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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날(7일) 세 시간 넘게 걸었는데도 일찍 잠들어서 그런지 아침 7시도 안 되어 눈을 떴다. '서울대공원'에서 외사촌 누님(동례)을 만나는 날이다. 어젯밤 막내 누님과 매형이 전화로 약속한 모양이었다. 그동안 얼마나 변했는지 궁금했다.

 서울대공원 정문에서 바라본 청계산. 아침안개가 산허리를 휘감고 있는 모습이 서울 동쪽을 지킨다는 명산다웠다.
서울대공원 정문에서 바라본 청계산. 아침안개가 산허리를 휘감고 있는 모습이 서울 동쪽을 지킨다는 명산다웠다. ⓒ 조종안

아침을 먹고 막내 매형과 누님 둘, 이렇게 넷이서 집을 나섰다. 오전 9시 35분 평택 지하철역을 출발, 10시 30분 금정역 도착, 4호선으로 갈아타고 10시 50분 대공원역에 도착해서 2번 출구로 나가니까, 청계산의 울창한 수림이 아스라이 보이는 서울대공원이었다. 

25년 만에 찾아간 '서울대공원'

돌고래 쇼로 유명한 서울대공원은 85년 묵향회 행사 때 아내와 함께 다녀간 곳이어서 감회가 새로웠다. 휴대전화로 위치를 확인해서, 은빛 물보라가 사방팔방으로 퍼지는 아름다운 분수대 앞에서 동례누님을 만났다. 무척 반가웠다.

동례누님과 나들이는 36년 전 아버지 산소에 다녀오고 처음이었다. 돈에 쫓기고 시간에 쫓겨 사느라 그동안은 집안 혼사가 있을 때 예식장에서 잠깐 보고 헤어졌기 때문이었다. 누님들은 서로 손잡고 반가워하며 안부를 묻고, 호두과자랑 꽈배기를 사먹으며 아직 걷히지 않은 산허리의 안개를 감상하며 거닐었다.

 청계산을 배경으로 식물원 앞에서. 기념사진은 자연스런 모습을 한 컷 더 찍어놓으면 훗날 재미있게 감상할 수 있다.
청계산을 배경으로 식물원 앞에서. 기념사진은 자연스런 모습을 한 컷 더 찍어놓으면 훗날 재미있게 감상할 수 있다. ⓒ 조종안

오랜만에 만나 기념사진도 찍고, 궁금했던 소식을 접하니까 기쁘면서도 마음을 아프게 하는 게 있었다. 병원 한 번 찾지 않고 건강을 유지하는 초로(初老)들이 얼마나 되겠는가만, 모두 몸이 정상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1분도 안 되어 '배부른 소리'라고 자책하면서 만남 자체가 축복이요 행복이라고 생각을 바꾸었다.

막내 누님이 "부자로 잘사는 사람도 찡그림서 재미없게 말하는 사람이 있고, 가난에 허덕임서 고생혔던 사람도 한 번 더 듣고 싶도록 재미있게 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이도 저도 아니고, 남 약오르기 좋을 만하게 하는 사람도 있다"고 해서 웃음바다가 되기도 했다.

 사자는 없고 호랑이가 맹수 우리를 지키고 있었다. 필자가 호랑이해에 태어나서 그런지 유달리 친근감 있게 느껴지는 동물이다.
사자는 없고 호랑이가 맹수 우리를 지키고 있었다. 필자가 호랑이해에 태어나서 그런지 유달리 친근감 있게 느껴지는 동물이다. ⓒ 조종안

맹수 우리 앞을 지나가는데 사자가 보이지 않았다. 궁금해서 알아봤더니 우리를 수리 중이라고 했다. 그래도 호랑이 아저씨를 만나서 다행이었다. 누님들이 왜 그냥 내려오느냐고 묻기에 쇼하는 돌고래와 물개는 아파트에서 살고, 사자는 하늘이 보이는 단독주택에서 사는데 오래되어 집을 수리하느라 만날 수 없다고 해서 폭소가 또 한 번 터졌다. 

오후 1시 30분에 시작하는 돌고래와 물개쇼를 관람하려고 '해양동물관' 공연장에 입장했더니 일요일이어서 만원을 이루고 있었다. 특히 단체로 입장한 노인들과 병아리처럼 귀여운 꼬마들은 마냥 즐거운 표정들이었는데 실내가 무척 더웠다.

 돌고래쇼. 돌고래 두 마리가 조련사의 신호에 따라 공중으로 튀어오르는 묘기를 보여주고 있다.
돌고래쇼. 돌고래 두 마리가 조련사의 신호에 따라 공중으로 튀어오르는 묘기를 보여주고 있다. ⓒ 조종안

 돌고래들의 묘기. 인간과 동물은 노력한 만큼 교감이 이루어질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공연이어서 많은 의미를 담고 있었다.
돌고래들의 묘기. 인간과 동물은 노력한 만큼 교감이 이루어질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공연이어서 많은 의미를 담고 있었다. ⓒ 조종안

공연이 시작되니까 돌고래들이 묘기를 보여주었는데, 재미있는 현상을 발견했다. 옛날에는 사회자가 박수쳐달라고 사정해도 꿀 먹은 벙어리처럼 조용히 구경만 했다. 그런데 꼬마들은 물론 노인들도 손뼉을 치며 함께 하는 것을 보면서, 공연관람 의식이 많이 달라졌음을 느꼈기 때문이다.

올해 예순여덟인 동례누님도 "어머! 어머!" 하며 감탄사를 터뜨렸고, 단체로 입장한 어린 병아리들은 음악에 맞춰 손뼉을 치며 깔깔대더니 자리에서 일어나 탄성을 지르며 환호했다. 노인들 표정도 아이들과 별로 다를 게 없었다. 

공연이 끝나고 식당에서 늦은 점심을 먹었는데, 막내 매형이 메뉴판을 가져와 각자 식성에 맞는 음식을 주문하라고 했다. "나는 자장면이나 하나 먹을랍니다"라고 했더니 옆에 있던 셋째 누님이 "나는 간짜장!"이라고 해서, 일흔이 되도록 '간짜장'에서 벗어나지 못하느냐고 놀리며 얼마나 웃었는지 모른다. 

식사를 마치고 동례누님이 계산하겠다고 해서 잠시 실랑이가 벌어졌다. 며칠 동안 식대, 입장료, 군것질 등 경비가 막내 매형 호주머니에서 나오는 것을 보고 미안해하던 터여서 중간에 끼어들어 "집이 서울인 동례누님이 내는 게 좋겠네요!"라며 거들었다.      

'꿈의 여인'으로 그려지던 '동례누님'

 1974년 12월 서울에서 내려온 동례누님과 형제들이 조카들과 산소에 가면서 중간에 있는 500년생 고목을 배경으로 찍은 사진. 귀엽던 조카들이 지금은 40대 중년을 넘어섰다.
1974년 12월 서울에서 내려온 동례누님과 형제들이 조카들과 산소에 가면서 중간에 있는 500년생 고목을 배경으로 찍은 사진. 귀엽던 조카들이 지금은 40대 중년을 넘어섰다. ⓒ 조종안

동례누님은 인기 영화배우처럼 '꿈의 여인'으로 그려지던 때가 있었다. '서울에 사돈의 팔촌이라도 한 사람 살아서 편지도 하고 왕래도 하면 얼마나 좋을까?' 하고 서울을 동경하던 철부지 시절, 유일하게 서울에 사는 친척이었기 때문이었다.  

서울 아이들의 '이랬니? 저랬니?'가 영어보다 고급스럽게 느껴지던 초등학교 5학년 때로 기억하는데, 하루는 이상한 편지 한 통을 받았다. 보낸 사람이 여자 이름이고, 주소가 서울이었기 때문이었다. 어머니에게 누구냐고 물으니까 외사촌 누님이라고 해서 얼마나 놀랐는지 모른다. 서울엔 친척이 없는 것으로 알고 있었으니 놀랄 수밖에.  

어린 마음이었지만 어머니 얘기를 들으면서 반가움과 안타까움이 교차했다. 서울에 사촌 누님이 살고 있으니까 무지하게 좋긴 한데, 어렵게 살아가면서 가끔 도움을 청하는 편지를 보내온다고 해서 가슴이 아팠다.

동례누님은 당시 서울에서 언니와 둘이 살았는데, 돌아가신 아버지도 "어린 것들이 객지에서 고생한다!"며 애틋하게 여겼다. 특히 자매가수 '은방울자매'가 출연하는 극장 쇼에 다녀오시면, 모습이 많이 닮았다며 격려 편지도 해주고, 작은 도움도 주셨던 것으로 알고 있다.

마음은 당장에라도 누님을 만나러 가고 싶었다. 그러나 초등학교 6학년 수학여행 때 기차를 처음 타봤던 나에게 서울 여행은 꿈일 뿐이었다. 따라서 미인인지 박색인지 얼굴을 몰랐던 동례누님은 마음의 화판에 그렸다가 지우면서 상상으로 끝나는 '꿈의 여인'이 될 수밖에 없었다.

주민등록에 필요한 서류도 보내주면서 10년 넘게 편지로 소식을 주고받아오다 74년 12월 겨울방학 때 누님이 조카들 손을 잡고 집에 왔을 때는 얼마나 좋았는지 모른다. 당시 보물처럼 아끼던 고급 찻잔 세트를 기쁜 마음으로 선물할 정도였으니까.

 자못 무거운 표정으로 아버지 산소 앞에 나란히 서있는 형제와 사촌들.
자못 무거운 표정으로 아버지 산소 앞에 나란히 서있는 형제와 사촌들. ⓒ 조종안

누님은 돌아가신 고모부(아버지)에게 인사를 해야겠다며 산소에 갈 것을 제의했고, 외가에서 달려온 사촌 형들과 조카들 20여 명이 강추위도 아랑곳없이 왕복 20km가 넘는 아버지 산소에 걸어서 다녀왔는데, 지금은 흑백사진 몇 장이 애잔했던 당시를 얘기해주고 있을 뿐이다.

아쉬운 이별

동례누님과 헤어져야 할 시간이 다가오고 있었다. 만남에는 이별이 따르는 법이라지만, 아쉬움이 밀려왔다. 해서 그냥 헤어지면 서운하고, 그렇다고 다방에 가면 비싸니까, '양촌리 커피'라도 한 잔씩 마시자고 제의했고, 지하철역 자판기 커피를 뽑아 마시며 공원에서 못다 한 얘기들을 나누는 것으로 마음을 달랬다.

평택으로 가는 사람들은 오이도 행을, 동례누님은 반대편 열차를 이용했는데 막내 매형은 "당신은 상행선, 나는 하행선···" 노래를 부르며 섭섭해 했고, 셋째 누님은 건너편 대기실 의자에서 차를 기다리는 동례누님에게 손을 흔들며 작별을 아쉬워했다. 

막내 누님 집에는 6시 조금 넘어 도착했는데 의미도 있었고, 보람도 있었고 즐거웠던 하루였다. 다음날 오전 11시 30분까지 서울 강남역 근처 사무실에 가야하기 때문에 저녁을 먹고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

덧붙이는 글 | 2004년 가을 이후 6년 만에 이루어진 외출에서 의왕 철도 박물관, 서울대공원, 옛 친구와의 만남, 남산 한옥마을 탐방, 강정구 교수 강의 참석, 수원 화성 시티투어 등을 하면서 느꼈던 점들을 6-7회 정도로 나눠 담아보려고 합니다.



#여행#사촌 누님#서울대공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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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8월부터 '후광김대중 마을'(다움카페)을 운영해오고 있습니다. 정치와 언론, 예술에 관심이 많으며 올리는 글이 따뜻한 사회가 조성되는 데 미력이나마 힘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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