었을 때는 좀 얄미운 생각이 들었습니다. 딱히 대꾸할 말이 떠오르지 않자 은근슬쩍 화가 나기까지 했습니다. 아무리 그럴듯한 말을 해도 그것은 내 자신이 옳다는 말일 터이니 결국은 그 아이 말을 입증해주는 셈이 되기 때문이었지요. 참 고약한 덫에 걸려 며칠을 보내다가 어느 한 순간 아이가 한 말을 순순히 받아들이게 되었습니다. 은연중에 아이의 눈으로 제 단점을 발견하게 된 것이지요.


그런 일이 있은 후 아이들을 대하는 제 태도가 사뭇 달라졌습니다. 소풍을 하루 앞두고 소풍 일정을 마지막으로 점검하면서 아이들에게 다음과 같은 선택의 기회를 준 것도 저로서는 달라진 모습 중 하나였습니다. 

    

봄 소풍 올챙이를 손에 들고 생명의 예쁨에 어쩔 줄을 모릅니다.  저는 그런 아이들이 예뻐서 어쩔 줄 몰랐습니다.
봄 소풍올챙이를 손에 들고 생명의 예쁨에 어쩔 줄을 모릅니다. 저는 그런 아이들이 예뻐서 어쩔 줄 몰랐습니다. ⓒ 안준철

"내일 시내버스가 시발지인 호반아파트에서 8시 30분에 출발합니다. 다음 차는 9시 50분입니다. 8시 30분에 차를 타면 9시 40분쯤 목적지에 도착하는데 내일 날씨가 추울 것 같아서 왕복 한 시간 정도 가벼운 산행을 할까합니다. 만약 그 다음 차를 타면 11시쯤 도착하니까 산에 가지 않고 곧바로 모둠 별로 쑥을 캐고 난 뒤에 점심을 먹을 것입니다. 어떻게 할까요?"


물어보나마나한 질문이었습니다. 예상 했던 대로 여기저기서 다음 차를 타자는 의견이 나왔습니다. 저는 아이들에게 이렇게 다시 말을 이었습니다. 


"9시 50분에 출발하는 차를 타면 늦잠도 자고 편하긴 하겠는데 너무 무성의한 것 같아서  솔직히 마음에 걸립니다. 그리고 우리가 오를 산은 산이라기보다는 평지에 가까워서 힘들지 않고도 오를 수 있고 거기까지는 가야 자연 속에 있다가 온 느낌이 들 것 같습니다. 한 시간 정도 몸을 움직였으니 점심도 맛있게 먹을 수 있겠고요. 여러분이 정하는 대로 하겠지만 그냥 편하게만 생각해서 정하지는 말았으면 좋겠습니다."


봄 소풍 아이들은 눈부신 4월보다도 더 눈이 부셨습니다.
봄 소풍아이들은 눈부신 4월보다도 더 눈이 부셨습니다. ⓒ 안준철

사실 큰 기대 없이 던져본 말이었습니다. 그런 까닭에 아이들이 하나 둘 긍정의 눈빛을 보이면서 고개를 끄덕이자 저는 내심 놀라고 있었습니다. 그 놀람은 아이들에 대한 불신에서 온 것일 수도 있기에 코끝이 찡한 반성의 시간이 되기도 했습니다. 반성의 시간은 곧 성장의 시간이기도 합니다. 나이를 먹고도 성장할 수 있다는 것은 참 기분 좋은 일입니다.  


이번 봄 소풍은 날씨까지 도와주어 참 즐겁고 행복한 시간이 되었습니다. 아이들도 자연과 많이 친해지고 자연 속에서 행복해보였습니다. 산을 오르면서도 힘들다고 불만을 토로하는 아이들은 눈에 띄지 않았습니다. 모든 것이 좋았습니다. 앞으로도 아이들을 믿고 사월의 햇살 같은 부드러움으로 다가가고 싶습니다.


#순천효산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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ㄹ교사이자 시인으로 제자들의 생일때마다 써준 시들을 모아 첫 시집 '너의 이름을 부르는 것 만으로'를 출간하면서 작품활동 시작. 이후 '다시 졸고 있는 아이들에게' '세상 조촐한 것들이' '별에 쏘이다'를 펴냈고 교육에세이 '넌 아름다워, 누가 뭐라 말하든', '오늘 교단을 밟을 당신에게' '아들과 함께 하는 인생' 등을 펴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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